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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Jul 09. 2021

더 나은 여행, 지속가능한 여행을 이야기하다

인문360 '좋은 여행이란 무엇인가' 주제 발표 후기

인문360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인문학 미디어다. 매월 다른 주제의 전문가 강연을 유튜브로 볼 수 있어 가끔 즐겨본다.

마침 7월의 인간과 문화 포럼 주제가 '좋은 여행이란 무엇인가?'였고, 연사 제안을 받았다. 여행 분야의 강의를 업으로 하지만 여행을 인문학 관점으로 풀어낼 기회가 많지 않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나의 발표 주제는 '(코로나 이후) 여행의 행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다. 대한민국에서 좋은 여행이 무엇인지 발언할 수 있는 3인에 포함된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으니(정부기관 행사여서 영상 뿐 아니라 활자화되어 다양한 곳에 배포된다) 맨날 강의하는 트렌드만 다루기 보다는, 100개 넘게 쇄도했다는 사전 질문에 대해 평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특히 전하고 싶은 주제는 '지속가능한 여행'이다. 내가 바라보는 '지속가능'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친환경, 생태, 공정'보다 좀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다. 여행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계급과 과시, 빈부격차 같은 첨예한 사회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 속에서 지난 여행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많은 질문 중에서 두 개의 좋은 질문을 뽑아 보았다. 두 질문은 다른 내용처럼 보이지만, 내 관점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질문이다.


Q1. 상대적 빈곤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평등한 가치와 행복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여행은 무엇일까요?

Q2. 비행기가 탄소발생 시키니 해외여행을 자제해야 할까요? 새로운 시대의 해외여행법을 추천받고 싶습니다.


위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실제 행사에서 얘기한 내용에 좀더 보완해서 소개한다.


행사 전체 내용 다시 보기는 여기. (인문360 유튜브)



인문360 7월 포럼 '지금, 우리의 여행'


열망의 계급화, 여행 소비가 가진 한계

A. 여행이 일상처럼 흔했던 시대에는 아무도 여행의 '의미'를 묻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여행 강사로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어디가 제일 좋아요?" 였으니까요.


그런데 여행이 강제로 사라진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의미와 역할을 되묻고 있습니다.


여행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열망', 그 앞줄에는 열망을 중계하는 소셜미디어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열망은 여행산업에서 어떻게 설계되어 왔을까요?


우리가 항공에 탑승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좌석이 뭘까요?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 석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것입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퍼스트는 이코노미보다 탄소를 6배나 더 배출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여행의 탄소 배출에 대해 신경을 썼을까요? 퍼스트와 비즈니스석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났습니다. 항공사가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 대상으로 마케팅을 변경하게 된 이유입니다. 금액에 따라 세밀하게 계급화되어 있는 호텔은, 항공보다 더하죠.


선명하게 계급 경제를 반영할수록, 즉 상류 지향 소비를 부추길수록 여행산업은 더 돈을 많이 벌어 왔습니다.



이러한 계급 구조는,

계급화된 소비자를 만들어냅니다.


장면 1. 퍼스트/비즈 석, 호텔 리뷰를 다루는 한 여행 유튜버의 블로그. "이제 이코노미석 타면, 사진(영상)도 안 찍고 리뷰도 굳이 안하게 돼요."


장면 2. 네이버의 블챌(블로그 챌린지)에 참여 중인 평범한 20대 취준생 블로그. "오늘은 나가서 돈을 안 썼더니, 블로그에 쓸 얘기가 없다"


2030의 소비 목적을 살펴볼 수 있는 단편적 사례입니다. 소비 경험의 전시가 '셀프 브랜딩'이나 '취향 큐레이션'으로 기능하는 것인데요. '어디에 돈을 썼는가'를 전시하려면, 소비를 해야 합니다.(이는 기업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현상입니다) 코로나 이전, 소비의 끝판왕은 지출 단위가 가장 큰 해외여행이었죠. 그렇게 여행은 21세기의 럭셔리 명품 역할을 대체해 왔습니다.


내 여행은 물질적이고, 소비적이고,

다녀와도 딱히 바뀌거나 남는 게 없고,

여행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느껴진다면?


여행산업이 자본과 계급에 따라 설계되어 있고, 우리가 그 시스템 내에서만 여행 소비를 하도록 세팅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계급화, 과시 지향적 소비를 성찰하게 된 기회가 이제서야 주어진 셈이죠. 다행히도 코로나19 이후 여행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구조를 바꿀 수는 없을까요? 여행하는 사람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기업을 좀더 많이 알고 소비하는 것도 새로운 여행법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괴짜 항공사로 불리는 사우스웨스트는 비즈니스 석과 이코노미의 차이를 처음부터 없앴습니다. 고객을 등급화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호텔 체인 시티즌 엠 역시 스위트룸을 만들지 않습니다. 만약 이들 회사가 실패했다면 모르겠지만, 두 회사 모두 자신들의 길을 개척하며 성공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역의 소비를 교란시키거나 파괴하는 대규모 관광시설이 부도덕하다고 느껴진다면, 우리가 그런 시설을 '소비하지 않는' 것도 큰 틀에서 여행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지역 기반 소비처를 통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해가며 스스로 여행을 설계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나의 관심사와 취향, 새로운 배움에 집중하는 여행을 만들 수 있기도 합니다.


관과 기업이 주도하는 소비적인 '관광' 개념의 시야에서 벗어나, 삶의 지평과 방향성을 넓혀주는 여행의 필요성을 새롭게 조명하는 정책, 교육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것이 책 <여행의 미래>를 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여행인문학을, 문학, 심리학 박사와 저같은 경제학 전공자가 함께 논하는 이유는, 관광이라는 학문 프레임워크 만으로는 더이상 새로운 여행의 미래를 분석하기가 어렵기 때문 아닐까요? 이제 여행을 둘러싼 학문과 생각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합니다.




이상 내가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했다.


내 발언 외에, 두 작가님의 발표 내용 중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발언을 메모해 둔다.


"베를린은 인간의 '소유욕'과 맞서고 있는 도시다."

-정여울 작가님

이는 위에서 얘기했던 '열망'과도 상통하는 얘기다. 내가 베를린이나 헬싱키 같은 유럽의 대도시에서 받은 인상 또한 "소비가 자랑으로 여겨지지 않는 도시"였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성숙한 소비 방식의 정착이 필요하다. 서울도 언젠가는 우리의 행복을 해치지 않는 소비 방식과 문화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메모해둔 구절이다.


"인생샷에 담으려는 그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

여행 기록을 통해 전달하려는 신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김명철 작가님

작가님의 견해 또한, 평소 인증샷 문화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과도 동일해서 사이다같은 속시원함이 있었다. 여행자가 여행지와 어떤 정서적인 연결을 맺는가가 여행의 중요한 역할이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여행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MZ 세대의 여행 인증샷 행태는 단지 과시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여행 소비의 최종 목적이 '인증샷에 담을 만한 경험 사냥'으로 옮겨 온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금전 자산이 부족한 20대에게, 경험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이 된다. 여행은 블로그나 인스타의 피드를 채우는 "꺼리"가 되고, 타인의 반응과 조회수는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가치로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인증샷을 좇아 여행 소비를 하게 된다면 남의 욕망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나의 욕구나 내면을 돌아볼 귀중한 기회를 손쉬운 소비로 대체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증샷 여행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일어나려면, 단순 과시로 얻어지는 효용을 대체할 새로운 효용성을 좀더 선명하게 제시해야만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더 나은 여행'에 대한 담론은, 이 지점에서 출발점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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