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달릴 것이다
울면서 달리기. 언니네 이발관 3집 <꿈의 팝송>의 타이틀 곡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울면 울고 달리면 달리지 왜 울면서 달리기를 해? 울면서 달리면 죽는 거 아니야? 울면서 달리기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여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눈물을 예쁘게 흩날리며 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죽을 것 같이 울면서 죽을 것 같이 달려가겠지. 목적지가 있는 내달림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정처 없이 울면서 달린다면 얼마나 슬플까? 적어도 이 곡의 화자는 그렇게 죽을 듯이 울면서 달리기를 했을 것이고 한 곡의 음악이 되어 어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깊숙이 뿌리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태양이 어스름을 거두어가지 않은 토요일 새벽에 한강변을 내달려봤다. 울면서 달리기, 나도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마침 비도 부슬부슬 오겠다 울면서 달리는 청승을 떨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가슴속 코르크가 되어 물길을 콱 막고 있는 것인지 눈물은커녕 올라가는 심박수에 혈액이 활발히 돌아 정신만 또렷해져 갔다. 시끄러운 속을 눈물의 달리기로 시원하게 씻어버리고 싶었지만 안 하던 달리기를 하자니 알싸한 흉통에 시달릴 뿐이었다. 몸을 혹사시켜서 감정을 다스리고자 했던 계획에 처참하게 실패한 나는 흠뻑 젖은 운동화를 끌며 맥모닝 세트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 말끔한 상태로 핫케익에 버터를 발라 적당한 크기로 찢어 입 안으로 쑤셔 넣는다. 이 와중에 배는 고프고 핫케익에 얇게 발린 버터는 입 속에서 살살 녹으며 침샘을 자극하기까지 한다. 입안으로 침이 고이는 걸 느끼며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온다'며 호들갑이라도 떨어보면 댐의 수문을 열 듯 마음속 물길을 조금이나마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호들갑의 히읗도 할 줄 모르는 나는 그만 생각의 가지를 쳐내고 침대 구석으로 조용히 몸을 누인다. 몸살이라도 날 듯이 온몸이 뻐근함을 느끼며 그렇게 선잠에 든다.
아무래도 견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존버'가 일종의 덕목이 되어버린 2020년에 스스로를 버틴다는 것만으로 덕을 쌓을 수 있을까. 미래의 누군가에게 '존버'로 쌓은 덕일지라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올까?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여 집안일을 하고 집착스럽게 운동을 하고 스마트 기기 속 타인의 웃음을 빌어 소리 내 웃어본다. '내가 나를 무너뜨리네'. 좋아하는 그 가수의 미발표곡 속 덤덤한 멜로디를 떠올리며 마음의 강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2020년 9월 어느 일요일의 밤
펑펑 울고 싶은 K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