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컹한 것에 대한 찬양
단단한 가지보다는 오일이나 수분을 잔뜩 머금고 물컹해진 가지를 사랑한다. 호박도 다 익어 젓가락으로 집으면 뭉개질 정도가 딱 좋다. 갈비찜을 해도 고기보다는 물컹해진 야채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더 좋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 식성에 맞춰서 하던 요리가 요즘은 내 위주로 많이 차려진다. 가지구이, 양배추찜, 호박볶음, 두부조림 등 한 상 가득 차려놓으면 아이들은 투덜거린다. 반찬이 먹을 게 없단다. 이렇게 맛있는 거 천지인데. 애써 날 위한 요리가 아니라 아이들을 건강하게 먹이기 위함이었다고 변명한다.
"어떻게 하면 너희 맛있게 먹일까 고민해서 만든 건데! 이렇게 건강하고 맛있는 걸 왜 안 먹어?"
"다 내가 싫어하는 거야! 다 물컹거려서 싫어!"
첫째가 숟가락을 탁 놓는다. 물컹거려서 먹기 싫단다. 내 취향은 확실히 물컹한 것인가. 흐물흐물 젓가락 위에 축 늘어진 가지를 입에 넣고 생각했다.
'나는 왜 물컹한 것이 좋지?'
물컹물컹 씹히던 가지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목구멍으로 후루룩 도망가 버린다. 물컹한 것에 대한 생각은 결국 나로 이어졌다. 내가 물컹물컹한 사람이라 그런가.
그렇다. 나는 물컹물컹한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화나도 웃고, 슬퍼도 웃고, 모든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던 아이였다. 내가 웃지 않으면 엄마가 잘못 될 것만 같았다. 당시의 엄마는 부슬비 같았다. 티 안 나게 부슬부슬 내리지만, 얼마 후 다 젖어버리는.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우는 것인지, 눈은 늘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미세한 알코올 향이 났다. 엄마는 술을 한잔도 못 마시는 사람이었지만 어린 내가 느끼기엔 알코올 향 같았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억지로 미소 지었지만, 이미 엄마의 우울감은 집안 전체를 적셔버렸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어린 나는 오기를 부렸던 걸까. 억지로 더 웃었고, 오바했고, 학교에 있었던 일을 유머로 포장해 어떻게든 엄마를 웃게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웃는 모습은 어느새 내 얼굴에 딱 맞는 가면이 되어있었다.
웃는 얼굴은 점점 나를 물컹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할 말 못하고 끌려다니는 사람, 모든 일에 예스를 외치는 예스맨. 살면서 내 물컹함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 물컹함을 은근히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물컹해진 가지를 다시 단단하게 만들 수 없듯이, 내 물컹함은 어떤 노력으로도 단단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할 말을 못했을까, 내 물컹함에 대한 탓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 물컹해져 흐물거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누가 툭 치면 흐물거리다 하수구로 빨려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흐물거린 시절이다. 그때 그림책을 만났다. 어떤 그림책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읽었던 대부분의 그림책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약점을 바꾸려고 하지말라고, 물컹한 네 자신을 더 사랑하라고. 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라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물컹한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물컹함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물컹함 덕분에 얻은 이익들도 떠올랐다. 내 물컹함 덕분에 좋은 동료를 곁에 둘 수 있었던 일, 짧은 만남에도 나를 인상 깊게 기억하던 사람들. 무엇보다 사방팔방 날뛰는 두 사내아이를 품을 수 있었던 일은 내 물컹함 덕분이 아니었을까. 물컹함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거리를 두면 되는 일이고, 물컹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음식의 취향이 다르듯, 인간에 대한 취향도 다른데 나는 이제껏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다. 그 욕심이 물컹함을 넘어 흐물거리게 했었고. 욕심을 내려놓고, 내 물컹함을 유지하며 내가 품을 수 있는 것들만 품어야겠다.
물컹한 가지, 물컹한 호박, 물컹한 두부. 내가 좋아하는 물컹한 음식을 입에 넣는다. 몇 번 씹지 않았는데 부서지며 고유의 향을 낸다. "나 가지야.", "나 호박이야.", "나 두부야." 하고. 나도 물컹한 사람이지만 고유의 향이 나는 사람이겠지? 나만의 향이 있겠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 향이 좋아서 곁에 있는 거겠지?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컹한 음식을 좋아하는 내 취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위한 요리도 하되, 물컹한 요리도 꾸준히 상에 올릴 것이다. 그 한 접시가 내 물컹함을 응원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