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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Dec 17. 2020

가치관 기반의 소비자가 바꾸는, 2021년의 여행

feat. 넷플릭스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

지난 10월 엠넷에서 중계한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보다가, 올해 첫 제정된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 상을 킬러 마이크라는 힙합 뮤지션이 수상한 장면을 보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뮤지션에게 주는 상이라는데, 그가 어떻게 '체인지 메이커'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유튜브에 그를 검색하면 다양한 인터뷰와 음악적 자취를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와 생각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발견했으니, 넷플릭스 시리즈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이다. 그런데 첫 에피소드를 보던 중, 의외의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넷플릭스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에서 발견한, 가치관 기반의 소비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 1화에서는 그가 꾸준히 주장해 온 Buy Black Movement, '흑인 경제 내에서만 소비하기 운동'을 스스로 3일간 실천해보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나 이 미션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냉장고만 열어도 백인 회사에서 만든 음식과 음료밖에 없어서, 그는 곧 쫄쫄 굶게 된다. 도저히 안 되겠던 그는 흑인 소유(black-owned) 회사 제품만 파는 온라인 쇼핑몰의 창립자, 샤리프 압둘 말릭을 찾아간다. 그의 도움으로, 킬러 마이크는 'Living Black'의 임무를 간신히 완수할 수 있었다. 이 온라인 쇼핑몰, 위 바이 블랙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치적인 목표 혹은 공동의 가치관이 실제 소비 이어지는 현상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webuyblack.com.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 1화에서 이 회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다큐를 보면서 잠깐 검색을 해보니, 이와 비슷한 서비스가 여럿 있다. 특히 흑인 회사 제품을 정기구독할 수 있는 더 워크 박스 홈페이지에는, 킬러 마이크의 정조준 1화에 등장하는 문제의식이 직접적인 창업 동기로 등장한다. "미국에서 1달러가 유통되는 시간은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는 최대 28일이지만, 흑인 사회에서는 고작 6시간 만에 빠져나간다"는 경제 공동체로서의 취약성이 그것이다. 특히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 이후, 현실적인 인종차별 구조의 개선은 '경제적 힘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보게 된다. 




조금 더 알아보니, 킬러 마이크가 주장해온 '흑인은 흑인이 만든 것을 소비하라'는 바이 블랙 운동은 여행업계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디지털 미디어 offcultured에서 소개한 흑인 소유의 여행회사 리스트는 가치 소비 운동이 MZ 세대를 주축으로 여러 소비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잘 보여준다. 흑인 기반 여행사는 크게 두 가지 성격을 띠는데, 하나는 자신의 인종적 뿌리를 찾는 여행(아프리칸 디아스포라), 다른 하나는 유색 인종 친화적인 여행이다. 어느 쪽이든 '메시지'가 소비를 결정하는 축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현상은 '소비로 나를 표현한다'는 뜻의 미닝 아웃(meaning out)이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노 재팬, 그리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여행

한 해동안 관광업계 종사자 대상으로 여행 트렌드를 강의하면서, '가치관 기반의 소비자가 여행업의 성격을 바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행은 쉬고 노는 행위인데, 여행에 돈을 쓸 때조차 자신이 믿는 상식이나 기준에 따라서 돈을 쓸거라고? 설마 그럴 리가 없으며, 있어도 극소수라고 생각하는 반응이 많았다.



jejuvegan.com에서 배포 중인 제주 채식 맛집 지도.


2019년, 노 재팬 운동이 여행업을 초토화할 거라고 초반부터 예측한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냄비 근성'이라는 셀프 디스를 비웃듯, 한국인은 일본으로 향하던 발길을 신속히, 꾸준하게 끊었다. 그 결과 전년 대비 일본 여행 80% 감소라는 결과를 낳았다. 소비자가 자신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 응원하는 사상이나 행동을 기준으로 의식적인 소비를 하는 미닝아웃이 여행에서도 뚜렷이 드러난 사례다. 최근 지속가능성과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여행 정보나 맛집 루트가 콘텐츠화되는 현상도 좋은 사례다.


2015년 아마데우스가 발표한 '2030년 미래 여행자 부족' 연구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여행자 유형은 여행 동기에 따라 6개의 부족으로 나뉜다. 이 중에는 여행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고려해 소비하는 윤리적 여행자(Ethical Travellers), 여행의 모든 소비 기록을 자신의 사회적 배경으로 삼는 사회적 자본 추구자(Social Capital Seekers)가 등장한다. (이 대목은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잘 나온다. 추후 분석 예정) 또한 여행자들은 하나가 아닌 여러 부족에 동시에 속할 수 있다. 


여행자의 구매 동기는 매우 세밀하게 진화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소비자의 구매 동기를 파악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비 정보를 활발히 주고받는 지금의 여행자들은, 자신이 믿는 슬로건을 테마로 한 가치관 기반의 여행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화두(지속가능성, 생존, 양극화 등)는, 내년 한 해의 여행에도 이전보다 조용하고 깊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흑인이 같은 흑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찾아 소비하는 여행, 비건 어플을 이용해 채식 장소를 탐험하는 비건 테마 여행은 MZ 세대에게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하지만 실제 업계에서 가치관 기반의 여행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 보다가 든 생각이, 결국 또 여기까지 왔다.ㅎㅎ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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