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사라진 시대, 앞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
코로나 이후의 미래가 궁금하지만, 그중에서도
여행 금지 상태에 놓인 지 고작 6개월이 흘렀을 뿐이지만, '내가 언제 해외여행을 했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자유롭던 시절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되던 4월, 책 <여행의 미래>가 두 달 가까운 시기 조율을 거쳐 어렵게 출간되었다. 갑자기 여행 소비가 억제된 사회에서 여행산업의 변화를 짚은 책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책은 '코로나 이후의 미래가 궁금하지만, 그중에서도 여행의 미래가 제일 궁금하다'는 기대평과 함께 예상 밖의 순항을 이어갔다. 국내 주요 매체에서의 인용은 물론이고 일반 독자들이 SNS에 올리는 서평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출간하고 한 3주가 지날 즈음, 2쇄를 찍는다는 소식을 받았다. 전작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가 2쇄에 두 달 정도 걸렸으니, 이번에는 한 달 이상이 단축된 셈이다.
그제야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책을 낸다는 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출판 비즈니스 생태계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모험을 안고 책을 내주고, 확신을 가지고 마케팅하는 출판사와 운 좋게 만났다면 저자로서도 마케팅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책이 잘 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이 점점 더 넓어진다.
-> 퍼블리 회원에게 리포트 형태로 제공되는 '여행의 미래'. 퍼블리 에디터의 큐레이션을 거친다.
--> 밀리의 서재에 선보인 '저자가 읽어주는 오디오북'. 책에는 실려있지 않은 이야기를 추가로 실었다.
한 권의 책이 가진 파급력과 가능성
이번 책을 출간하면서 확실하게 배운 것은, 정보가 아닌 '메시지'를 담은 책만이 큰 확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취재 기자 특유의, 팩트를 건조하게 가공해서 전달하는 기사로 글쓰기를 배운 나는 그 습관을 버리기 위해 늘 의식적으로 애썼다. 글의 주어를 '아무나'에서 '나'로 바꾸기까지, 남이 할 수 없는 경험을 치열하게 모으기까지, 이를 '팔리는 글'(이게 제일 어려움)로 생산하는 프로세스를 익히기까지 첫 책을 시작으로 7년이 걸렸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강의)을 하기 위해서는, 이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차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에서는 과거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앎을 구축해야만, 세상에 던질 독자적인 메시지를 개발할 수 있다. 알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정하고, 경험을 선별하고, 그로 얻은 인사이트를 널리 읽힐 수 있는 콘텐츠로 쌓아둔 덕분에 세상에 없는 책을 쓸 수 있었다. 그 책이 시장에서 반응을 얻게 되면 혼자만의 힘으로는 협업 기회를 갖기 어려웠던 많은 서비스와 접점이 만들어진다. 위에 소개한 퍼블리나 밀리의 서재 외에도 많은 서비스에서 다양한 제안을 받았고, 몇 가지는 진행 중이다.
오로지 책 때문만은 아니긴 하지만, 산업 바깥에서 내 역할을 만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산업 종사자를 재교육하는 업무(공공 컨설팅, 협회 교육 등)를 더 많이 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교수나 박사 같은 연구직이나 시니어 종사자가 수행하던 일이다. 마치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와의 관계처럼, 기성의 제도와 시스템은 이제 새로운 영향력을 '인증'해 주는 역할로써 기득권을 유지한다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배운 사람의 시대가 가고 배우는 사람의 시대, 자기 주도적인 지식의 시대가 왔음을 실감한다.
여행이 사라진 시대, 그다음은?
이제부터 다루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는, 직업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법이다. 나 역시 겪었던 '졸업 후 직장인 증후군'을 극복하고 업을 만들 근력을 기르는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 채 경쟁만 하다가, 그대로 사회에 방출되는 시스템이다.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다가 번아웃으로 이른 나이에 퇴사를 하면, 처음에는 해방감을 주지만 곧이어 심적 부담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퇴사를 다룬 MZ 세대의 에세이에는 죄책감이 기본 정서로 깔려 있다. 반드시 책 제목에 '괜찮아', '나답게' 류의 뉘앙스가 들어가야 팔린다. 여행산업은 이러한 심리를 면밀히 반영한 욜로 열풍에 기대어 큰돈을 벌어 왔다. 그 호황 덕분에 누구도 여행 소비를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체질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책 <여행의 미래>는 바로 그 틈새를 관찰한 끝에 탄생한 것이다. 코로나 이후를 책에 반영하지 않은 이유도, 기존 산업이 붕괴하고 있다는 모든 징후가 이미 코로나 이전에 선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15년 전 블로그의 주제를 여행으로 정했던 이유는, 내가 여행을 그저 '좋아해서가' 아니라 첫 직장이 여행과 관련이 있었기에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소재여서다. 20대였던 당시 창업과 퇴사를 거치며 늘 불안했던 나는, 콘텐츠를 통해 스스로 역할을 부여하고 보상을 얻는 실험을 반복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때 얻은 교훈이 있다면, 콘텐츠의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영향력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적은 자원(짧은 커리어와 경험)만 있더라도, 반드시 원래 가진 상대적 강점과 만나야만 작은 보상이라도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나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지름길은 없다. 이 과정은 계속 잘 정리해서 책과 교육 등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두 번째는 출간 후 업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발견한 지점이다. 지금 주변에는 여행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독자적인 콘텐츠를 가진, 그럼에도 산업의 붕괴로 역할을 잃은 이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다른 한쪽에는 여행의 자유를 잃고 경험을 찾아 방황하는 소비자가 있다. 이 양쪽을 잇는, 기존에 없던 경험 콘텐츠 기획을 해보고 싶다. 물론 프립이나 남의집 등 다양한 플랫폼이 있지만, 각 플랫폼의 핏에 맞는 생산자는 따로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외여행 콘텐츠 만들던 이들이 작디작은 국내여행 시장으로 몰려가는 상황 또한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두가 해외여행 대체재로 국내여행을 채워 넣지는 않는다. 여행을 휴양으로 소비하지 않는 나 역시 그중 하나다. 바로 그 지점 어딘가에 가능성이 보인다. 많은 분들과 만나면서 찬찬히 작고 재미난 일들을 벌여볼 참이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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