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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Mar 17. 2019

호텔의 경쟁상대는, 다른 호텔일까?

파괴적 혁신의 관점으로 본, 여행업계의 현재

"인피니티 풀을 갖춘 야외 스파, 화려한 조명을 갖춘 실내 찜질방, 기발한 인테리어의 (아이들이 좋아할) 레스토랑이 한 곳에 모두 갖춰진 초대형 리조트를 만들면, 고객들이 비싸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 음...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요."


가끔 업계 컨설팅이나 리서치에 참여할 때가 있다. 오늘 한 호텔 브랜드가 의뢰한 내용은 신규 호텔 기획이었다. 그런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신규' 호텔이라기엔 너무 익숙했다. 이미 서너 곳의 호텔이 보유한 부대시설 중에서 유명한 몇 가지를 콜라주처럼 조합해 놓았던 것이다. 심지어 콘셉트라며 보여준 동영상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북유럽의 스파 리조트 홍보 영상이었다. 물론 익숙한 것의 조합으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호텔이 바라보는 자신의 문제점과, 고객이 생각하는 호텔의 문제점은 그 지점이 너무나 달랐다. 새로운 호텔을 기획하는 이유가 현재 호텔의 고객 선호도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라면, 그리고 그 이유가 단지 트렌드에 뒤쳐지는 '시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면 나는 그 결과에 동의하기 어렵다. 


기업 강사라는 직업상, 전국의 수많은 호텔과 리조트에 있는 교육장에서 강의를 한다. 마침 이 호텔도 일전에 서너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사소한 경험이 '여기는 믿고 걸러야겠다'는 인식을 갖는 데 일조했다. 로비에 도착했을 때 인상적인 장면은, 타 특급 호텔에 비해 유난히 젊은 연령대의 프런트 직원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호텔 내 위치나 부대시설에 대해 물으면, 왜 이런 것을 묻냐는 듯 귀찮고 퉁명스럽게 답하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소위 '쎄함'이 있었다. 이들에게 호텔리어로서의 자부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기업 고객센터 직원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주변의 다른 투숙 경험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이 호텔에서 강의가 끝나고 로비로 이동하기 위해 내부 운행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중년의 남성 호텔리어가 서 있었는데, 나보다 나중에 온 (기업 고위급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차량 의전을 한답시고, 양해 한 마디 없이 내 앞을 팔로 가로막으며 비켜서라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무의식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고압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와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오랜 시간 트레이닝된 호텔리어가 이 수준이니, 로비의 젊은 직원들 태도가 그제야 납득이 됐다. 이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겠는가? 나는 고객보다는 상사라고 본다. 


돈을 내고 투숙하러 왔다면 이런 호텔에 만족할 수 있을까? 만약 새롭게 만들어질, 엄청나게 화려할 리조트가 가격은 두 배 올리고 서비스는 이대로라면? 굳이 다른 호텔을 포기하고 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 호텔 관계자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면 서비스보다는 시설과 기능면에 대한 언급이 훨씬 많다. 고객 경험의 시작이 되는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호텔이 바라보는 경쟁자, 혹은 목표는 명확하다. 최근 성공을 거둔 몇몇 대형 호텔에서 만든 인스타그래머블한 리조트 시설이 너무나 부럽고 탐나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관점(시설과 기능)에서만 경쟁 시장을 바라보면, 이미 존재하는 파이를 서로 갉아먹는 제로섬 게임밖에는 할 수 없다. 


'파괴적 혁신' 이론을 창조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벤치마킹과 경쟁사 따라 하기에 집중하는 전략으로는, 시장점유율을 높일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경고한다.(책 <일의 언어> 중) 넷플릭스 CEO가 '자신들의 경쟁자는 TV가 아니라 비디오 게임, 심지어 와인 한 잔을 마시는 일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한 이유는 왜일까? 시장 경쟁 구도를 '버터 vs. 마가린', '코카콜라 vs. 펩시콜라'와 같이 단순화해서 분석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호텔의 적은 더 좋은 호텔일까? 에어비앤비일까? 


나는 호텔의 경쟁 상대가 더 이상 숙박이나 스파 시설이 아니라고 본다. 고객의 여가를 기분 좋게 꾸며주는 모든 콘텐츠와 경험은 모두 호텔의 경쟁자다. 그 대상은 고객의 수면을 도와주는 10시간짜리 ASMR 영상일 수도 있고, 해외에서 열리는 BTS 콘서트를 위한 원정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시설은 더 좋지 않아도 엄청난 심적 만족감과 편안한 서비스를 선사하는, 작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나는 베트남에서 전통 다도를 배우기 위해 티하우스의 홈스테이에 머물렀고, 그 대신 2박의 호텔 투숙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그런 내 여행 패턴을 관찰하면서, 미국 최고의 투어리즘 미디어 스키프트(Skift) 창업자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여행업계의 혁신은, 실제로는 주류 업계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호스피탈리티 교육계에서는 지금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옛날이야기 같은 교육만 실시한다. (미국의) 강사와 교수진들은, 여행 비즈니스의 최신 동향과 나아갈 길에 대해 학생보다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의 호텔과 여행의 혁신도, 전혀 다른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그 지점들을 하나씩 찾아 나서볼 생각이다.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여행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한 여행기술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여행 인플루언서.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전 세계 여행산업 행사를 취재합니다.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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