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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희 Sep 10. 2022

당당한 자폐 12

자폐는 병이고 자폐인은 환자일까?

자폐아를 둔 부모님이 맨 처음 진단을 

받는 곳은 미국에서는 소아과이고, 

한국에서는 보통 소아정신과이다. 


미국에서 소아과 의사가 자폐가 의심되면

부모에게 자폐 진단을 위한 검사를 

권유하는 것은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아이가 취학 전이기 때문에 

아이의 발달을 위해 권고할 다른 인력

혹은 기관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남의 아이를 두고

자폐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사실 

조심스러운 일이다 보니, 

꼭 소아과가 아니고, 주변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에서 듣고 부모의 뜻에 따라 

발달 검사를 해 보는 것이 

내가 내 아이를 키울 때의 관례였다. 


진단 이후에 "자폐"라는 단어를 바로

사용하는 것은 부모들에게 너무 큰 

충격이라 조금 더 애매모호한 

"발달장애"라는 진단명

으로 아이를 지칭하게 되고,

(발달장애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렇게만 알려주는 것도 문제는 있다.)

이 진단이 내려지면 그때부터 

부모 및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를 

"환자"로 여기게 된다.


가까운 예로 나의 동생도 내 조카들에게

나의 아이에 대해서 말할 때

"형이 아프니까, 너희들이 이해해줘"

라고 설명한다. 


조금 더 보편적인 예로는 진단 후 

자폐 아이들이 받는 교육이 모두 "치료"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부모님들은 이러한 "치료"를 통해서 

내 아이의 "증상"들이 소멸되고 치료되어

내 아이가 정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열심을 내면 

아이가 "나아서"이러한 "증상"들은 

없어지고 정상의 아이가 될 것이라는

것이 부모들의 공통된 희망이자 바람이다. 


무엇이 정상(normal)이냐는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 이야기이지만

자폐는 "병"이고 자폐인이 "환자"라는

관점이 아주 논리적이지도  않고

자폐인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은 의외로 쉽게 설명이 된다.


우리가 의학적으로 말하는 "병"은

보통 원인을 알고,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법을 알고, 이 치료법으로 

치료를 했을 때  예측 가능한 회복 

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다. 


물론 원인 모를 불치병도 있지만

이런 경우도 어떻게 병이 악화되는지에

대한 과정의 이해는 존재하는 편이다.


자폐의 경우,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고, (가끔 뉴스에 나오는

원인 규명은 가설일 뿐 확증된 것은 없다)

치료라고 하는 행동 수정 방법들도

"자폐"만을 위한 방법이 아니고

보통 이야기하는 "발달장애"전반에

걸친 반복 훈련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 훈련의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결과와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 있는 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자폐라는 장애는 

주로 심리 검사자의 대상에 대한 관찰과

양육자의 묘사를 근거로 진단이 

내려진다. 이 과정에서 자폐인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진단 자체가 제 3자의 행동에 대한 관찰

위주로 이루어 지기 때문에 

치료의 목적이나 방법은 이러한 행동들의

수정이나 소거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행동수정 치료법의 역사가

동성애자들을 이성애자들처럼 보이게

하려는 Lovass 학파의 행동수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ADHD, 다운 증후군, 강박증, 

지적장애 등등 모든 발달장애에 대한 

행동수정 치료는 모두 대동소이하며

이러한 치료의 목적이 문제 행동의 

제거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 행동의 제거는

치료 대상자를 장애가 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 또한

크게 논박할 여지가 없다.  


이를 신체 질병에 비유하자면 

가까운 예로 감기와 코로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감기와 코로나는 증세는 비슷하지만

원인이 다르고, 그 때문에 치료법도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세가 

비슷하다고 해서 치료법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감기와 증세가 비슷한

코로나가 치료법이 같았다면

우리가 3년 넘게 걸쳐 겪고 있는

이러한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유전적인 문제에 기인한

다운증후군과 아직 원인을 모르는

자폐는 분명 다른 장애이지만,

이들에게 추천되는 행동 수정 치료법

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치료의 목적 자체가 문제 행동의 

소거이며 일반인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행동 수정 (ABA)이 완전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행동수정 교육을 통해

교육 목표를 세분화하는 것을 배웠고

아이에게 어떠한 목표를 세워줘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또 이러한 훈련으로 

내 아이가 습득한 기능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질병/환자 시각이

가져올 수 있는 장기적인 부정적 결과들은

쉽게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큰 문제는 바로 "분리"이다. 

환자의 "분리"는 늘 쉽게 정당화된다. 

환자가 일반인과 섞여 있을 경우 일반인이

감염이 될 수도 있고, 환자는 또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증세가 쉽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인은 환자이기 때문에 일단 분리되고

특별한 교육법과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분리가 된다. 1:1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분리가 계속될 경우 

아이는 자연스러운 상황에 노출되어

사회적으로 다양한 행동 및 맥락을

이해할 기회는 점점 놓치게 된다. 

이는 또한 아이가 일반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많은 부분에서 희생시키기도 한다.


두 번째 문제는 끊임없이 전달되는

부정적 메시지들이다. 행동 하나하나는

고쳐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고쳐야 할 부분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하교 후에도

마치 수험생처럼, 저녁이 될 때까지

문제 행동들을 고치는 훈련을 받는다.

이러한 훈련에서 전달되는 

"너는 틀렸다, 틀렸으니 고치라"는 

메시지는 아이를 점점 자신 없고

수동적으로 만들게 된다. 


세 번째 가장 큰 문제는 완벽한 치료가

없기 때문에, 결국 양육자와 아이 모두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자폐 자녀의 양육자와

사춘기 이후 자폐인들의 우울증은 매우

흔한 것이며, 이러한 우울증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자폐인들은

자신은 사회성이 결여되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능숙하지 못하고,

문제 행동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평생 노력해왔지만

자폐가 없는 일반인처럼 되지는 못한다는

깊은 좌절감을 표현했다. 


그러면 자폐와 자폐인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생각보다 학계 내에서 학자들도

선생님들도, 치료사들도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에 답을 얻기 위해

나 자신도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였지만,

나의 최종 결론은 자폐인은

"교육을 위해 무한히 발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폐인은

환자이기 이전에, 장애인이기

이전에, 그냥 하나의 인간이다. 

문제점도 있고 가능성도 있는

인격체. 장점도 단점도 있는 

그냥 친구, 가족, 이웃, 사람.


자폐인들이 차이는 있을지언정

교육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진단과 교육이 이루어 지기를 

나는 오늘도 소망한다. 


교육은 치료와 다르다. 

마치 학교와 병원이 다른 것처럼. 

치료는 시작과 끝이 있다. 

교육은 그냥 평생 가는 것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차이를 이해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림 출처: https://www.ambitiousaboutautism.org.uk/what-we-do/connecting-young-people/youth-led-toolkits/know-your-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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