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의 상품화가 어려운 이유
지난주부터 유튜브에서 책 <여행의 미래>를 저자와 매주 한 파트씩 읽고 생각해 보는 랜선북클럽을 하고 있다. 책 1장 타이틀은 '패키지여행의 종말, 여행자는 어디에 돈을 쓸까?'다. 구경해 보기
사실 이 얘기는 더 이상 급진적인 주장이 아닌, 이미 뻔하게 드러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패키지여행 사라지고 개인별 관심사 위주의 여행으로 대체된다는 주장은) 조금 먼 미래에, 젊은 세대만을 위한 얘기인 거 같네요. 연세 드신 분들에 적용하기는 힘든 경우 같고요. 여행 후진국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간 해외여행에서, 유명 관광지보다 자기가 관심 있는 테마만 보고 오고자 하는 여행객이 얼마나 될 거라 생각하시는지? - 유튜브 댓글
조금 먼 '과거'에서 온 내용 같지 않은가?ㅎㅎ 일단, 그런 여행객이 얼마나 되냐고?
뇌피셜 말고, 팩트만 보자. 무려 2015년 시점에, 온라인 여행 예약의 70%가 여행사를 외면하고 개별 예약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기사) 게다가 난데없는 '한국은 여행 후진국'(...)이라니. 이쪽 바닥을 아예 몰라도 쉽게 할 수 없는 발상이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이 진출을 유독 어려워하는, 가장 까다로운 아시아 시장이 한국이라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여행 소비 액수가 세계 10위 권인 한국이 후진국이면, 선진국은 어딜까.
이런 마구잡이식 댓글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관광 분야의 일을 많이 맡으면서 좋든 싫든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저기서 벗어나지 않는 인식을 가진 관광업계 종사자가 실제로 적지는 않다는 것이다. 명소 위주 여행상품이 변함없이 업계에서 한 자리를 지킬 거라는 보수적인 입장은, 국내여행이 좀처럼 상품화되지 못하는 이유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명소 관광이 여행 상품의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의 관광산업이 형성된 근간은 해외여행이다. 이 시장은 철저하게 장소와 장소를 점과 선으로 잇는 명소 이동 위주의 관광상품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물론 이러한 장소 위주 관광이 여전히 필요한 소비자층이 있다. B2B 비즈니스 일정, 특수 지역 여행, 단체 여행, 노년층,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처럼 이동의 효율과 편의성이 필요한 소비자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현재 여행에 돈을 쓰는 메인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쓰는 2040 여행자다. 클릭 한 번으로 눈앞에 택시를 부를 수 있고, 원격으로 숙소와 투어를 예약하는 이들 말이다. 기술 환경을 기반으로 여행산업이 팽창하는 동안, 여행 상품은 이 '명소 관광'만 내세우다가 외면당했다는 게 핵심이다. 무려 2016년에 보도된 여행 서비스 국내 점유율의 70%가 해외 온라인 여행사(호텔 예약 등)에 몰려있다는 것은, 이미 명소 위주로 이동하는 여행 상품은 5년 전부터 '안 사요' 모드였다는 거다.
더구나, 현재의 중장년 세대는 현재 '연세 드신 분들'과 다르다. 4050은 여행 대중화 시대에 청장년 시절을 보냈다. 이들이 단지 충분히 늙지 않아서 패키지를 안 사는 게 아니라, 패키지가 주는 '명소 관광'의 효용 가치가 낮아서 안 사는 것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연세 드신 분'이 되면? 자신의 취향에 밀착된 여행을 하게 될 확률이 지금의 노년층보다 훨씬 높아질 것을 업계는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님의 글에서도, 지금의 50대가 앞으로 어떤 여행을 지향할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인트라바운드(내국인의 국내여행)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하나의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여행을 전혀 하지 않고 있나? 현재 전 세계 인류가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 내에서 여행을 하고 있으며,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여행을 하기는 하는데, 여행 상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상황 인식이다.
여행상품의 새로운 역할, 네트워크와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호텔업을 추월한 이유를 돌이켜 보면, 관광 명소가 중심인 과거의 여행에서는 호텔이 입지 조건 상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도 다수의 여행자는 커뮤니케이션과 지역 문화 체험으로 여행의 목적성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를 선택했고, 결국 숙박 예약 시장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두 달 전에 프립에서 호스팅했던 여행 관련 독서모임의 사례를 보자. 독서모임은 특정한 주제를 따라 좁은 목적을 추구하는, 비슷한 눈높이의 참여자들이 모여 지적 교류를 한다. 2시간짜리 독서모임 4번을 참여하기 위해 1인당 15만 원을 내야 한다. 지불 의사는 어느 지점에서 생길까? 호스트 및 참여자를 포함한 양질의 네트워크와 교류할 거라는 '높은 확률과 기대'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여행을 얘기하는 모임은 팔리는데 여행 상품은 안 팔린다면, 여가 시간의 경쟁력에서 어떤 상품이 우위이고 왜 그런지 생각해 봐야 한다.
-> 최근 늘어나는 비치 코밍(해변의 쓰레기를 줍고 업사이클링까지 하는 환경 여행 프로그램). 누가 왜 이런 여행에 참여하는지, 그 동기의 이면을 잘 살펴봐야 한다.
지금의 여행자는 명소 관광을 여행의 전체가 아닌 부분적 가치로 인식한다. 해당 장소에서 어떤 시간을 만들어 줄 건지, 누구를 만나게 해 주고 어떤 교류의 장을 만들어 줄 건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현재의 여행업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업계가 함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환기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책 <여행의 미래>를 썼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여행 상품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최소한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여행자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장소와 코스가 짜여 있다 해도, 단순 관광이 아니라 현지 문화나 사람, 전문가와 교류할 수 있는 거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개인이 해결하기에 매우 어렵기 때문에 여행 상품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인트라바운드 활성화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내친 김에 우리보다 훨씬 인트라바운드가 발달한 대만과 일본의 최신 사례 분석도 틈틈이 해볼 예정.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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