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다시 찾은 정신건강의학과
2020년 2월을 마지막 내원으로 단약과 함께 더 이상 찾을 일 없을 것 같았던 정신과. 딱 4년 만인 2024년 2월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현재 내 상태가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임을 깨닫고서 곧바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느끼면서도 앞으로 매주 병원에 들러 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받고 매일 복약을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진료가 가능한 가장 빠른 날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진료 예약날까지 남은 7일 동안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는지 모른다.
잠깐 시기적으로 좀 불운했던 게 아닐까. 마침 평소보다 커진 우울에 평소보다 약해진 마음이라는 최악의 조합운에 걸려버린 건 아닐까. 그러니까 당장 며칠, 몇 주만 지나면 나는 또 적당히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기복 속에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과 슬픔과 후회들을 못 본 척 무시하기도 하고, 또 운이 좋은 날에는 자잘한 즐거움들을 그러모아 공허와 무기력을 조금씩 메꿔 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무던해져 있지는 않을까. 거창한 행복과 삶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채워지진 못할지라도, 갑작스러운 감정의 요동 앞에 맥없이 휘둘리지는 않을 수 있는, 그러한 무던한 마음이 세워져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지금의 막막함을 몇 번이고 나중이라는 막연함으로 미루고 기대하면서.. 병원이 나에게 할당해준 일주일이라는 대기시간이 마치 정신과 방문을 앞둔 채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변덕들을 잘 타이르도록, 그래서 스스로와 최종적인 타협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어떤 유예기간처럼 느껴졌다.
정신과 재방문을 기다리며 보낸 한 주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다만 삶의 지속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실이 숨막힐 정도로 버거웠을 뿐.
이전에는 우울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음악을 듣는 일이 많았다. 마치 기분 조절제처럼 음악을 듣곤 한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좋아하는 곡을 들어도 아무런 마음의 감흥도 또 어떠한 기분의 조정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음악을 듣는 일이 이제는 외부의 소음과 자극들을 차단시키기 위함일 뿐이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좋은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먹었는데, 좋은 것들을 취하고 즐기는 일들 속에서 문득 나 자신만은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너무 슬펐다. 내가 나를 위한 사람으로 있어주지 못해서,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나를 채워주지 못해서 그 텅 빈 마음에 얼마나 깊고 잦은 불안이 음습해 오는지. 그 공허는 누군가와 함께 있음으로는 결코 채워지지도 해소되지도 않는 가장 근본적인 결핍이며,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 이상 그저 끝없는 외로움과 쓸쓸함만을 반복하게 할 뿐인 일종의 자기처리 오류 혹은 마음의 고장남인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고장난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내 안의 근본적인 공허와 본질적인 오류를 다시금 고통스럽게 확인하게 하는 과정에 다름없었다.
우울이 일상인 삶 속에서도 웃을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주말에는 처음으로 동생과 인형뽑기를 하러 갔는데 예상보다 적은 시도만으로 큰 인형 두 개를 뽑았다. 집게에 잡힌 인형이 아슬아슬 이동해 가면서 배출구 위에 딱 맞게 안착해 떨어지는데 그 순간 어찌나 도파민이 돌던지... 그날 정말 많이 웃었다. 그러나 어째서 순간의 즐거움이 곧 행복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걸까. 좋은 순간들이 양적으로 더 많이 쌓이게 되면 그게 곧 단단한 형태의 행복으로 드러나게 될까?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좋은 순간들이 필요한 걸까.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이 온몸으로 또 온 마음으로 스미듯 깔린다. 어떻게든 나의 하루를 좋은 순간들로 채워보겠다는 노력이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곧장 회수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 '유예기간' 동안 온갖 고민과 변덕스러움에도, 결국엔 현재 나의 상태가 어느 때보다도 정신과를 찾아야 하는 상태라는 걸 확실히 인정하기로 했다.
병원을 찾지 않았던 지난 4년을 온통 건강하게만 보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상담과 약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던 때도 있다. 그게 치료를 받았어야 할 '제때'였던 건데 그걸 무시한 대가를 이제 와서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 다시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난 4년의 시간 안에서 크고 작은 계기와 발단이 되었을 순간들을 찬찬히 떠올리며 한 번씩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게 병원에서의 치료와 동반해 내가 나를 더 잘 살피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