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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독립 Jun 03. 2020

한 여름밤의 기도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남편이 이번 주 화요일 아침에 일주일간 베트남 출장을 갔다. 나는 하루하루를 식은 이불을 덮은 채 나직이 여보라 불러보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렇게 금요일이 되었다. 친정으로 부리나케 피신을 갔다. 평소 TV를 잘 안 보던 내가 그날따라 TV에 나오던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에 몰입해 버렸다. 옆을 보니 이는 현관 입구 빨래건조대의 옷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란 이런 것일까.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이 들린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이를 꽉 껴안아 올리자 입에서 피가 흐른다. 너무나 무서워서 망연히 아이 등짝만 두들긴다. 잠시 후 진정하는 기색이 보이자 아빠가 아이의 입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멀리서 상태를 물어본다.

이빨이 안 보여.


이 말에 나는 또 심장이 멎는다. 잠시 후 다시 살펴보던 아빠가 이제 보이네라고 말하자 조금이나마 안심한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지옥으로 돌아간 듯했다. 매 순간 자책하고 나의 어리석음과 자만을 가슴 깊이 반성했고 기도했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자다가도 기도하고 자고 난 후에도 자기 전에도 기도했다. 그 간절함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간절할 수 있다는 것은 남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너는 내 아들이로구나. 그리고 나와 내 남편의 아들이로구나. 깊은 새벽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기필코 너를 찾아내 준다. 자그마한 형체가 들숨날숨으로 등을 팔락거린다. 수십 번 너의 이마와 볼, 등, 팔, 팔꿈치, 무릎 등에 입을 맞춘다. 나는 아파도 너는 아프지 말어. 너의 고통은 온전히 내가 대신 느끼게 되었으면. 너는 항상 웃는 일만 있기를.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그리고 깨닫는다. 너를 얼마나 간절히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자식이란 부모에게 어떤 존재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출장 간 남편에게는 이 사실을 귀국 후 말하는 것이 보통 정상적인 아내의 도리겠으나 나는 이미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어 잘 터지지 않는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다정한 목소리.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푹 자.


사실 나는 그동안 모성애가 조금은 모자란 그런 엄마라고 생각해왔었다.


자식보다는 남편이 우선이고, 자식보다는 우리의 삶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고, 기어코 워킹맘이 되었다. 아이와 떨어져 일을 하는 시간이 오히려 휴식처럼 느껴졌다. 그랬다.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조금은 내 자신이 거기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이질감을 느꼈고, 그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아이의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퍼뜩 정신이 든 것이다. 나는 엄마다. 하나뿐인 나의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이의 유일한 세상이고, 기댈 수 있는 따뜻한 품 안이다. 커리어를 쌓는 것이 당장의 시급한 목표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이가 최우선이 되었다. 어머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가장 힘들고 노력을 요하는 일이 사람 하나를 키우는 것이라던. 내가 귀하게 여기고 아낄수록 자식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라던. 요즘 사회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이유도 실은 다 사랑받지 못한 아픔으로 인한 병이라는 것이라던.


 아이가 학교에 가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될 때까지는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아이도 우리의 품을 떠나 스스로의 자아가 안내하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 아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의 심장에 사랑을 가득 심어 줄 것이다. 내 심장을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너와 나는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게 된 것일까.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의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뜻이다. 지난날 너와 나는 무슨 관계였을까. 어쩌면 너는 지난 생에 나의 부모가 아니었을까. 나의 울음소리에 나와 똑같이 애처로워하며 파르르 떨던. 그런 하늘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한 여름밤에 간절히 기도하는 여자가 있다. 침묵의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그녀는 그렇게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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