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행 사진을 꺼내며 - 베를린의 맛집 'Curry36'
지난 6일 방송된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선 이서진이 할배들을 모시고 베를린을 관광하는 내용이 진행됐다.
여러 번 꽃할배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이드하며 대개 실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던 이서진이 이번 편에선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숙소에서 브란덴부르크로 향하는 길에 ZOO역(Berlin Zoologischer Garten역)에서 환승해야 하는데, 지나친 줄 모르고 마지막 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할배들과 함께 우왕좌왕하는 소동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ZOO역에 내려 100번 버스를 타러 가는 화면 뒤로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베를린의 명물 패스트푸드인 커리부어스트 맛집 'Curry36'이 그것이다.
여기를 딱히 맛집으로 검색해서 찾은 건 아니었다.
어쩌다가 잡은 숙소가 ZOO역 근쳐였던 탓에 일정 후에 단지 돌아가는 길이었다.
11월이라 날씨가 매섭게도 추웠다. 발걸음을 서두르는 중에도 식당도 아닌 가판대 앞에 인파가 운집해있는 것은 여간 눈에 띄는 게 아니었다.
'이 날씨에 이 걸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이 곳이 맛집임을 보증하는 것이다'란 직관적인 판단으로
단 한 번의 구글 검색 없이 줄을 서버렸다.
줄을 서고 보니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소세지였다. 이름이 커리부어스트인 지도 몰랐다.
뭘 주문해야 할지 모를 땐 '앞에 사람이 주문한 걸로요'로 주문한다. 백일섭 할배스타일로 어찌어찌 주문하고 나니, 통통한 소세지가 감자튀김과 함께 소스가 끼얹어져 나옸다. 카레향과 더불어 미각을 자극하는 비주얼에 위점막은 설레고 함께 침샘의 흥분도는 올라갔다.
칼바람을 버티며 입식 테이블에서 먹은 커리부어스트의 그 맛이란, 질감과 풍미와 칼로리와 포만감까지 만족시켰다. 커리부어스트가 매번 먹을 때마다 그런 감동을 선사하는 음식은 아니겠지만, 11월의 그 날 먹은 커리부어스트는 마치 경기에서 최고의 폼을 선보인 선수에게 주는 Man of the Match을 주고 싶은 기억이다.
커리부어스트는 복잡하고 어려운 요리는 아니지만 베를린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와 같은(한국의 떡볶이와 곧잘 비교된다) 음식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다소 공신력은 부족한 나무 위키(일명:꺼라위키)를 참고하면 독일 대중문화의 아이콘 같은 음식이라 베를린 시장에 당선되면 커리부어스트 가판대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전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 걸 무지 좋아했다고 하니, 내 입맛이 소수의견은 아닌 것 같다.
구운 소세지에 케첩을 얹고 카레가루를 뿌리면 끝인 이 간단한 요리에서 소세지야 독일의 명성이 있는 만큼 그렇다 쳐도, 케첩도 뭔가 맛이 달랐다. 가게에 따라서는 일반 케첩을 쓰기도 한다는데, 'Curry36' 여기는 양파, 육두구, 후추, 오렌지 등 향신료가 들어간다는 익혀낸 케첩인 모양이었다.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아쉬워 케첩을 사들고 왔다. 가격은 비싸지 않았으나 유리병인 탓에 캐리어에서 깨질까 봐 이중 삼중으로 포장을 하고 쿠션(?)으로 양말들까지 배치한 끝에 무사히 운반하였다. 귀한 몸으로 냉장고에 모시면서 가끔 소세지와 함께 베를린의 맛을 추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