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urdoc Aug 17. 2017

오래된 여행 사진을 꺼내며

옛날 유럽 여행 이야기

2005년 11월쯤 처음 유럽 여행을 갔던 기억을 꺼내보면


그땐 스마트 폰도 없었고


그러니 카카오톡 음성통화, 구글 지도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집에 전화라도 드리려고 인천 공항에서 '월드 폰 플러스 카드'를 샀건만, 단 4번의 통화만에 바닥나 버렸다. 독일에서 터키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콜샵있다는 풍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단 돈 20센트로 1분동안 국제전화를 걸 수 있었다. 짤랑이는 유로 동전을 잡고 부스에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던 기억이 난다.


구글 지도가 없던 시절엔 길을 찾기 위해 열댓 번씩 길을 물어보는 게 일상이었다. "Excuse me"와 가련한 눈빛으로 무장한 채 거리에 사람만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다 내린 스웨덴 최북단 아비스코에선 한 시간을 걸어도 사람 한 명 나오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었다.


첫 도시로 파리에 도착해서 지나가던 가게에서 노트를 하나 샀다. 대부분의 이동을 기차로 하고, 또 갈아타고 하면 5~6시간은 예사로 비었다. 기차역 구석에 앉아, 할 일이 없으면 그 노트에 일기만 끄적였다. 기차에서 쓰고, 숙소에서 쓰고, 늦잠 자다 기차 시간 놓치면 돌아다니기 귀찮으니 역 구석에서 모자 눌러쓰고 또 쓰고, 조선시대 사관에 빙의하여 쓰다 보니 여행 말미엔 한 권을 거의 채운 기억이 난다.


여행 중에 만난 홀로 여행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심심해 죽겠더란 얘길 하더라. 그즈음 유럽 여행에서 일기장을 꾹꾹 채운 건 나만이 아니었을 거다.


지금은 일기장 보단 현지 유심을 장착한 폰으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인스타에 실시간으로 올리느라 바쁘다. 그러나 그 시절 인고의 시간이 풍부했던 여행의 여백에다 적어나간 빛바랜 일기장은 웹데이터 보단 좀 더 소중한 느낌도 있다.


그 기록들을 들춰보다 오래된 유럽 여행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CD로 백업해놨다고 안심했으나 CD의 데이터 보관 기간이 그리 짧은 줄 몰랐다. 인화된 사진만 남은 그 기록들은 어머니가 홈쇼핑에서 사셨다는 삼성 카메라로 그리도 열심히 찍어대던 것이다.


소개팅에 나가서 멋쩍은 침묵을 깨야 할 때나 꺼내던 여행 이야기들을

장롱에 묵혀 있던 사진들과 함께 소소하게 적어보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