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오징어와의 사투
오징어의 꼬릿함이 좋다. 그 꼬릿함에는 중학교, 고등학교의 추억이 묻어있다. 위생 관념도 없는지, 돈도 넣고, 거울도 넣던 교복 주머니에 꼭 오징어 다리를 넣어 다녔다. 긴 오징어 다리는 나눠 먹는 맛이 있었다. 칼 가위의 사용은 금지다. 양쪽을 손으로 잡고 반대로 비틀어 끊어먹었다. 누구는 길게, 누구는 짧게 끊어지며 나름의 재미를 선사했다. 짧은 쉬는 시간, 질긴 오징어를 다 씹기 위해선 턱이 아플 정도로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오징어나 껌을 많이 씹으면 사각턱이 된다고 했지만, 그때는 외모보다는 오징어 씹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사실 내가 오징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꼬릿함보다 쫄깃함 때문이다.
이빨이 약해졌지만 난 여전히 오징어가 좋다. 주기적으로 오징어를 구워 먹고, 볶아먹고, 튀겨먹고 다양하게 즐긴다. 어제도 갑오징어를 사서 손질 후 바로 데쳤다. 껍질은 벗기지 않는다. 더 오래 사투하고 싶어서. 사투? 나는 오징어를 씹는 것을 오징어와의 사투라고 생각한다. 오징어는 내가 얼마나 질긴지 보라며 으스대고, 나는 내 이빨이 얼마나 튼튼한지 보라며 열심히 씹어댄다. 오징어의 껍질을 벗기거나 칼집을 넣는 행위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 시시한 대결이 되니까. 아주 가끔 손님이 올 때나 멋을 위해 껍질을 벗기고 칼집을 넣을 뿐이다.
결과는 모두가 알 것이다. 100% 내가 이긴다. 오징어는 갈가리 찢어져 내 목구멍을 통과한다. 비록 오징어지만, 이겼다는 쾌감이 온몸에 찌르르 퍼진다. 마른오징어를 먹었을 때는 좀 더 힘겨워서 쾌감이 두 배, 세 배 커진다. 우리가 경기할 때 그렇지 않은가. 막상막하의 게임에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게 되고, 극한 상황에서 이겼을 때 울컥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 마른오징어를 씹는다는 건 그런 거다. 막상막하의 게임,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난 느낌.
바싹 마른오징어는 아무리 아밀라아제가 공격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오징어가 날 이겨보겠다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초콜릿 복근이 생긴 느낌이랄까. 얼마나 야무지고, 단단한지 모른다. 턱이 빠질듯이 이빨을 위아래로 부딪혀보지만, 녹지 않는 플라스틱을 물고 있는 느낌이다. 자연스레 경기 시간도, 휴식 시간도 길어진다. 자존심이 있어서 잘게 잘라 먹는 행위는 금하는 편이다. 오래 걸렸지만 역시나 결과는 나의 승리다. 턱이 얼얼하지만, 또 이겨냈다.
오징어가 술안주로 오래 사랑받은 이유가 이게 아닐까.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나와 남편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을 찾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정서적으로 힘이 들 때 특히 술에 손이 간다. 그때 오징어와 사투하며 얻는 쾌감, 작은 성취감이 우리를 쓰담쓰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징어가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며 외치는 것도 같다.
"다른 데서는 지고 좌절했지만, 봐! 나와의 대결에서는 이겼잖아!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이거 쉬운 대결 아니다? 내 식스팩 봤지? 네가 식스팩 가진 날 이긴 거라고!"
오징어의 말은 술이 적당히 들어가서 알딸딸한 상태일 때 들린다. 삶이 힘들 땐, 오징어를 씹으며 마음을 달래보자. 오징어를 씹으며 작은 성취감을 맛보자. 가급적 질긴 놈과 붙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