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찔이로 살아봤어요?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맵찔이다.
떡볶이 집에 가면 나는 항상 떡볶이 순한 맛을 시키고,
신라면이상으로 매워지면 먹지 못한다.
매운 음식을 입에 대기만 해도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괜찮냐”라고 묻지만, 물론 나는 괜찮지 않다.
혀는 타들어 가고, 땀이 눈앞을 가린다.
땀을 닦느라 정작 음식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도 든다.
누군가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나에게 매운맛은 고통일 뿐이다.
어릴 적 사촌 동생과 아주 매운 떡볶이를 먹은 적이 있다.
나는 하나 먹을 때마다 물을 다섯 컵씩 마셨는데,
사촌 동생은 “물 마시고 싶어도 꾹 참으면 먹을 수 있어 ”라며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사촌 동생이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도무지 사촌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왜 굳이 이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매운 걸 먹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매운맛의 강도는 사촌 동생이 느끼는 것과 다르다는 걸.
사람마다 매운맛을 느끼는 ‘수용체’의 민감도가 다르기에, 수용체가 예민하면 매운맛을 더 강하게 느끼고, 무디면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나는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엄마를 닮아, 매운맛 수용체가 아주 예민한 편인 것이다.
매운 것도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긴다고 하지만, 어릴 적부터 매운 음식을 꽤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라면을 땀 흘려가며 겨우 먹는 걸 보면, 내 매운맛 수용체는 이 정도가 한계인 듯하다.
술도 매운맛처럼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양이 다르게 정해져 있다고 한다.
"술도 마시면 는다"는 말, 술자리에서 많이 들었던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주량도 거의 타고나는 것이라고 한다.
매운 것을 잘 먹을 수 있는 것도, 술을 마실 수 있는 양도 타고난 것이었다.
이처럼 신체적 수용 능력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우리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사람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이 ‘노력’으로 해결가능하다고 교육받아 왔다.
물론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재능차이를 무시한 `노력만능주의`는 때로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고, 자신을 탓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매운 음식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고,
누군가는 매운 음식 앞에서 숨이 막히듯 괴롭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맛을 강요할 수 없듯,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의 ‘성공’이나 ‘행복’을 강요할 수도 없다.
우리는 각자 다른 수용체를 가진 존재다.
그 다름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