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겪은 서러움일까 (1)
한국에 몇 개월 다녀왔다.
지금은 미국에 다시 돌아와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다.
한국에서 몇 개월 쉬다가 올 생각에 원래 살던 방과 짐도 빼고, 일하던 학교도 그만두고.
일정한 수입을 버리고, 삶의 터전을 정리하고 갈 만한 배짱이 어디서 나왔을까.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난 집도 없고, 잡(Job)도 없는 거지 아닌 거지 생활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자꾸 먹을 것들을 챙겨준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사주고, 가져다주고. 사랑이 넘친다.
다행히 한국 오기 전에 미리 구해둔 방이 하나 있었다. 멀리서 영상과 사진으로 받아본 방과 화장실의 상태는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집을 골라 갈 수 있는 사치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 돌아와서 당장 경제생활이 가능한 게 아니고 모아둔 돈으로 기약 없이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버짓도 최소한으로 잡아야 했고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고를 수 있는 방이 많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 미국과 연락하며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도착해서 힘들게 짐 풀고 정리를 하면서도 느낌이 이상했다. 단순히 낯선 환경 때문은 아니고 집주인의 싸함.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 “쎄하다” 라는 느낌은 처음 받아 본 것 같다. 그리 넓지 않은 인간관계 탓일까,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탓일까, 무엇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30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느껴본 쎄함. 미국에 도착한 날부터 사소하게 말이 자꾸 바뀌는 것들이 생겼다. 집주인과 같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 최대한 잘 지내려 했다. 찜찜함은 있었지만 적응하려 노력한 지 3일 정도 지났을까, 마침 일주일 뒤에 이사 나간다던 (옆방에 똑같이 세 들어 사는) 동생이 나와 얘길 나누고 싶어 했다. ‘왜일까 ‘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가는 사람이 들어온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그 내용이 뻔해 보였다.
‘역시나’.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내 방에서 살던 세입자와 집주인의 에피소드들, 본인이 겪은 집주인과의 안 좋은 일들을 말해주곤 “얼른 도망쳐요, 언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단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트러블을 만들고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이 친구의 말은 참고만 하자 ‘ 싶었다. 내가 겪은 걸로만 판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굳이 내가 편견을 먼저 갖고 집주인을 대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지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또 며칠이 지났다. 이례적으로 더운 3월 말-4월 초 날씨였다. 35도까지 올라가는 나날들의 연속에 나의 2층 방은 낮에는 당연히 덥고, 밤에는 낮에 축적된 열이 올라와 더 더웠다. 여기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그래, 문제의 시발점.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