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활용법
이 책은 호텔의 부대시설을 소개하거나 특정 호텔을 추천하는 여행서는 아니다. 여행자에게는 '여행에서 호텔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라는 환기를 일으키고자, 호텔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과정을 단편적으로나마 풀어냈다.
또한 호텔업계 종사자에게는 '위치가 좋지 않은 호텔이라도 이런 점 때문에 고객은 찾아오는구나', '럭셔리의 개념이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와 같은 숨겨진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기쁠 것 같다.
-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서문 중에서
작년에 출간한 두 번째 저서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는 여름철 호캉스 시즌과 맞물리면서, 다행히 두 달도 안되어 2쇄를 찍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전에도 호텔을 다룬 단행본이 시중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출판시장에서 '호텔'은 오랜 시간 흥행 키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 역시 2016년부터 이 책의 출간기획서를 돌렸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호텔 서적은 은퇴한 호텔리어가 집필하는 교재나 전문서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해인 2018년부터는 유독 호텔을 '목적지(destination)'로 다루는 매거진 기획이나 보도가 크게 늘었다. 역시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 듯싶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그러니까 여행에서 호텔의 역할이 확장되는 현상을 여행자 입장에서 분석해본 콘텐츠다. 그러니까 전문서가 아니라 에세이에 가까운 실용서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의 피드백은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정작 호텔업계에서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처음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호텔이 이 책을 생산적으로, 때로는 기발하게 활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국내 호텔업계의 더딘 변화에 책이 작은 역할이나마 하길 바라는 마음을 책 서문에 내심 표현하면서도, 미처 상상조차 못했던 결과였다.
작년부터 연간 1~2회에 걸쳐 롯데호텔 앤 리조트의 전체 신입사원 대상으로 글로벌 호텔 트렌드를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여름에 교육을 하러 갔다가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가 사전 필독서로 지정되어, 100명의 신입사원이 모두 이 책을 읽고 서평까지 써서 냈단다. 그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호텔 사례와 그 이유'를 몇몇에게 물었다. 주로 '호텔 주변의 로컬 여행정보 제공과 같은 컨시어지 사례를 보면서, 호텔리어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답변이 많았다. 저자로서 책을 집필한 보람과 이유를 선명하게 느낀 동시에, 책이 실제로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한 시간이었다.
지난달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의 사례는 책의 활용법이 더욱 창의적으로 발현된 케이스다. 임직원 독서 캠페인에서 내 책을 선정하고 CS 워크숍을 하는 장면을, 저자인 나조차 우연히 인스타로 발견한 것이다. 이들은 책에 실린 대만의 한 호텔을 참고하여 손그림 지도를 직접 만들고 있었다. 또한 책의 목차를 모티브로 '나는 OO호텔을 여행한다'에 자사 호텔을 대입한 발표자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책의 1장은 '고요한 휴식이 필요할 때', 2장은 '여행 준비를 하나도 못했을 때'인데, 우리 호텔이 여행자의 서로 다른 니즈에 어떻게 부합할지 고민해본 것이다. 즉 호텔리어가 여행자 입장에서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 본 셈이다.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간 책이, 내가 없는 곳에서도 이렇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더 재미있는 건 교재나 전문서가 아닌, 오히려 에세이에 가까운 내 책이 이렇게 큰 호텔들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텔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직업의 특성상, 이 책을 낸 이후로도 전 세계 수십 곳의 호텔을 더 다녀왔다. 불과 1년 사이에 책에 못 담은 호텔 이야기가 잔뜩 쌓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2탄>이라는 안전한 길 대신, 여행업 전체를 다루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로 했다. 지난 3년간 세계 각국의 여행업계 컨퍼런스와 인플루언서 트립에서 수집한 값진 정보를, 여행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콘텐츠로 완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적 경험을 가볍게 담은 책이 아닌 여행업의 안과 밖, 현재와 미래를 두루 관찰한 비즈니스 도서를 목표로 대략적인 기획서를 써두었다. 물론 기획서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의 좋은 결과와 이곳 브런치 연재 덕분에, 나의 기획과 정확히 같은 내용(!)을 제안해준 출판사를 생각보다 빨리 만나 계약할 수 있었다. 책 한 권의 파급력이 업계뿐 아니라 내 커리어에도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그렇게 올봄부터 집필을 시작한 책이 이제 막 탈고를 마치고, 다음 달이면 세상에 나온다. 나만 가진 특별한 경험과 어떤 산업분야의 needs가 마주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책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저자를 인도한다. 특히나 지난 두 권의 저서와는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다른 이번 책이, 이번에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자못 기대 중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책은 천리, 아니 천리보다 훨씬 멀리갈 수도 있다. 여전히 책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책'을 쓸 지만 좀더 깊게 고민하면 된다.
관련하여 이전에 썼던 글은 아래 링크. :)
"이런 책을 내고 나면, 일반적인 출간 이후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구체적인' 기회가 찾아온다" (커리어를 변화시키는 책쓰기란 본문 중)
"일단 책이 시장에 나오면,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담을 수가 없다. 책도 한 권 두 권 쌓여서 그 사람을 설명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 (출간 후 4개월, 그리고 달라진 것들 본문 중)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여행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한 여행기술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여행 인플루언서.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전 세계 여행산업 행사를 취재합니다.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