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여행, 환경 메시지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친환경, 그리고 소비 심리의 괴리
3월의 어느 주말, 성수동에서 열린 아이오닉 5 팝업 행사에 다녀왔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친환경 브랜딩 일환으로 진행한 행사였다. 한달간 이어진 에코 프로그램 중, 평소 해보고 싶었던 '샴푸바 만들기' 선착순 신청에 간신히 들 수 있었다.
이 체험은 유명한 제로 웨이스트 리필 숍 '알맹상점'의 두 공동 대표가 진행했다. 얼마 전 망원동의 매장에도 이미 다녀온 적이 있다. 상점이 문을 열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입구에서 기다리는 걸 보면서, MZ세대의 일상 소비가 코로나 이전과 사뭇 달라진 걸 실감했더랬다.
샴푸바 만들기에 앞서, '플라스틱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 강의를 들었다. 이미 수 백회를 진행했다는 강의답게, 플라스틱 쓰레기의 폐해를 담은 강의는 물흘러가듯 이어졌다. ESG가 대세가 되면서 친환경이 가장 큰 화두로 자리 잡고 있어, 시의성을 잘 잡은 사업이자 교육 테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강연자가 '1주일에 배달음식 얼마나 시키세요?'라며 청중의 직접적인 답변을 요구하자, 짧은 순간이지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개인적으로는 배달어플도 쓰지 않지만, 나야 희귀한 케이스고..;) 앉아있는 모두가 뜨끔해서였을 것이다. 청중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격적인 화법은 교육자보다 활동가의 언어에 가깝다. 이 강의뿐 아니라 최근 쏟아지는 환경 책들은 '나도 자제하니 너도 자제해' 식의 계몽적인 실천법이 주를 이룬다.
8년 차 기업 강사로 일하는 입장에서, '아세요? 모르세요?' 같은 확인성 질문이나 죄책감을 들게 하는 질문은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청중은 이미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행동을 마음 속에서 돌아보고 있다. 동참이나 행동의 촉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포나 죄책감 보다는 얻을 수 있는 효용감을 제안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행을 비롯한 사치 소비 분야에서는, 계몽 위주의 친환경 운동은 폭넓게 받아 들여지기가 더욱 어렵다.
죄책감 유도보다, 소비 욕망 분석이 먼저인 이유
해외에서는 지속가능한 여행(sustainable travel) 분야 도서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곧 번역으로 나오는 책도 있다. 이들은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현지 소비하기', '항공 여행 줄이기' 등 실천적 튜토리얼이나 에코 관광의 접근법을 취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는 MZ세대의 여행 소비 욕구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다고 본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기후 위기니까 여행 자제하라는 메시지는 세대를 불문하고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항공 여행이 세계 탄소 배출의 8%를 차지한다는 경고가 연일 나와도, 툰베리가 '항공 여행은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질타해도 항공 소비는 코로나 전까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 단적인 예다.(이 현상은 저서 <여행의 미래>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내 주변엔 저가 항공 프로모션으로 '매달' 해외여행을 하던 친구도 있다.
내가 하는 여행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걸, 코로나 이전에는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알아도 '내 즐거움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라고 합리화하는 소비가 여행이다. 남들 다 가는 여행인데 환경 같은 거대 담론 때문에 나만 억울하게 희생해야 할 동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툰베리를 배출한 스웨덴에서도, 많은 응답자가 "단지 싸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항공 여행을 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코로나 이후, 일상 속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 이 유행에는 텀블러 사용과 같은 추가적 실천이 새로운 효용감(+)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탄소 배출 때문에 항공 여행 줄여라(-), 제주도도 덜 가라, 하던 걸 하지 말라는 마이너스 메시지는 설득력을 가질까?
대한항공의 CO2 배출양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의 제로 웨이스트 '유럽 여행' 이력을 늘어놓은 '난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 류의 환경 칼럼을 볼 때마다, 이런 내로남불식 계몽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이탈리아 한번 다녀오면 나무를 60그루나 심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여행을 '자제'시킬 수 있을까?
최근 주류 여행사는 단체 해외여행 판매를 슬며시 재개하면서도 '탄소 중립'은 개의치 않는다. 여행 자체가 기후위기에 해로운데, 그걸 왜 애써 들춰내겠는가? 백신 맞고 먼저 여행 갈거야! 류의 '과시 소비'로서의 여행을 다시 꿈꾸게 만드는 게 다수의 욕망을 훨씬 크게 움직인다. "많은 해외여행 경험 = 사회적 성취나 행복"의 잣대가 되는 한, 여행을 향한 욕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환경세 등 해외여행 비용까지 상승하면, 이는 여행의 양극화로 직결된다.
여행 소비의 체질을 건강하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행 소비 결정 단계에서 촘촘히 숨은 욕망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부터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여행법을 환경 관점으로만 풀기보다는, 부의 양극화가 촉진해온 경험 소비의 문제를 살펴보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을 선별하는 새로운 관점을 연재하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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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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