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미래 스쿨을 만들고 진행하며 느끼는 것들
1인 사업자이자 '강의'를 축으로 한 콘텐츠 비즈니스를 해온 지도 8년 차로 접어든다. 여행 분야에서 아예 없던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 왔기에, 주변에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 <여행의 미래> 북토크에서 만난 여러 20대 독자들은 '작가님같은 일 하는 게 꿈이에요'라는 말을 건네 왔다. 내가 만든 업이 누군가의 선례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 더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업을 만들게끔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도 든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여행의 미래에서 일과 여가 전반의 미래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을 만들어온 스스로의 성장 과정도 돌아보게 된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본도 인지도도 없던 시절을 지나 책 이름을 딴 교육 과정을 만드는 1인 기업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을까?
1인 콘텐츠 비즈니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8년 전 새로운 업을 만들면서 취했던 유일한 전략은, 주류가 해결할 수 없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찾는 일이었다. 모두가 단편적인 정보 검색으로 현상을 파악하는 세상에서는, 맥락을 해석하는 능력의 가치가 커지는 지점에 주목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기자 일을 했던 내겐 이런 일이 잘 맞았다. 특히나 여행업계에서는 주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역할도 요구되기 시작했다. 출간과 강의를 축으로 하는 지식 기반 비즈니스에서는, 내가 발견한 문제의 크기만큼 일의 영역과 고객사의 사이즈도 점차 커졌다.
그러나, 외부 출강(외주)으로 주된 매출을 내는 업의 구조는 코로나 19 등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지극히 취약하다. 나 역시 '일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1인 기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외주로 쌓인 좋은 경력과 레퍼런스가 '지속가능한 업'의 필수 조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외주 매출은 내 능력으로 창출한 수입이 아니라고 냉정히 생각해야만, 더 나다운 일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콘텐츠 비즈니스의 초기 진입장벽은 제로에 가깝게 낮아지고 있다. 출판, 모임, 뉴스레터 등을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검증 과정 또한 쉬워졌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곧 탄탄한 업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와도 같다. 전문가로 진입하는 방법이 오직 학문 연구였던 시절이 지난 것뿐, 오랜 경험과 노력이 축적되어야만 하는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일의 확장과 탄탄한 구조화에 큰 도움을 준건, 스스로 기획한 각종 모임과 강의, 출간에서 파생된 일이다. 작년 한 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여행업계지만, 업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덕분에 한 해를 무사히(사실 평년보다 몇 배 더 바쁘게) 넘길 수 있었다. 다각화 과정은 브런치북 '일해서 나 주는 일 합니다'에 자세히 담아 놓았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올해 시작한 첫 프로젝트가 '여행의 미래 스쿨'이다.
여행의 미래에 필요한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다
코로나 이후 새로운 '여행과 일의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행업계도 기존의 업은 대부분 사라지고, 대중예술 분야처럼 '크리에이터 생태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런 세상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춰서 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교육을, 이제 누가 할 것인가? 학계에서는 관광이 '스마트'해져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테크 과목의 도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행업에서의 기술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최근 개강한 '여행의 미래 스쿨'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기획한 단기 커리큘럼이다. 새로운 여행 생산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여행 트렌드 속에서 나만의 문제를 발견하는 역량을 길러주고, 자신만의 업(또는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인사이트와 기획력을 갖추는 것이다. 여행의 미래 스쿨이라는 플랫폼을 거쳐간 후에는 문제의식의 사이즈를 더 키우고, 느슨한 커뮤니티 속에서 교류하도록 돕는 것이 이 교육의 큰 목표였다. 판이 없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이들을 꾸준히 모이게 해주는 교육 플랫폼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현재 여행의 미래 스쿨은 총 3개 모임으로 진행되고 있다. 1기에는 틱톡에서 100만 구독자를 확보하며 한국을 알리는 에어비앤비 호스트, 국제 협력 전문가, 로컬 크리에이터 등 여행업계의 새로운 물결을 이끄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 어제 개강한 2기에는 대형 여행사의 데이터 분석가, MICE업계 종사자, 공공기관 출신 창업자 등이 합류했다. 호텔 특화 스쿨은 대기업 체인과 로컬 호텔 임직원이 반반씩 구성되어 있다. 호텔 스쿨 커리큘럼은 지난 주 한 대형 호텔의 신입사원 입문 교육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강의 후기
확실히 여행 분야에 요구되는 역량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예전에는 외국어 구사력이나 업계 경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환경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플랫폼 활용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꼭 플랫폼 기반 창업을 시도하지 않더라도 탁월한 1인 플레이어나 인플루언서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의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한 정보는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건 행동이고, 행동에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커뮤니티가 언제나 열정 가득한 행동가들로 구성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Small business, Big change를 준비하며
내가 만든 일은 고스란히 내 노하우로 남아서 다음 일을 벌이는 기반이 된다. 특히 내가 벌인 판에는 나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 즉 '커뮤니티'가 생겨난다. 이것이 외주 업무만 할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을 만들어낸다. 기업 강의를 수강했던 임직원들은 개인 채널을 찾아오거나 피드백을 주는 비율이 적다. 내 의지로 들었던 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직접 기획한 모임에 참여했던 분들은 꾸준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다음 모임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은 내가 정의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며, 플랫폼의 사전적 의미인 '중개자'의 역할을 꼭 테크 기반 비즈니스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 일례로 클럽하우스의 모더레이터는 자신이 속한 전문 분야에서 '작은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기존의 콘텐츠 생산자(블로거, 유튜버 등)는 일방적인 콘텐츠 생산에만 주력해왔고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단순 구독자나 팬덤을 넘어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려면 어떤 중개자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나에게도 올해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 생산자이자 여행 분야의 중개자 역할로서 좀더 가볍고 지속가능하게 일하기 위한 고민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다양한 플랫폼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유통하고 커뮤니티와 연결하는 실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특히 지금까지 유튜브, 팟캐스트(오디오클립), 뉴스레터의 콘텐츠가 분리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유기적으로 맞물려서 구독자에게 입체적인 정보 패키지로 배달되도록 개편하려고 한다. 일련의 새로운 시도들이 지식 기반의 비즈니스를 꿈꾸는 다음 세대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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