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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Mar 04. 2021

디지털 노마드의 여행 중독, 코로나 투어리즘

전시 욕망과 중독을 넘어,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해

미국은 무려 51만명 이상의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지인들의 잦은 사망 소식과 함께 사회적인 우울증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실물 경제도 악화되면서 사상 최악의 실업난이 이어지고 있죠. 그러나 보니 주변국에서 발급해주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이용해, 미국을 탈출하여 장기 체류를 하는 밀레니얼 여행자가 늘고 있습니다. 자연히 주변국의 방역을 무너뜨리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인데요. 이런 현상은 소위 코로나(바이러스) 투어리즘, 코비드 투어리즘으로 불립니다.


양극화가 낳은 '화려한 여행 생활'의 욕망, 코로나 투어리즘

이 현상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미국의 여행 블로거 노마딕맷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 덕분인데요.  (노마딕맷은 제 팟캐스트에서 코로나 초기에 '미국의 유명 블로거, 코로나 확진' 소식으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20년 12월에 '툴룸은 정말 끔찍했다'는 글을 통해, 멕시코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툴룸이 코로나를 피해 도망온 젊은 미국인으로 가득차 있는 현장을 고발합니다. 툴룸에 머무르는 미국인들은 현지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로 툴룸을 점령하다시피 하며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더 큰 이유는, 부국과 빈국의 경제적 격차를 이용한 신 식민주의가 여행산업과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는 GDP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율이 17%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라, 이런 미국인들을 이용해서라도 관광수입을 올려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나라가 멕시코뿐만은 아니겠죠? 브라질의 한 해변 관광지 또한 '코로나 확진됐던 여행자만 오세요'라는, 이해할 수 없는 관광 마케팅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관련 기사)


그러자 노마드 여행자들은 남미의 휴양지, 아시아의 발리와 푸켓 등 미국보다 거주 비용이 저렴한 여행지를 골라 다니며 장기 거주하는 일을 자랑삼아 SNS에 올리며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1월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 있죠? 미국인 여성의 '코로나 시국에 발리에 와서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 엄청난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LA에서는 1300$의 집세를 내고 코로나 이후 파산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 했지만, 발리에서는 400$짜리 트리하우스에서 삶의 질을 높였다는 내용을 게시했습니다.



발리 여행을 권장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트윗.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 여성이 코로나 시국에 이런 글을 올린 이유는, '디지털 노마드로 발리에서 살기' 전자책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본 인도네시아 인들은 코로나로 의료진이 가장 많이 사망한 국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의 참혹한 현실을 무시하고 서양 중심적인 시각으로 방역을 무너뜨리는 시도라며 분노하게 됩니다. 결국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전시하며 비난과 논쟁을 촉발한 이 여행자는, 지난 1월 부로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추방되어 발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연합뉴스 기사, 2021, 1.20)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국에서도 물가 격차를 이용해 동남아에서 저렴하게 머무는 '치앙마이 한달살기'류 여행을 반복하는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죠. 어쨌든 코로나 시국에 무절제한 여행과 이주를 이어가는 행태는, 결국 코비드 투어리즘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르포 취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무절제한 여행 중독, 코로나 투어리즘으로 이어진다

Vox.com은 코비드 투어리즘이 유행하고 있다(Coronavirus tourism is booming)라는 심층 칼럼을 통해 이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특히 제가 주의깊게 본 대목은 '왜?'에 대한 분석입니다. 왜 밀레니얼들이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발리, 태국을 다니며 위험한 여행과 파티를 지속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가 궁금했는데요.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브레인은 위험한 여행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행에 매우 노련한 사람들, 그러니까 여행 경험치가 매우 높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여행을 뗄레야 뗄 수 없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여행을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하거나 인정받는 경험을 반복해온 부류입니다. 여기에 각국의 재택근무 환경이 좋아지면서, 해외 생활에 익숙한 이들은 코로나와 같은 큰 위험을 좀더 쉽게 감수한다는 것이죠.


한국에서 제대로 된 현업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간 2~3번 이상을 여행으로만 나가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저 역시 수 년간 출장이 직업의 일부였음에도, 일 때문에 연 평균 3회 이상 출국은 무리였어요. 그런데 이쪽 일을 하다보니, 해외 방문을 절제하지 못하는 2030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어 인터뷰를 해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요. 해외로 나가야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국에서는 드러내지 못하는 자유와 용기, 과감성을 발산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동질성이 강한 집단인 한국에서 해외여행이 크게 유행했던 숨겨진 이유이기도 할텐데요. 여행에서 해방감을 넘어, 일종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여행 의존성'이 형성되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고 봅니다.


제가 블로그로 구독중인, 해외여행업을 하시던 분이 계신데요. 작년 말 그분의 블로그를 통해, 장기 체류차 외국으로 나갔다는 글을 보게 됐습니다. 꼭 지금 가야 하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위험하지만 우리보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국가에서 체류하고 계시더라고요. 코로나 이후 여행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진국으로 진입했으나 양극화가 극심해진 한국에서는 신 식민주의 구도를 이용해 개도국에서 장기 체류하는 여행이 심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누리는 저렴한 생활비(Cost of living) 어디까지나, 삶에서 지극히 한시적이라는 을 꼭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코로나 이후에 여행 의존성과 전시 욕망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내 삶의 본질적인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커리어, 즉 외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차별성과 안정적 소득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고요. 무엇보다 삶의 기준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여행자로서 남의 나라에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지켜야 할 의무를 숙지하는 것, 여행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진짜 나에게 투자할만한 경험을 신중하게 선별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우선 꼽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코로나 투어리즘을 포함한 더 많은 이야기는 '김다영의 똑똑한 여행 트렌드' 오늘자 방송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방송 1년 반만에 구독자가 6,000명이 넘었네요! ㄷㄷ 모든 청취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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