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발달 장애의 황금티켓
타 주의 시스템은 전혀 모르지만, 보통 미국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주민은 autism (자폐) golden ticket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캘리포니아 곳곳에 위치한 Regional Center와 거기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른 주에 비해 조직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Regional Center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지역 주민에게 (미국 영주권자가 아니라도 거주하기만 하면 된다) 장애 진단이 내려지면, 진단이 내려지는 시기부터 평생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학교가 만 6세에서부터 19세 정도까지를 교육한다고 하면, Regional Center는 진단 이후 평생 서비스를 책임지므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학교보다 훨씬 의존도가 높은 기관으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신체장애뿐 아니라, 다운 증후군, ADHD, 자폐, 지적 장애와 같은 발달 장애도 모두 지원해 준다. 다운 증후군처럼 생물학적 원인이 분명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진단이 명확한 장애는 출생 후부터 서비스가 시작되고, 자폐처럼 18개월에서 30개월 사이에 진단을 받는 경우, 주로 소아과 의사의 소견으로 Regional Center로 연결되고 이 기관에서 도움을 받게 된다.
나의 경우 진단을 미국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직접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미국은 소아과 의사가 먼저 진단을 내리는데, 이 진단은 주로 의료서비스를 받는 데 사용된다. 장애가 자폐 한 가지만 있는 경우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의존이 그렇게 높지 않지만, 복합 장애인 경우, 그리고 발작 (seizure)이 동반되는 경우는 이해도가 높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의사가 환자를 Regional Center로 연결시켜준 경우, Regional Center는 기관 내에서 다시 진단을 하고, 장애가 확인되면 Individualized Family Service Plan (IFSP)를 마련해 준다. 이 플랜에는 아이의 발달을 위한 언어치료, 작업치료, 놀이치료와 같은 치료서비스, 장애를 가진 부모들의 모임에 대한 소개와 부모의 교육, 부모가 아이를 맡기고 쉴 수 있게 도우미를 구할 돈을 내주는 respite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보통 5세 전까지 집중 케어를 할 수 있도록, 아이를 지도할 선생님을 집으로 보내주며, 이 시기에 아이가 다양한 자극을 받아 더 많이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가정도 그 아이의 장애를 더 잘 이해하고 잘 다룰 수 있도록 부모들을 교육시켜주기도 한다.
즉 아이가 취학 연령이 되어 학교에서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lan)를 작성하기 전에, 그 가정을 위해 부모를 위한 교육, 부모에 대한 위로, 그리고 아이에 대한 발달 치료를 계획해 주고, 이 서비스들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곳이 Regional Center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서 장애인을 위해 지원해주는 의료 및 생활 서비스가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줌으로써 그 가족이 제도를 몰라서 혜택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장애인 가정을 도와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학교를 간 후에도 Regional Center의 코디네이터들은, IEP미팅에 함께 참석해 학부모를 옹호해 주기도 하고, 지역에서 그 아이를 위한 서비스가 있으면 연결해 주기도 한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transition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는 그 장애인이 독립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을 지원해 주는 것, 독립 훈련을 시켜주는 것, 기초 생활 지원비를 지원하는 것, 직업 교육을 시켜 주는 것, 그리고 여가 활동을 즐기도록 다양한 기관과 활동들에 연결해 주는 일 등을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모두 주 정부 지원이기 때문에, 타 주에 비하여, 캘리포니아가 매우 잘 되어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주거비가 매우 비싼 것을 고려할 때, 주거지 까지도 제공해 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School tax가 없기 때문에 학교가 늘 재정이 부족하여 뉴욕 주와 같은 곳에 비해 공교육 시스템이 낙후된 것은 사실이지만, 장애인을 위한 전반적인 복지는 잘 되어있는 편이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자폐 진단 과정을 떠 올려 보면 이 Regional Center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처음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부모는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정말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일단 Regional Center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주고, 필요한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부모가 겪는 혼란을 줄여줄 수가 있고 어느 정도 힘이 되어 줄 수가 있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후의 서비스가 정말 없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또 미국의 타 주에 비해서, Regional Center의 존재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기관과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는 존재 하는 것이 당연히 도움이 되고 고마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주정부에 의해서 다 무상으로 공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양질의 서비스가 아니라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의 아이도 놀이치료나 행동수정 치료 등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연결된 기관의 시설이라던가 선생님들이 한국에서 다녔던 시설이나 그곳에서 만났던 선생님들에 비해 너무나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비스를 그렇게 이용하지는 않았었다. respite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구하면, 그 사람에게 시간당 13달러 정도의 최저 임금이 지급되는데,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이 돈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16세 이상의 형제나 친척이 아이를 봐주어도 이 돈은 지급이 되기 때문에, 식구가 많은 경우, 식구들에게 돈을 좀 보태주는 의미는 되어도, 정말 낯선 사람을 시간 맞추어 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나는 아직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transition서비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담당자를 누구를 만나느냐,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기관들이 연결되어있고, 이들이 얼마나 잘 유기적으로 운영되느냐에 따라 경험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국가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일이고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질의 서비스와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된 선생님이나 스태프를 원한다면 미국도 역시 본인의 경제적 여유가 필수라는 것이 4년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