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것을 먹을 때의 죄책감
단 것을 아낌없이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덕분에 살은 제한 없이 불어났다. 부모님은 잘 먹는다며, 내가 좋아하는 단 것들을 더 채워놓으셨다. 친구들은 "나도 한 입만!"을 외치며 기쁨과 슬픔 대신 단것을 나누는 찐한 사이가 되었다. 학창 시절 단 것은 나를 살찌움과 동시에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해주었다. 공부로 힘들 때,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데 잠이 솔솔 올 때, 특별한 날을 기념할 때, 늘 단 것은 함께 했다.
매번 납작한 가나 초콜릿만 먹다가 친구가 가져온 도톰하고 유선형의 도브초콜릿을 먹었을 때는 천국을 경험했다. 초콜릿은 아작아작 깨물어 먹는 게 아니라 천천히 혀 위에서 녹여 먹는 거구나,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꾸준히 도브초콜릿을 소비했다. 새로운 단맛의 경험은 내 입맛의 품격을 높여주는 느낌이었다. 입맛뿐만 아니라, 나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의 단맛에만 빠지기엔 나는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야 먹을 수 있는 설탕 가득 묻힌 핫도그, 야간 학습 시작 전에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야만 쟁취할 수 있는 튀김 씨앗 호떡, 밥 먹고 후식으로 먹어야 더 맛있는 비스마르크 빵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궂이 학교 울타리를 넘으면서 까지 먹었을까 싶지만, 그 맛이 있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 선생님 몰래하는 짓, 심장이 쫄깃해지는 짓들이 단맛을 더 끌어올렸다. 단맛은 청소년기를 무난히 지나가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단 것을 먹기 위해 하는 행위가 일종의 반항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단 것은 나를 안팎으로 살찌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살다 보면 더 많은 단맛들을 경험하겠지, 서울엔 새로운 단맛이 가득하겠지, 단맛은 어린 나에게 삶의 희망도 안겨주었다.
내가 단 것을 끊기 시작한 것은 대학 입학 전, 다이어트를 하고부터다. 20킬로그램을 빼고 대학에 입학했고, 날씬해진 모습에 친구들이 놀라는 걸 보니 뿌듯했다. 잠시, 단 것과의 우정을 끊었다. 세상엔 그 우정보다 달콤한 것들이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단 것은 보란 듯 학교 맞은편에 다시 나타났다. 아주 화려하게! 배스킨라빈스 매장이 떡하니 생겨버린 것이다. "쳇, 나를 밀어냈다 이거지? 우리 우정이 이것밖에 안 돼? 자, 다시 봐!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고!" 아이스크림이 외치는 것 같았다. 다시 단맛과 조우했다. 힘들었던 서울살이를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매일매일 배스킨라빈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우정과 지방이 다시 쌓여갔다.
'성인'이라는 말은 참 무섭다. 성인이 되니, 단맛에 온전히 취할 수 없었다. 한동안 단맛에 취해있던 나는 몸무게를 재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5킬로그램 이상 불어나 있었다. 당장 배스킨라빈스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헬스장을 열심히 다녔다. '성인'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단맛은 어느새 죄책감이 되어버렸다.
캐러멜 향 소스가 듬뿍 들어간 캐러멜마끼아토는 얼마나 달달하고 삶의 위안을 주는가. 휘핑크림이 잔뜩 올려진 화이트 초콜릿 모카는 또 어떻고. 하지만 '성인'이잖는가. 대한민국 사회가 바라는 성인은, 적당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뚱뚱하면 달달 고소한 밥 대신 눈칫밥을 준다. '대한민국에서 바라는 적당한 체중을 갖춘 성인'으로 살기란 참 고달프다. 좋아하는 맛을 포기해야 하고, 어쩌다 황홀한 맛을 경험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며 먹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아닐까? 맛은 떨어지지만 '0칼로리'를 앞세워 대한민국 성인을 유혹하니까.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난 마셔도 0칼로리야. 맘껏 마셔. 날 맘껏 마셔도 죄책감은 1도 없다고! 푸하하하!" 책상 위 아메리카노가 크게 웃는다. 정말 그렇다. 안도감이 든다.
대한민국은 틀이 너무 많다. '성인', '여자', '엄마', '아빠', '딸' 틀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여자이고, 성인이고, 엄마이고, 딸로서 행동해야 하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 틀이 너무 좁아서 깨고 싶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틀을 깨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사고, 손가락질받게 만든다. 대한민국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틀을 깨는 행위가 뉴스거리로 다뤄질 때 특히 그렇다. 당연히 그 틀을 깬 것이 범죄여서는 안 되겠지만, 삼강오륜의 마음을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은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 살다 보니 나도 그 틀에 박힌 채 살아왔던 것 같다. 그 틀대로 사람을 평가하면서. 나를 가두면서.
요즘은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마음이 성장한 건지, 철부지로 돌아간 건지 모르겠다. 틀을 깨고 나와서 내가 살고 싶은인생, 달달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여자로서, 성인으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말고. 나로서 우뚝 서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 틀을 깨는 시작이 단것을 다시 취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죄책감을 내려놓고, 단맛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나로.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삶에서 주저 없이 카라멜마끼아또, 화이트초콜렛모카를 주문하는 나로. 매일 한 번의 죄책감 없는 단맛을 느껴보기로 했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이 정해놓은 틀을 깨는 나만의 방식이 될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