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유럽 여행 이야기
2005년 11월쯤 처음 유럽 여행을 갔던 기억을 꺼내보면
그땐 스마트 폰도 없었고
그러니 카카오톡 음성통화, 구글 지도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집에 전화라도 드리려고 인천 공항에서 '월드 폰 플러스 카드'를 샀건만, 단 4번의 통화만에 바닥나 버렸다. 독일에서 터키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콜샵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단 돈 20센트로 1분동안 국제전화를 걸 수 있었다. 짤랑이는 유로 동전을 잡고 부스에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던 기억이 난다.
구글 지도가 없던 시절엔 길을 찾기 위해 열댓 번씩 길을 물어보는 게 일상이었다. "Excuse me"와 가련한 눈빛으로 무장한 채 거리에 사람만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다 내린 스웨덴 최북단 아비스코에선 한 시간을 걸어도 사람 한 명 나오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었다.
첫 도시로 파리에 도착해서 지나가던 가게에서 노트를 하나 샀다. 대부분의 이동을 기차로 하고, 또 갈아타고 하면 5~6시간은 예사로 비었다. 기차역 구석에 앉아, 할 일이 없으면 그 노트에 일기만 끄적였다. 기차에서 쓰고, 숙소에서 쓰고, 늦잠 자다 기차 시간 놓치면 돌아다니기 귀찮으니 역 구석에서 모자 눌러쓰고 또 쓰고, 조선시대 사관에 빙의하여 쓰다 보니 여행 말미엔 한 권을 거의 채운 기억이 난다.
여행 중에 만난 홀로 여행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심심해 죽겠더란 얘길 하더라. 그즈음 유럽 여행에서 일기장을 꾹꾹 채운 건 나만이 아니었을 거다.
지금은 일기장 보단 현지 유심을 장착한 폰으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인스타에 실시간으로 올리느라 바쁘다. 그러나 그 시절 인고의 시간이 풍부했던 여행의 여백에다 적어나간 빛바랜 일기장은 웹데이터 보단 좀 더 소중한 느낌도 있다.
그 기록들을 들춰보다 오래된 유럽 여행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CD로 백업해놨다고 안심했으나 CD의 데이터 보관 기간이 그리 짧은 줄 몰랐다. 인화된 사진만 남은 그 기록들은 어머니가 홈쇼핑에서 사셨다는 삼성 카메라로 그리도 열심히 찍어대던 것이다.
소개팅에 나가서 멋쩍은 침묵을 깨야 할 때나 꺼내던 여행 이야기들을
장롱에 묵혀 있던 사진들과 함께 소소하게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