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지만 라오와이(老外)는 아닙니다.
상하이서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와! 외국인 많다."인데, 여기서의 '외국인'을 풀어 말하자면 사실 국적이 다른 사람이라기보다 시각적으로 구분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80년대생인 나는 지구촌 한가족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세계와 외국인에 대해 참 많이 배웠지만 삶에서는 대부분 나와 같은 국적과 인종인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게다가 단일민족이라는 오개념을 가진 것도 모자라 강조하며 하나 된 공동체를 좋은 것으로 여기던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구촌 한 가족'은 글로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라,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은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성인이 된 후에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외국인'의 사례를 '백인' 또는 '흑인'으로 접했기 때문인지, '다른 나라'인 중국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도 이곳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소위 동양인의 피부와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시각적인 이질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내가 '외국인'인 것을 간과하고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언어와 단어는 그 사람의 생각을 나타내는 그릇이다. 이 '외국인' 사례를 통해 나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 번째는 다양성을 글로만 배웠을 뿐 삶에서는 체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어휘가 담지 못하는 다양성과 우리의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 시각적인 요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되었다. 그런데 '다양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해도,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가 바뀐다는 것은 어디 캠페인이나 수업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는 몇십 년부터 외쳐왔지만 포스터 하나 그린다고 어디 환경보호가 실천으로 이어지겠는가. 알고는 있지만 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다이어트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가장 빠른 방법은 그런 상황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경험과 했을 때 좋다는 것이 여실히 나타나는 환경에 있을 때이다. 폭염과 가뭄을 보니, 이래선 안 되겠다며 무해한 생활을 위해 움직이고, 건강에 무리가 왔을 때 다이어트 상식이 생활화가 된다. 또는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나 그런 방식이 쉬운 환경에서 우리는 쉽게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의 그러했던 사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사는 상하이에 살면서 조금씩 넓어지며 어휘의 그릇도 커지고 있다. 누가 봐도 한국인 외모지만 한국엔 가본 적 없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나, 누가 봐도 백인이지만 상하이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친구들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살아온 친구들이나 워낙 다양한 경우가 많아서 외모만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구나를 맞추기 힘들다. 물론 막 상하이에 온 사람들의 경우나 상하이에서 살아도 고유문화나 동일 국가 공동체에서 산 사람들은 외모나 분위기가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도 일본 사람, 한국사람 정도는 구분이 가기도 한다. 어쩌면 그 구분은 다른 문화가 한 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더 선명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국적과 인종, 민족이 개인의 역사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누가 '외국인'인지 누가 '내국인'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곳이 상하이고 뉴욕이나 런던, 파리와 같은 대도시는 보통 같은 상황일 것이다. 세계화가 핵심어가 되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분위기가 도시마다 커지고 있다고 본다. 완벽한 다양성 존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런저런 상황을 만나고 예외를 만나면서 내 머릿속의 방이 커지거나 여러 개가 되어 갈 때 나름의 희열이 있다.
자주 국제도시라 불리는 상하이에도 이런 외국인에 대한 좁은 사고가 담긴 재미난 단어가 있다. 바로 라오와이(老外)다. 라오와이(老外)의 라오(老)는 보통 대상을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접두사로 어린이들이 호랑이를 친근하게 부르는 라오후(老虎,호랑이)나, 어르신들에게 친근함을 표현할 때 성(姓)에 라오(老)를 앞에 붙여 부르는 것 등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이(外)는 바깥을 의미하는데 외국인의 외(外)와 같은 한자를 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라오와이(老外)라고 부르는 영역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동양인이지만 외국에서 온 한국인이나 일본인, 베트남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즉, 백인과 흑인, 즉 외모로 확 다름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격식 단어다. 작은 어촌 마을 상하이에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역사는 난징조약(184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상하이가 다양성을 담기 시작한 것은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당시 상하이 사람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온 눈이 파랗고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바깥에서 왔으니 그곳이 프랑스건, 미국이건, 영국이건 백인은 모두 라오와이(老外)였다. 당시 상하이에 온 외부 인구의 대부분이 백인이기도 했고, 조선 한반도나 일본 열도에서 간 사람들이 있었지만 복식으로 차이는 났을지라도 외모 자체로는 이질감이 없었기에 굳이 따로 부를 단어가 필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 라오와이(老外)는 오늘날까지 이어졌는데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 종종 외국인을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사용하거나 이런 역사와 관련된 장소에 대해 고유명사로 남아 있어 회자되고 있다. 사실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러한 현상도 변화된 사고의 흐름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라오와이(老外)가 지명에 남아 회자되는 대표적인 곳이 민항구 홍메이루에 위치한 라오와이지에(老外街)다. 단어 그대로 <바깥에서 온 친구들의 거리>다. 2000년대 초반 이 근방에 사는 서양 문화를 뿌리로 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펍이나 맥주 바가 한데 모여 상업 공간이 조성되었는데, 당시 이런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낮으로 밤으로 모여들며 홍메이루(虹梅路)의 짧은 이 거리가 문전성시를 이루며 상하이의 다양성 감성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한편, 이런 분위기와는 무관하지만 역사적으로 마오쩌둥의 기차 대륙 이동 중 잠시 정차한 곳으로 의미가 있는 지역이라 길 옆에 관련 내용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상하이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쯤 들어보고 가봤을 만큼 유명한 거리로 요즘은 이런 분위기의 구역이 시내 곳곳에도 많고 이 근방에 거주하는 서양 문화권 출신의 인구가 줄어서 그 분위기나 명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또 새단장을 하고 요즘 인기 있는 레스토랑이 입점하고, 플리마켓이나 애완동물 수영장 등 다양한 행사로 불금과 주말을 보내기에 여전히 충분한 곳으로 라오와이(老外) 말고도 르뽄런(日本人, 일본인), 한궈런(韩国人, 한국인), 중궈런(中国人, 중국인), 모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이번 주말에는 20주년 기념 맥주 축제가 열려 라오와이지에(老外街)의 공기가 한 층 들떠 있다.
세상사가 칼로 무 자르듯 선명하게 나눌 수 없기에 상황과 맥락에 따라 나는 외국인이 되기도 하고 현지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행정적으로는 외국인이고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선 현지인이다. 상하이 길에 관해서는 어느 현지인 못지않게 잘 찾는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지나면서 단어의 쓰임이나 의미가 변하는 건 인문학의 이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렇게 인류의 사고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통점과 차이점도 국가라는 집단에 의해서냐, 경제적 수준에 의해서냐, 취향에 의해서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디에나 적용되는 공식이라는 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문학이 어렵고 재밌다. 다양성과 상황의 맥락을 살펴보는 통찰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래서 라오와이지에(老外街)에서의 맥주 한 잔은 단순한 음주가 아닌, 통찰력을 키우는 마법의 음료가 될 수도 있다.
�老外街 虹梅路3338弄1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