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철수 판단과 기획자로서의 가치에 대한 생각
2001년 웹디자이너 시절 지인으로부터 웹디자인을 요청받았습니다. (2000년 초반에는 서비스 기획자라는 포지션이 없었습니다.) 대학생 과제라고 했습니다. 메뉴작업과 콘셉트 디자인까지 한 상태에서 인터넷 방송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과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알렸고 작업한 결과물을 정리하여 모두 보내줬습니다.
급박하게 새로운 작업자를 찾을 수 없다며 계속 작업해 달라고 했으나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작업을 할 수 있던 시기까지 열심히 했고 할 수 없는 시기에 빠르게 알렸으나 작업해주지 않았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카드사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로 하고 검토했습니다. 금요일 프로젝트 인터뷰를 하고 주말에 고민한 결과 일정 내 작업이 불가능한 분량이라 판단하여 월요일 새벽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고 알렸습니다.
최대한 빨리 결정하고 알렸음에도 새로운 사람을 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불평했습니다.
2024년 대기업의 제안 프로젝트에 에이전시를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잠깐 참여했습니다. 첫날 내용을 검토해 보니 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고 이야기 들었던 영역이 아니기에 곧바로 할 수 없다고 알렸습니다. 세월이 20년 이상 흘렀어도 레퍼토리는 동일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구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보고해서 승인도 받아야 하니 계속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이탈이 아니었으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이유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인원교체의 불편함이 싫었을 것입니다.
그만두려는 이를 붙잡는 이유는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성장을 돕고자 만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가는 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반응이 다릅니다. 보상과 처우, 상황의 변경이 제시됩니다.
나가려는 이를 만류하는 이유는 사용하던 연장을 바꿔야 하는 것과 같은 중요하지 않은 불편함입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돼도 하라는 대로, 그렇게 적당히 인원수를 채우고 끝까지 가기를 바랍니다.
전문가는 상황에 대한 판단과 자신의 능력을 대입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가장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은 할 수 있다고 하는 이들이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상황의 변화는 도리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모든 작업자는 각자의 추구하는 바 대로 작업을 하고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지식노동의 경우 개인 역량의 차이가 크며 일의 효율뿐만 아니라 품질, 특히 UX와 같은 사용성 설계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K405295의 부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인가? 전문가도 아닌 외국인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쇼처럼 전문가가 아닌 소모성 기획자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프로젝트에 내가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면 몇 명 중에 한 명이 필요했을 뿐이며 이는 팀이 될 수 없습니다.
직장인은 시간을 팝니다. 작업양을 시간에 구겨 넣고 처리합니다. 더 많은 일을 빨리 해치우는 이가 선호됩니다. ‘손이 빠른 기획자’
AI시대 대체되는 이는 단순작업자입니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그림을 베끼는 이는 사진으로, 복사기로, 3D 프린터로 대체됩니다. 손이 아무리 빨라도 단순 작업은 자동화를 이길 수 없습니다.
LA FC에 공을 차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손홍민이 필요했던 것처럼 자신만의 능력을 팔아야 합니다. 시간을 채우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는 생각은 메트릭스의 세계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던 레오와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기로 하면 직장인이 됩니다. 손홍민은 축구를 하는 LA FC의 직원입니까?
회사에서 내게 원하는 기획이 그렇고 그런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일지 모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가치를 논할 수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52,495등 실력의 작업자 일지라도 내가 최고라는 마인드로 자신의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최고라는 마인드가 귀 닫고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정한 수준까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인드입니다. 실무에서, 실수에서, 구경으로, 배움으로, 대화로, 다름에서 배우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길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이 특징 없어 시키는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성실의 시간에도 보석으로 변해가야 합니다. 모자란 능력을 채우기보다 잘하는 장점을 살려야 합니다.
자신을 멋지게 표현하세요. 나는 OO 기획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