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코랄리 파크쟈의 <서브스턴스>를 보고

by sunjoo


작품이 흘러가는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상영관을 나갈까 말까 속으로 수없이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기괴함과 불쾌감이 고통스럽게 오가던 작품이었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 얹혀있던 통증들을 뻥- 하고 통쾌하게 뚫어 주는 아주 기가 막힌 작품이었다.



나는 <서브스턴스> 를 총 두 번 보러 갔는데, 처음 한 번은 배꼽 장면이 나오는 중간까지만,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엔딩 크레딧까지 전부 다 관람하였다. 1회차 당시 영화를 중반부까지만 관람하다 뛰쳐나온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이어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심한 심리적 멀미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는데.


에일리언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는 나지만, 이 영화의 기괴함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미드소마나 겟아웃에서 느낄 수 있는 불쾌감과 유사한 느낌? (그러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잔인하고도 기괴한 장면들 역시 물론 포함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시청각적 요소와 장치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불쾌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2회차때는 오히려 이 불쾌감 덕분에 작품을 더욱 실감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영화로 하여금 전달 받은 메스꺼운 느낌과 궁지에 내몰리는 심정 덕에 결말 혹은 그 이후를 향해 달려 나가는 엘리자베스의 발 박자에 템포를 맞춰 동일한 속도로 달려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SNS라는 작은 돋보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들여다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탱해내는 힘을 잊어버리고 만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출처 불명의 유행들을 기둥 삼아 척추를 지탱하곤, 그 자세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분수에 맞지 않는 금액을 지불해 새로운 옷을 구매하고, 멀쩡한 얼굴을 뜯어 고치고, 시간의 흐름에 맞게 늙어가고 있던 나 자신을 계속해서 몇 번이고 돌아 세우고...


만일 그러다 그 기둥이 무너져 버리게 되는 날이 오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누군가는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처럼 척추를 따라 돋아나있던 생살을 칼로 째고 또 그를 꿰매길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놀라웠던 건, 이토록 뒤가 없는 기괴한 장면들에조차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영화는 주어진 러닝타임 내에서 빠르고 극적인 전개를 통해 그녀의 선택들이 잘못되었음을 관객 모두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끔 모든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느린 시간에 걸쳐 어디서든 우리를 미세하게 콕콕 찔러온다. 어쩌면 진짜 공포스러운 건 서브스턴스라는 영화가 아니라, 심각한 것을 심각하다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를 딱 하나만 꼽아보자면,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것에 모자라 그것을 우리의 뇌리에 아주 깊이 강제적으로 심어버린다는 것. 조금이라도 외모에 대한 집착이나 강박이 떠오르게 될 경우, 이 <서브스턴스> 라는 소재가 자동으로 떠오르며 괴로운 생각을 멈추게 된다. 아, 이런 영화가 있었지. 아... 그래선 안 됐지... 하며.



'REMEMBER YOU ARE ONE' -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작품 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강조하는 중요한 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와 수는 결국 하나가 아닌 두 개체로서 분리되는데, 그것이 극명하게 나뉘어지는 순간이 바로 엘리자베스와 수가 동시에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이다. 젊은 나이에 탱탱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반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수와 달리, 엘리자베스의 몸은 서브스턴스의 잘못된 복용으로 인해 너무 많이 변형되어버린 상태. 머리카락은 이미 두피가 훤히 보일 만큼 날아가버린지 오래고, 온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며 몸 이곳저곳의 관절이 삐걱대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탄생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인 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그녀는 도무지 참을 수 없을만큼 못나고 추해져버린 ‘엘리자베스’를 향해 잔인하고도 파멸적인 방식의 가슴 아픈 폭력성을 분출한다.



인간의 노화는 퇴화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활력있게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을 젊음이라 말한다면, 늙음은 희미해져가는 빛 속에서 고요하게 영글어가며 단단하게 숙성해가는 것. 퇴화가 아닌 숙성. 그것이 늙음의 진정한 의미라고, 당신은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의 가치는 당신에게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엘리자베스라는 한 여성에게 진심으로 꼭 따듯하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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