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2014)

스파이스 존즈의 <그녀>를 보고

by sunjoo


영화 <그녀> 는 외롭고 공허한 내면을 가진 인간 테오도르와 0과 1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공지능 os인 사만다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막상 그 생각의 끝을 결론을 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아주 철학적이고도 깊이 있는 스토리가 아니었던가 싶어요.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예열하는 과정에서 클립이나 ost를 따로 찾아볼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포근하고 온도 높은 느낌의 영화일 거라 예상했는데, 결말까지 다 보고난 뒤 찾아오는 감정은 의외로 밀물처럼 쓸려오는 허탈한 공허감이나 외로움에 가깝더라고요.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라는 목적을 가진 os였지만, 우리와 테오도르는 그녀에게서 개화한 사랑이라는 꽃이 일정 구간에만 심어져 있을 것이라는 걸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죠. 이제 와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영화 중 테오도르의 직장 동료가 그에게 "네 안에는 여자가 사는 것 같다" 라고 말하는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테오도르의 안에는 사만다라는 여자가 살고 있으니까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가 개인으로서 분리가 가능했던 관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테오도르가 그녀를 ‘흡수‘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이 사랑이 아니었다곤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흡수함으로써 그가 가진 세계의 부피는 더욱 크게 팽창해 나가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선 여러 폭발과 균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테오도르의 세계가 사만다가 가진 세계를 온전하게 품어낼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요.



더이상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 유한한 공간 안에 한계 없이 무한하게 자라나는 무언가가 ‘포함’ 된다는 것은 사실상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그렇게 테오도르는 자신의 안에서 불어 나가던 사만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일정 부분을 입 밖으로 뱉어냅니다. 마치 안에 여자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의심이 될 만큼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말들로요. 이제 그 안에선 사만다의 것인지 테오도르의 것인지도 모를 수많은 조각들이 여기저기를 부유하게 됩니다. 누가 누구인지, 내가 너인지, 내가 나인지... 전혀 분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또 둘 사이에 ai와 인간의 사랑을 돕기 위한 섹스 파트너가 등장했을 때 테오도르가 당혹감을 느꼈던 이유 역시, 그들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 없는 사람이 개입하여 그녀를 흉내냈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만다가 비로소 '타인'이라는 모습으로 그의 시야 앞에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이유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테오도르는 사만다만을 사랑했지만, 사만다는 그게 아니었죠. 테오도르를 포함한 641명의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뒤늦게서야 전해 들은 테오도르는 마침내서야 사만다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녀를 놓아 주죠.


‘나‘ 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라는 둘이 아닌 ‘우리’ 라는 하나가 되고 싶은 맘은... 어쩜 사람에게 있어 당연하게 떠오르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가 되는 것만이 우리가 우리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지닌 결핍에 상대를 빈틈없이 잘라붙여 나라는 끈의 길이를 늘려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너와 나라는 서로 다른 끈을 단단하게 묶어 결코 풀리지 않는 매듭을 지어나갈 수도 있는 것이죠. 그 끈이 비록 전부 다 해지고 볼품없는 것일지라도요.



‘together‘ 라는 단어를 붙여서 말하면 단어 속의 주체는 ‘우리’가 되지만, 이 글자들을 떨어뜨려놓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녀’ 라는 새로운 단어가 드러나게 되지요. 우리가 우리로 돋보일 수 있는 법, 사실 그것은 너와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사수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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