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절입니다. 사랑해요 유월
주말 아침부터 서둘렀다. 찌뿌둥한 몸에 찌뿌둥한 기분으로 주말을 지내기가 싫어 땀을 흘리려고 나왔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슬비를 페이스 메이커 삼아 살짝 뛰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재래시장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한낮처럼 분주한 사람들이 보인다. 각종 야채와 고기, 과일을 파는 익숙한 광경에 못 보던 풀이 눈에 걸린다. 기다란 초록 풀을 보니 뇌 한쪽에 불이 켜진다. 아! 단오절端午节이구나. 창포菖蒲와 쑥艾草이다. 평소엔 볼 수 없는 창포와 쑥을 펼쳐놓고 파는 상인과 어디 딱히 쓸데가 없어 보이는 그 풀뭉치를 구매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다음 연휴의 정체성을. 나에겐 그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6월의 황금연휴인 그날의 진정한 이유를. 초나라의 충신이었던 굴원의 죽음을 기리는 단오절이자 춘절春节, 중추절中秋节, 청명절清明节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대단한 명절이다.
돤우지에端午节라고 불리는이 명절은 음력 5월 5일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나쁜 기운을 쫓고 여름을 맞이하는 날로 중국, 일본, 한국 세 국가 모두가 쇠는 날이다. 물론 국가의 방침에 따라 공휴일 여부가 다르며, 이런저런 세월의 흐름에 따라 풍습이 변해 세 나라의 단오는 다 다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메이지 유신 이후 양력으로 바꾼 일본의 단오인데, 양력 5월 5일이라 어린이날과 겹친다는 특성상 남자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날이 되어 이날이 되면 남자아이들이 종이로 만든 모자를 쓰고 무사 인형을 방에 갖다 둔다고. 왜 여자아이 건강은 제외된 건지 딴지를 걸고 싶다. -> 여자아이의 건강은 3월 3일 히나마츠리 때 기원한다고 이정미 님이 댓글로 알려주셨다. 다른 날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왜 남자아이만,,,? 하고 피해의식을 바탕으로 한 딴지는 이렇게 종식되었다.(반성) 일본 다시 한국의 단오는 모내기가 끝난 후 비가 잦은 5월이 습하고 더운 기운으로 여러 가지 병이 기승하는 시기에 맞춰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기 위한 날이다. 창포와 쑥이 향이 강해 악귀와 병마를 막아준다고 믿어 이 풀을 활용한 다양한 풍습이 생긴 것인데 쑥떡을 만들어 먹거나 창포잎에 담근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런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강릉의 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단오절 자체가 아니라 '축제'가 등재되었다는 것. 유네스코는 명절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단오절보다 단오제가 유명하고, 아무래도 공휴일이 아닌 탓에 그 의미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강릉 단오제가 있어 참 다행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의 단오절이 있다. 계절이 변화하는 시기에 액운을 쫓고 건강을 기원하는 인류의 오랜 바람에 역사적 서사가 더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달아 쉬는 날이다. 이번 단오절은 대체 근무일인 일요일에도 쉰다면 목금토일 4일을 쉰다. 현대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명절이 어디 있으랴.
6월 초부터 마트나 길거리 상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쫑쯔粽子라고 불리는 이파리로 감싼 주먹밥이다. 찹쌀에 고기, 팥, 대추 등 다양한 부재료를 넣고 연잎이나 댓잎으로 감싼 뒤 실로 꽁꽁 매고 쪄낸 음식인데 간이 딱 되어 있고 쫀득하니 맛있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요즘은 진공포장 형태로 마트에서도 타오바오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 수향마을에 가면 전통식으로 만든 쫑쯔를 종류별로 만날 수 있다. 단오절 대표 음식이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쫑쯔를 만들어 서로 선물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다고 한다. 한국의 김치맛이 집집마다 달랐듯이 쫑쯔도 집집마다 부재료가 달라 그 맛이 분명 달랐을 터. 내가 만약 쫑즈를 만든다면 나는 무엇을 넣을까 상상해 본다. 참치마요 쫑쯔를 만들어볼까? 김치를 자작하게 볶아 넣어볼까? 이렇게 또 새로운 문화의 탄생이 목전에 있다. 과연 만들까 싶다만.
쫑즈와 함께 단오절 즈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창포와 쑥으로 만든 장식이다. 크리스마스 리스처럼 집집마다 문 앞에 걸어두는데, 투박하게 창포와 쑥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아기자기한 장식품도 달고 원하는 글귀를 적은 종이도 달아 인테리어 소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장식의 이유는 간단하다. 나쁜 기운을 쫓고 병마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래서 재래시장에 창포와 쑥이 시즌 아이템으로 나온 것이고 길에서 기다란 창포와 쑥을 자전거 바구니에, 전기오토바이 디엔동电动에 싣고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피날레는 용선제龙船节다. 용 모양을 한 기다란 배에 여러 명이 타고 힘차게 노를 저어 강의 일부 구간을 다녀오는 것인데 시합으로 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중국의 단오절을 Dragon Boat Festival라 부른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용선제가 가장 이색적이었는지 단오절의 일부를 사용해 영문명을 만들었다. 일부로 전체를 말하는 제유법에 의해 단오절의 영문명이 만들어졌다.
중국의 단오절 모습을 네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약초가 든 향 주머니를 만들어 선물하고 몸에 지니고 다니며 둘째, 쑥과 창포를 이용한 장식을 문 앞에 걸어둔다. 셋째, 쫑쯔를 먹고 넷째, 12명이 탄 용모양의 긴 배끼리 시합을 한다. 앞에 두 가지는 일본과 한국처럼 양기가 왕성한 시기에 건강을 기원하고 액운을 물리치기 위한 것인데 뒤에 두 가지는 대체 뭐란 말인가.
중국 단오절의 쫑즈와 용선제는 옛날 옛적의 한 남자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의 이야기는 요즘 드라마 서사로도 손색이 없다. 바로 기원전 340년부터 278년까지 살았던 초나라 시인이자 정치가, 굴원 屈原이다. 초나라 회왕 시절, 똑똑한 충신이었던 그는 이웃하여 힘을 과시하는 진나라가 회왕에게 방문을 요청하자 반대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했나 보다. 회왕은 굴원의 말은 저버리고 막내아들 자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의 권유를 따라 진나라에 간 회왕은, 억류당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아버지 대신 왕이 된 큰 아들은 막내아들 자란과 상관대부의 중상모략에 넘어가 굴원을 강남으로 추방했다. 절망한 굴원은 '이소 離騷'라는 시에 그 참담한 마음을 남기고 유배 길에 창샤长沙에 있는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졌다. 떠오르지 못하도록 돌덩이를 품에 안은 독한 마음으로. 잠깐 그의 시 일부를 통해 그 마음을 읽어보겠다.
"다 끝났다!
이 나라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없는데,
나라를 생각해서 무엇하겠나?
바른 정치 위하여 손잡을 이 없으니,
나는 은나라 때 팽함(굴원이 숭배하는 현인)을 따라 죽으리."
"亂曰 : 已矣哉!
國無人莫我知兮,
又何懷乎故都,
旣莫足與爲美政兮,
吾將從彭咸之所居. "
[네이버 지식백과] 「이소」 [離騷]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2010. 3. 24., 이수웅)
굴원이 떠나고 초나라는 진나라에 야금야금 영토를 뺏기다가 50여 년 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굴원의 투신으로 돌아가서, 그의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슬퍼하며 그의 시체라도 찾고자 배를 타고 강 곳곳을 살폈다. 여러 배가 강 곳곳을 다니며 노를 젓는 모습이 지금의 용선제의 모습과 닮았을 것이다. 시체를 찾으며 자신들의 끼니였던 주먹밥을 강물로 던진 것이 쫑쯔다. 물고기가 굴원의 시체 대신 이걸 먹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서양에 눈물 젖은 장발장의 빵이 있다면, 동양에는 강물에 젖은 쫑쯔가 있다. 이런 슬픈 이야기 때문에 명절이나 좋은 날 뒤에 붙이는 '콰이르어快乐'라는 말을 단오절에는 쓰지 않았다고 한다. 왜 과거형이냐면, 요즘엔 또 구분하지 않고 쓴다고 한다. 아무래도 굴원의 넋을 기리는 것보다 연휴에 쉬는 현대인의 마음이 점점 반영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원래 문화란, 사람 사는 것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참고로 단오에는 건강하고 평안하라는 의미를 담아 돤우안캉 端午安康 이라는 말을 인사로 쓴다.
지난 몇 년간의 단오절을 돌이켜 보니, 어떤 해에는 드래건 보트 타기 행사에 참여하고, 어떤 해는 쫑쯔를 만들어 보고, 어떤 해는 향주머니를 선물 받으며 이 문화가 낯선 이방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꼭 이런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도 여름의 초입에서 맞는 휴일이기에 옷장 정리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며 현대판 건강 기원과 액운 퇴치를 하고 있다. 연휴에 무엇을 하든 그것이 누군가의 단오절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두 계절의 변화의 역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각자의 단오절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정말 양기가 왕성하긴 한가 보다. 며칠 동안 폭우가 쏟아지더니 단오절을 하루 앞둔 어제부터 날이 맑고 쨍한 것이 정말 더운 여름이 시작된 것 같다. 단오가 지나고는 이틀 내내 비가 왔다. 굴원의 마음을 생각하며, 충신을 잃은 백성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쫑쯔를 먹어 보련다. 그리고 이 연휴의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며 '콰이르어快乐'할 예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돤우안캉! 돤우콰이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