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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독립 Jun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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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첫 문장


막연히도 알수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리듯 갑작스레 시작해야겠다는 열망 하나로 두드리는 브런치의 세계.

막연하다 생각했지만 예전부터 나는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어디에다가 나의 속마음을 고백하듯 토해내고 싶은데, 마땅한 출구가 없어 생각들이 배출되지 못해 썩지도 한채 숙성되가고 있었다.



일기를 쓰면 되지 않은가?

라는 물음이 들려오는 듯 한데,

천성적으로 부지런해보이지만 게으른 나에게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꾸준히 나를 괴롭히는것과 같았고, 몇번 쓰다 만 몇년전의 일기는 한번씩 생각날때마다 추억여행하듯 들여다보고는 덮어버린다.



브런치라는 고상한 단어가 주는 분위기는 왠지 시큼 텁텁한 묵은 김치같은 나에겐 어딘가 어울리지 않은듯하여 

마냥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생명 탄생에 실패한 씨앗들이 후드득 피를 쏟아내며 내몸에서 떨어져나가자 지독한 상실감에 몸부림치던 내가 퍼뜩 생각한 것은,

 '글을 써야한다'였다.

몸 상태가 최악이면서 마냥 글을 써야겠다며 이상한 사명의식이 생긴 나는 그렇게 브런치라는 생소한 단어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다.


브런치주소를 무엇으로 해야하나. 익숙한 나의 계정 아이디를 쓰려다 지워버린다.

'누구도 나를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어에 무지한 내가 그래서 아무생각없이 생각해낸 단어가 'nonpeople'이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 무지한자라서 가능한 창조의 용기.


그러나 마음한켠 누구도 나를 알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모두가 나를 알아 주었으면 하는 모순된 감정도 존재한다.

그래서 공개된 장소에 공개적으로 나의글을 공개하는것인지도.



작가 이름은 무엇으로 하지?

글 좀 써보겠다는데 자꾸 놀자며 칭얼대는 아이가 내 손을 잡아 이끈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이불 뒤집어쓰며 엄마귀신 역할을 수행해주니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어재낀다.

어두운 침실 조명이 아이의 귀여운 웃는 얼굴을 비추고 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아이 얼굴에

그림자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고개를 들어 벽을 들여다보니 벽에도 어김없이 그림자들이 줄지어

늘어져있다. 나를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든다.


내 존재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녀석들.

나라는 물체가 있어야 나를 뚫지 못한 빛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라는 존재들.

문득 '그림자독립'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치듯 지나간다. 그래. 내 이름을 그림자독립으로 해봐야겠다.

그림자도 분명 나에게서 독립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나또한 그림자에게서의 독립을 원한다.



우린 서로의 독립을 응원한다.



다시 모니터를 켜서 글쓰기를 클릭해본다.

나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브런치의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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