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되는 엽서를 자꾸 만드는 이유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천우희를 닮은 엽서
돌아다니다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든다. 선물하려고 만든 엽서는 맘 좋은 사장님 덕에 상하이 선물가게 어묵상점에서 인기 상품이 되기도 했다. 올해 초 상하이에 놀러 온 소중한 이들에게 며칠의 밤마다 엽서를 건넸다. 오늘 하루를 잘 담아가라고. 여행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 단순한 기분과 감정만 남겠지만, 엽서에 몇 자 적어두면 언제고 꺼내볼 기억의 인덱스가 되니까. 그러면 언제든 훅 다시 그 마음이 꺼내지니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바쁘게 살다가도 방 어디에 붙여둔 엽서를 보면 그때의 마음이 생각나니까. 그렇게 떠오르면 미소 지어지는 순간을 모아가는 게 재테크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니. 순간 모으기, 그래 순테크. 구구절절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하루 동안의 발자국을 몇 개의 단어로만 붙잡아도 충분하다. 그렇게 들이민 엽서를 받아 든 소중한 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하루를 기록했다. 같은 곳을 갔어도 보고 느낀 바를 다다르니 기록도 다르다. 기록할 게 없으면 안 해도 좋다. 일상이면 안 했을 일도 일탈 중인 여행에선 즐겁다. 돈 쓰고 시간 쓰며 그렇게 많은 사진을 남기는데, 글자 한두 개 정도도 남겨두면 좋지 아니한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마 읽을 일은 별로 없을 거다. 현대인이 얼마나 바쁜데. 그래도 청소하다가, 이삿짐 정리하다 한 번씩 들춰보게는 되더라. 그렇게 기록된 추억을 읽다 보면 또 내 인생이 썩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순테크의 힘은 크며 힘들거나 지칠 때 그 힘이 발휘된다. 회사 가기 싫을 때 돈 벌어서 여행 가야지 하며 힘차게 출근할 수 있을지도.
또 엽서를 만들었다. 드라마에만 시즌이 있나, 엽서에도 있다며 시즌2 상하이 엽서를 만들었다. 만들 때는 신나서 만들다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돈도 안 되는 일에 뭐 이리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나. 머니머니해도 머니가 진짜 최고가 된 세상의 가스라이팅임을 알면서도, 이 소리에 어찌나 설득되던지, 다 만들어 놓고는 제작을 멈췄다. 그러다 테레비 박사인 친구의 추천으로 드라마 한 편을 봤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뭐야 유치해’하다가 영화 <담보>의 담보가 청소년이 되어 나오길래 열심히 봤다. 아 근데 이거 … …. 진짜 웃겼다. 초능력 가족이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잃었다는 그 설정이. 불면증에 걸려 예지몽을 못 꾸고, 비만에 걸려 날지 못한다. ㅋㅋ 그리고 장기용 배우가 맡은 복귀 주는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쓰지 못한다. 우울증에 걸려서 행복을 느낄 수가 없어서!!!
작가님 브라보를 외친 순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초능력자가 행복을 느끼지 못해서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니! 그런 그는 천우희 배우가 맡은 도다해를 만나 행복을 느끼고, 그녀는 그의 돌아갈 수 있는 과거, 행복했던 순간이 된다. 그렇게 시간여행의 스테이션이 된다. 이 유치한 설정에 마음을 빼앗겨 집중해서 재밌게 봤다. 그리고 묵혀둔 엽서가 생각났다. 그래, 이걸 만드는 이유는 이 도시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잘 기록하고 모으기 위해서지! 복귀주에게 도다해가 있듯, 상하이에 오는 사람에게 요 엽서가 있어야지~! 그리고 신나게 다시 엽서를 만들었다. 돈이 안 된다는 건 변함이 없지만 자본주의의 명분을 행복 명분이 눌렀다. 행복 스테이션은 우울증 치료도 하잖냐며 아, 돈이 안 되면 어때, 저렇게 사람 살리는데~ 혼자 별의별 의미를 몽땅 부여했다. 쉘위순테크?
드라마에서 장기용 배우는 행복한 과거로 갈 때 두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꼭 감는데 원래 잘생기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매우 예쁘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기 때문일 거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면 누구나 예뻐질 수 있다. 생각보다 짧은 행복의 순간, 이에 대한 기록과 함께라면, 누구나 다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 상하이 여행의 기록은 농호 상하이 엽서가 최적이고... 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엽서도 천우희 님만큼 예쁘다. ㅎㅎ 주말에 어묵상점에 갖다 드려야지!
어묵상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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