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에서의 기억
전 직장에서 신입시절, 직장선배의 출장을 대신 가게 되었다. 출장지는 지방에 있었고, 출장지까지 기차를 타고 갔어야 했기에 수서역에서 거래처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거래처 사장님의 첫인상은 이랬다. 50대의 남자, 똑똑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초롱초롱하고 생기 있는 눈, 머리카락의 반정도는 백발, 키는 작은 편이고 목소리는 크고 자신감 있어 보이고 말이 또박또박하고 빠르다, 만난 시점에 기차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간단한 인사 후에 기차에 올랐다. 사장님의 좌석이 내 좌석과 꽤 멀었기에 별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서 차량을 기다리던 중에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기 걸었다. 아주 간단한 호구조사부터 시작한 이상할 것 없는 대화였는데, 뜬금없이 나에게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대답해 드렸더니 돌아온 답변은
"내 한 달 월급정도네?"였다.
그 대답을 시작으로 그 사장님을 내 기억에 오랫동안 박히게 만들었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동행하는 내내 사장님은 나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어필하였다.
자기가 회사를 차리기 전에 전 회사에서 어떤 직책이었는데 자금을 얼마를 총괄했고
지금은 사장으로 있으면서 얼마를 벌고,
자기 계발강의도 하고,
딸이 뉴욕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등등 하나같이 자기 자랑으로 느껴지는 얘기들이었다.
자기 자랑이 끝난 사장님은 나에게 성공컨설팅을 해준다고 하였다.
이곳저곳 강연도 다니는 자기 계발 강사인 자기가 이렇게 1:1 코칭을 해준다는 건 돈 주고도 받지 못할 값진 기회라고 말했다. 내가 관심 없음을 은근슬쩍 어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나가는 사장님을 보면서, 성공컨설팅을 해준다는 이야기도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일을 마치고 기차에 올랐다. 사장님과 자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끌 수 없는 자기 계발서 오디오북 같던 사장님에게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고 책을 폈는데...
내 옆자리가 비자, 사장님은 내 옆으로 와서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예 노트북을 펴가면서 자신의 자기 계발강연 자료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 시간에 얼마얼마하는 강사인데 뭐 물어볼 거 있냐고 질문하기를 강요하였다. 억지로 질문 몇 개 하였고, 내가 읽던 책에 대한 잔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악몽 같은 3시간을 보냈다. 남의 성공신화를 파는 자기 계발 작가 같은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성공의 경험이 있기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회사에 그 사람이 자주 방문하였지만 나는 더 이상 시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담당자에게 자기자랑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연하게 그 사람의 배경에 대해서 들었는데, 그 사장님의 아버지가 업계의 든든한 뒷배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노력까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3루 타석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실감이 났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한들 조언도 타이밍이 있고,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조언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