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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doc Sep 15. 2017

고흐의 흔적이 담긴 파리 근교로

오래된 여행 사진을 꺼내며 - 오베르 쉬르 우아즈



파리에 머무르는 여행자들은 일정 중 하루 정도는 근교를 다녀오곤 한다.


2005년 내가 여행할 당시엔 파리 근교 여행지로 몽쉘미쉘이 인기가 있었다. 해안에 웅장하게 떠 있는 듯한 수도원의 모습은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었다.


난 그 몽쉘미쉘을  가지 않고 조금은 덜 유명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굳이 선택했다.  민박집에 도착한 첫날의 대화 때문이었다.





다소 헤맨 끝에 도착한 파리 외곽에 위치한 민박집은 최 비수기인 11월 답게 남자 도미토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스마트폰 따위는 없던 시절이니 2층 침대로 둘러싸인 방에서 혼자 심심하게 저녁 식사 시간만 기다렸다.


한인 민박집이라도 혼자 다니다 다른 여행자들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은 조금은 긴장되기 마련이다.


누가 있을까 조심히 부엌으로 내려가면서 본 식탁에는 두 여자분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 중이었다.


둘 다 표정이 너무 심각해 뭐라 말도 못 건네고 식탁 가장자리에 뻘쭘히 앉아 무슨 얘길 하는지 들었다.


대략 들어보니 한 분이 이전 도시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넋이 나가버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분은 여행 말미여서  본인이 거쳐간 여행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분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심각한 표정이 이해가 갔는데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은 무슨 까닭인지 무겁고 심각한 표정으로 다녀온 여행지를 하나하나 평가해주는 것이었다.


특히 파리 근교 여행지 얘기를 하면서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지만, 자신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좋았다는 얘기로 갈음했다. 그때는 첫 도시 파리에서 경황이 없었던 지라 그렇구나 하며 지나갔지만, 그분의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에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설득됐던 것 같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끌려. 그게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갔던 이유였다.




파리는 참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다.


지도를 펼쳐 들고 동에서 서로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 미술관,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라데팡스까지 하루.


남에서 북으로 지하철을 중간중간 타며 몽마르뜨 언덕과 다시 내려와서 에펠탑까지 하루.


오르셰와 로댕 미술관을 오전 오후로 나눠서 하루. 대략 훑어보는 데만도 3일이 지나가 버리는 도시다.


건축이나 미술에 문외한인지라 좋아서라기보단 뭔가 의무감으로 미션지를 하나씩 지워가듯이 다녔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그런 일정 후에 갔던 곳이라 큰 기대가 없었다.




나같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오르셰 미술관의 밀레, 고흐의 그림 정도는 알게 마련이다.


오르셰에서도 고흐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방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어디에선가 봤던 그림도 있고, 생소한 그림도 있었으나 워낙에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화가이다 보니 그림은 곧잘 눈에 담겼다.


그땐 사실 곧 갈 오베르 쉬르 우아즈와 오르셰에서 봤던 고흐의 작품들을 연결시킬 생각도 못했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하고서 알았다. 여기에 고흐의 흔적이 이리도 많이 남아 있는 줄.


조그마한 기차역에 도착해 걸어가는 길은 여느 프랑스 시골 마을이었다.


조금 걸어가면 있는 여행 안내소엔 한국어로 된 소책자도 있어 반가웠다.


소책자의 지도에 표기된,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은 즐거운 미션 같았다.


그냥 보면 흔한 오솔길이지만 고흐의 그림을 그렸던 지점의 안내판 앞에 서 있다 보면 고흐가 보았을 세계를 나도 잠시 임대하는 듯했다.


그렇게 바쁘지 않게, 한가하게 걷는 시골길이 여느 미술관보다 즐거웠다.




그러다 멈춘 곳은 '오베르의 교회'라는 곳이었다.


오르셰 미술관에서 본 '오베르의 교회'란 그림과 꼭 같이 생긴 모습에 반가움이 앞섰다.


그리 크지 않은 시골 교회 앞에서 잠시 보고 있자니 오른편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어떤 미술학도로 보이는 이였다.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가 그려진 지점에서 그는 고흐의 자취를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이 보다 더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흐가 있던 그 지점에서 같은 방향으로 붓을 옮겨가던 미술학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고흐를 팔로잉하고 있었던 것 같다.


노트르담 성당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사람이 몰리지도 않고, 입장료조차 없는 오베르의 교회는 그 기억 때문인지 더 마음 가까이 와 닿은 곳으로 남아있다.









조금 더 멀리 걸어서 고흐가 묻혀있는 묘지로 찾아갔다.


많은 무덤이 있는 공원묘지 같았던 그곳의 바로 앞은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이 그려진 곳이었다.


그 앞에서 시골 밀밭에서 고흐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상상을 펼쳐보았다. 한가로운 하늘을 보며 서성였던 것 같다.


고흐는 참 소박하게 묻혀있었다. 그 옆에는 동생 테오도르도 같이 있었다.


그가 남긴 미술사의 족적과는 너무도 다르게 차분하고 수수한 무덤은 동생의 무덤과 형제가 생전에 나누던 우애만큼이나 꼭 붙어 있었다.


고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형제의 우애만큼은 길이 기억할 것 같아 괜히 흐뭇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방문한다면 고흐의 무덤까지는 한 번 걸어보자. 그를 정말로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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