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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Apr 26. 2021

퍼스트 클래스의 진짜 타겟은, 부자가 아니라고?

열망이 이끄는 경험 소비의 명암 1. 항공

"나도 언젠가는 돈 벌어서..."

이코노미 석 탑승 동선이 의미하는 것


잠시 우리의 항공 여행 '리즈' 시절로 돌아가보자.


번거로운 출국 절차와 면세점 수령처 순례를 익숙하게 마치고,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두 개의 통로가 보인다. 왼쪽은 퍼스트/비즈니스 석, 오른쪽은 이코노미 석.

난 다가올 운명을 알고 있다. 왼쪽 통로의 한가로운 행렬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걸 말이다.


마침내 기나긴 이코노미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탑승해 편안하게 앉아있는 비즈니스 석을 애써 '무심한 척' 지나치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내릴 때도 텅빈 비즈니스와 퍼스트 좌석을 지나며(구경하며) 내린다. 언젠가 나가는 길에 복도에 버려진 어메니티 키트를 주운 적도 있다.(...)


이쯤 되면 "나도 돈 벌어서 퍼스트 타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2015년을 기점으로 부쩍 늘어난, 퍼스트 탑승기. 주요 경험을 사진으로 꼼꼼히 기록한 리뷰가 많다.


"부자는 아니지만, 퍼스트는 타고 싶어"

진짜 타깃은 부자가 아닌 일반인


지금까지 퍼스트 클래스는 부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지배했다. 심지어 퍼스트 고객 = 당연히 부자로 상정하여 이들의 습관을 다룬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책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퍼스트 클래스는 5~6년 전부터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재테크' 대상으로 옮겨왔다.


네이버 카페 스*사의 퍼스트 클래스 탑승 후기는 2015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난다.

2012~2014년 3년치 리뷰를 합친 갯수(15개)보다 2015년 한 해 리뷰 수가 더 많다.(16개) 이 시점은 개별 예약 여행 규모는 급격히 커지고 단체 여행업은 하락하는 시기와도 묘하게 교차한다.

이들 리뷰의 공통점은 사진이 많다는 것이다. 모든 기내식과 내부 시설, 서비스를 매 순간 기록했다는 것은, 퍼스트 탑승 경험이 자신의 삶에서 매우 특별한 순간임을 시사한다.


여행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등석 경험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부자는 아니지만, 퍼스트는 타고 싶어'라는 새로운 열망이 생겨났다. 앞서 꿈을 이룬 이들의 노하우를 부지런히 좇으며, 각종 카드를 발급하고 전환할 마일을 사모으는 법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들도 덩달아 세를 불렸다. 스*사가 코로나 전까지 90만 명의 기록적인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다. 



* 심리적 회계
퍼스트 탑승의 효용을 300만원보다 더 크게 계산하는 것을 행동경제학으로 풀어보면, 같은 돈이라도 심리적으로 라벨을 붙여 다르게 취급하는 '심리적 회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미 퍼스트 탑승에 드는 300만원은 실제적 비용과는 무관하게 취급된다. 해당 경험과 이를 '자랑'하는 일련의 효용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일을 모으기 위해서 쓰는 카드 소비나 시간과 노력 등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훨씬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생일대의 경험을 위해 기꺼이 수 년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놓고도, 이를 '300만원에 득템'했다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1세대 유튜버인 케이시 네이스탯은 댓가 없이 이 영상을 만들었고, 이후 여러 항공사의 일등석 홍보 영상을 맡게 된다.


퍼스트 클래스를 열망하는 새로운 계층을 (우연히) 포착한 항공사 중 하나는, 에미레이트다.


2016년, 에미레이트는 일등석의 열망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제니퍼 애니스톤이 출연해 '하늘 위의 특급 호텔'을 과시한 광고는, 57억원의 막대한 출연료에 비해 600만 뷰라는 신통찮은 성적을 냈다.

반면 같은 해에 유튜버 '케이시 네이스탯'이 만든 영상은 별도의 출연료도 없이, 좌석 협찬만으로 광고의 10배인 6,000만 뷰의 노출을 끌어냈다. 시청자들은 유명 배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영상에, 자기 자신을 투사한 것이다.


항공사들은 퍼스트 클래스를 누구에게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퍼스트 클래스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일생일대의 호사라고 느끼며 1분 1초를 사진찍고 SNS에 공유하는, 일반 고객에 대한 마케팅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우리가 퍼스트를 '관람'하게끔 설계된 탑승 동선은 우연이 아니라 오히려 설계된 것에 가깝다.

뉴욕 타임즈의 저널리스트 넬슨 슈워츠는 취재를 통해 항공사가 노리는 퍼스트 클래스의 은밀한 타깃이 부자가 아닌 '보통 사람'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평범한 고객이 마일리지로 플렉스를 하든 부자가 현금으로 사든, 항공사는 이러한 계급 경제를 활용해 돈을 벌고 있다.



계급 욕망을 투영하는 여행 소비,

기후 위기로 연결된다고?


퍼스트 클래스의 열망을 셀링하는 항공사의 사례는 사회적, 경제적 격차를 이용한 플렉스 이코노미를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부자'와의 경제적 격차를 늘 인식하는 양극화 사회에서는, 나보다 위에 있는 계급을 열망하며 소비하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만들어진다. 양극화를 명품 시장만큼이나 잘 반영한 산업이 여행이다. 여행은 일종의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로, 간절히 '열망해서' 구매하는 상품에 속한다.


암울한 사실은 클래스의 세분화가 계급을 '학습'하는 역할을 돕는다는 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2016년 '비행 중 분노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물리적 불평등과 분노 감정 사이에는 강력한 연관성이 있음이 드러났다. 이코노미 승객이 비즈니스 석을 지나칠 경우, 승무원 상대 폭력이나 기내 난동 확률은 두 배로 늘어났다. 게다가 퍼스트 승객이 이코노미 승객을 목격한 경우, 이들이 무질서할 행동을  확률은 12배나 늘어난다. 소위 '갑질'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계급을 학습하는 구조는 퍼스트와 이코노미 승객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쌓인 계급 격차에 대한 학습 경험은 일등석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다. 현실에서는 재벌 3세가 될 수 없어도, 그들이 타는 퍼스트 클래스는 무리하면 얼마든지 탈 수 있다는 암묵적인 유혹이 마일리지 제도 곳곳에 숨어있다. 그러나 항공사는 일등석의 탄소 발자국이 이코노미의 무려 6배에 달한다 어두운 면은 절대로 고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일등석은 하늘 위에서  많은 공간, 평균적으로  많은 수하물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치다.


퍼스트 클래스, 희소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에 의해 어떤 호구 소비자로 분류되고 있는지, 나의 '열망' 외부(특히 양극화 사회)로부터 왜곡되고 투사된 감정은 아니었는지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경험의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고, 나아가 지구에 덜 해로운 여행 경험의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망의 기준을 바꾸면, 여행 서비스의 기준도 자연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남들처럼 소비하기, 플렉스, 부자 체험과 같은 열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좋은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항공사의 사례도 곧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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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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