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울컥함, 그 사이
'홍콩 원정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이 비행기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11월 14일, 홍콩으로 '미리' 향하는 비행기 위에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클룩과 진에어가 함께 만든 홍콩 관광비행은 기존의 관광 비행 상품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당장 홍콩에 갈 수는 없기에, 우리나라 상공을 돌다가 내려온다. 하지만 2022년까지 유효한 홍콩 항공권도 함께 주는 상품이니, 앞으로의 여행도 미리 예약된 셈이다. 홍콩 왕복항공권을 포함해도 30만 원이 넘지 않는 매력적인 가격, 트래블 버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곳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일까. 인천공항의 국내선 수속 카운터에는 오랜만에 100여 명의 승객이 모여들며 모처럼 활기가 돈다.
Check-in. 잊고 있던 여행의 설렘
1월 초 해외 출장 이후 무려 10개월 만에 찾은 인천공항이다. 텅 빈 공항철도를 타고 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상하게도, 설렜다. 물론 지금이 비행기마저 탈 수 없는 시절은 아니다. 김포에서 국내선은 얼마든지 탈 수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올해 내내 '금기' 장소였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이 천천히 시작되는 순간일까 싶은 설렘과, 동시에 아직은 마음껏 떠날 수 없다는 어두운 마음이 공존한다. 어쨌든 이 여행은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여행임은 분명하다. 새로운 여행의 시작에 한걸음 다가가는 순간에 함께 탑승해서, 앞으로의 여행도 조금씩 구상해볼 수 있는 간만의 하늘 위 휴식이다.
일회성 여행이었고 안전 상의 문제로 전체 좌석의 약 70%밖에 채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총 106명의 승객이 탑승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6세 아이부터 50~60대 중장년층, 80대 어르신 부부까지 연령대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온라인 플랫폼인 클룩에서 단독 판매하는 상품이지만, 이제 여행상품의 플랫폼 판매가 어느 정도 세대 구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명확해 보였다. (물론 80대 어르신들은 자녀가 대신 예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 비행을 앞두고 탑승구 앞에 앉은 승객들의 입에서는, 여행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예전 해외여행 이야기, 앞으로 떠날 여행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이때, 공항공사에서 준비한 관현악 공연이 시작됐다. 탑승구 앞에서 클래식 라이브 공연이라니,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이색적인 풍경이다. 코로나로 한없이 무거워진 사람들의 마음을, 관광 비행은 얼마나 치유해 줄 수 있을까?
On Board. 알 수 없는 울컥함
예전에는 한참을 기다렸던 활주로가 텅 비어 있다. 거침없이 이륙을 향해 나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금까지 여행을 업으로 삼아온 나에게 '비행'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본다. 여행이라는 전체 여정에서도 비행시간은 특별하다.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열몇 시간을 하늘에서 디지털 고립 상태로 보낸다. 또한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과도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오로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관광 비행은 참여하는 이들의 목적이 저마다 다를지언정, 놓여있는 상황은 본질적으로 같다. 집단적인 정서를 교류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이기보다는 암묵적인 교감의 상태에 놓이는 매우 특별한 비행 경험이다. 얼마 전 열린 스키프트 디자인 더 퓨처 컨퍼런스(Skift design the future 2020)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웰빙 산업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집단 정서적 차원으로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을 보며, 나는 오히려 관광 비행을 떠올렸다.
이윽고, 승무원들이 준비한 퀴즈 이벤트가 시작됐다. 미리 떠나는 홍콩 여행의 취지에 맞게 홍콩에 대한 OX퀴즈를 통해 부산행 항공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다. 퀴즈의 민족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ㅎㅎ역시나 모든 승객들이 적극 참여하며, 다소 차분했던 분위기가 빠르게 활기를 띤다. 여기에 남녀 승무원들이 마이크를 들고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부르며 분위기를 이어간다. 물론 등려군은 홍콩이 아닌 대만 사람이지만 같은 중화권이니 대충 넘어가기로 하자. 기내식 역시 중식을 가미해 홍콩에 가는 기분을 낼 수 있게끔 구성했다.
흘러나오는 중국어 노래를 들으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장관을 바라볼 때는, 마치 나조차 효도 관광을 온 듯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라산 바로 위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엄청난 장관은 일반적인 국내선 탑승으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비행으로, 제주 공항 측의 협조로 이루어지는 저상 비행이다. 이런 점은 항공 마니아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듯했다.
그럼에도 왁자지껄한 이벤트가 끝날 무렵 한려수도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을 마주하며 마음 한 구석에 밀려오는 것은, 알 수 없는 울컥함이었다. 이 비행기는 얼마나 오랜만에 하늘을 날았을까? 항공산업에 자신의 일과 삶이 걸려 있는 수많은 인력들이 고통받은 지난 1년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날지 않으면 죽느냐 사느냐인 항공사의 관광 비행은, '무의미한 탄소 배출'이라는 오명과 비판만으로는 함부로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산업 전체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착륙 전 기장의 마지막 안내가 흘러나온다. '저희 임직원 여러분은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이 비행기로 여러분과 홍콩 여행을 다시 하는 날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희 진에어를 잊지 말고 다시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Review. 개선점
1. 기내식이 있다고 해서 점심도 거르고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오후 3시 비행기인 데다가 비행시간이 짧아서인지(2시간) 평소 기내식을 반도 안 먹는 내게도 살짝 양이 부족했다. 현재 인천공항 라운지 이용을 못하는 상황인 만큼, 점심 기내식은 한 끼에 충분한 양을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
2. 탄소배출이라는 환경 이슈 때문에 의도적으로 관광 비행을 외면하는 MZ 세대 여행자가 의외로 많다. SNS 모니터링해보면 비판글도 상당수 올라온다. 항공사나 판매 플랫폼 측에서 상품 기획 시에 환경에 기여하는 아이템이나 메시지를 함께 구성하면 더 좋을 것 같다.
3. 코로나 시국의 여행이다 보니 마스크도 써야 하고 옆사람과도 말을 할 수 없다. 기내가 매우 조용하다 보니 이벤트 전후로는 약간 침울한 분위기가 있다. 관광 비행 시에는 약한 볼륨의 BGM을 깔거나 혹은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이용하게 해 주어도 좋을 것 같다.
관광비행, 직접 타보니? 클룩 홍콩원정대 후기 (영상)
Sponsored. 본 취재는 '클룩(Klook)'의 미디어 취재 협조를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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