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위한 글쓰기

나를 글쓰고 말하고 이야기함의 의미

by nonoodlenolife



구원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묻어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잔여물처럼 가라앉아 있는 고통의 근원을 마주하려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


의식의 장막 속에 꽁꽁 싸여 가려진 채 우리의 내면을 끊임없이 뒤흔드는 고통의 기억은, 언어라는 분절적인 형태로 번역되어 우리의 입 밖으로 (혹은 손끝을 통해) 토해져야만 한다. 고통을 삼킨다는 구실 아래 결국 해소되지 못하고 남겨진 상처들은 우리의 의식 저편 너머로 염증처럼 파고들어 자리를 틀기 마련이다. 염증은 생물체를 위한 방어적 반응으로서 발진과 발열, 통증을 자처한다. 과거의 상처를 끌어 안고 사는 인간의 내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소되지 못한 상처를 표본 삼아 오직 고통으로서만 자기를 방어할 뿐인 것처럼. 그것은 결코 시간의 흐름 속에 희석돼 옅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차곡차곡 곪아가 도처의 세균들 앞에서 수없이 덧나고 번지기를 반복한다.


염증과도 같은 상처의 기억은 나의 글과 나의 말로써 서술되고 해명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말을 해야 산다고 하지 않던가.) 한데 엉키고 뒤섞여 부풀려진 고통의 덩어리를 잘게 파편화 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그 거대한 덩어리를 배양해내는 과거의 기억들을 추적하고 되짚어 뜯어 봐야만 한다.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그 침묵이 길러온 덩어리진 고통의 감정들을 언어라는 규칙으로 조각내자. 내 과거의 기억들은 언어의 규칙 속에서 더 이상 혼잡하게 응축된 덩어리의 형태가 아니라 질서 있게 정리된 기록의 형태로 보관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를 글쓰고 나를 말하고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은 몇 개의 단어와 마디들, 몇 줄의 문장과 절들로 나의 고통을 조각조각 쪼갠 뒤 다시 그 고통을 외부 대상물로 재조립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렇게 외부의 것으로 대상화된 나의 고통을 내려다 본다. 그렇게나 끈질기게 염증 반응을 일으키던 상처의 기억들이 더 이상 나의 본원적인 소유물로 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금은 아쉽지만 어쨌거나 후련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구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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