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과정에 관하여
앞 글에서 간략히 적었지만, 산림 분야 취업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BCIT 경험상으로 학교 기반으로 한 지원도 충분하고 클라스 전원 가까이가 결국 일자리를 찾는다. 간단하다는 게 쉽다거나 별 노력 안해도 저절로 취업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수요에 비해 인력 풀이 너무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노력하면 자기 자리 찾는 게 한국에서 취업하듯 하늘의 별따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메트로 밴쿠버에서 가까운 곳으로 한정한다면 애초에 산림이 적으니 많지도 않은 회사를 두고 경쟁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현지 네트워킹과 경력 없는 유학생 입장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BCIT나 UBC에는 당연히 메트로 밴쿠버 지역 출신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북쪽으로 가길 보통은 꺼려한다. 그래도 결국 북쪽에도 밴쿠버에서 온 이들 천지다. 북쪽에서 좋은 인력에 대한 일자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고, 산림 분야 기술 이민을 생각한다면 지역 이동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나는 원래 밴쿠버에 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고 학교 졸업하고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데다 홀몸이니 어디든 가기 쉬웠지만, 가족이 있다면 미리 계획을 잘 세워야 할 것이다.
앞서 글에서 간략히 적었지만, BCIT 9월 입학 후 2주 후부터 바로 다음 해 여름 인턴쉽 리크루팅이 시작됐다. 보통 캐나다 관례가 그렇다는 걸 몰랐으니 당황했으나 돌아보면 처음에 빡세게 준비해서 인턴쉽을 해결해 놓고 나면, 이후 남은 학교 생활과 이후 취업 및 영주권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통 첫 여름에 일했던 회사에서 졸업 후 풀타임 오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머잡이 회사 입장에서 나쁜 인력 거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이민을 고려해 유학 온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일터에서 인정받는 정도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데서 일하고 싶대도, 일단 경험이 있고 큰 문제 없이 일했다면, 이후 다른 회사 취업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턴쉽 오퍼를 받고 나면 이민자로서 불안한 상태를 캐나다 와서 넉달만에 대략 해소하고 남은 건 그저 공부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또 졸업 후 그 회사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일단 경력이 생기면 선택지와 취업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첫 여름에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해보기를 권장하지만, 혹시 여의치 못하게 되서 졸업 후 처음 일을 시작해도 큰 무리는 없다.
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산림 관련 자격증을 딸 자격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능력치?랄 것보다는 회사들은 Culture fit, 그리고 일할 지역에 친척 등 커넥션이 있다거나 하는 기타 실용적인 사항을 가장 중시한다. 학점 같은 거 묻지 않고 (그러나 향후에 석사나 기타 진로를 생각한다면, 또 학교에서 배운 게 일터에서 많이 적용되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 이력서 내서 인터뷰 잡히면, 인터뷰도 편하게 또 학교로 와서 해주신다. 산림인들 답게 옷차림도 신경쓸 것도 없다. 그래서 인터뷰를 통과하면 끝!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3차 인터뷰 그런 거 없다. 첫 서머잡 하고 나서 회사가 만족스러웠다면 내년에도 일하러 올 수 있느냐고 물을 테고 오케이 하면 뭐 그냥 채용 끝이다.
물론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만 처음 FNAM 프로그램 입학한 상태에서 다같이 대부분 관련 경험은 없으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 고 해도 학생들 평균 연령이 20대 중반 이상으로 학교든 일이든 다들 이모저모 경험이 있고, 더러 공원 가디언이나 tree planter, landscaper 등 경험이 해봤던 친구들이 있다. 산림이 아니라도 캐나다 본토박인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마운틴 바이크, 사냥, 백카운티 캠핑, quad 등 산림 분야에서 중시하는 wilderness 경험을 갖고 있다. 꼭 산림환경 분야가 아니라도 뭐든 현지에서 일해 본 경력은 당연히 플러스가 된다.
나는 당연히 백지 상태였고, 아무리 신입생이라고 해도 텅 빈 관련 경력을 어떻게 채우느냐 걱정이라면 방법도 다 있다. 선생님들이 이모저모 커넥션을 통해 가끔 주말에 학생들이 할만한 일을 소개해주곤 하는데, 나는 Squamish 산골짜기에 따라가서 소나무 씨앗 채취하는 알바 한 번 하고 밴쿠버 지역 공원에서 invasive plant 제거하는 자원활동 모임에 두어번 나가서 이력서를 채워 넣었다. 일 자체는 특별할 거 없는 노가다에 가깝지만 Silviculture 관련 분야이므로 그럴싸하게 썰을 잘 풀면 되고, 실제로 한번이라도 풀장비 장착하고 wilderness에서 돈받고 일해보는 것 자체가 전혀 해보지 않은 것과는 천지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산림 분야 관련 경력 외에는 Peak leadership이라고 학교에서 리더쉽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선발해서 이모저모 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첫 인터뷰에서 physically fit 하네 마네 하는 소리를 들은 뒤로는 아이키도를 다니고, 그 정도 했던 것 같다.
네트워킹도 매우 중요하지만 유학생 입장에선 어차피 지역사회서 쭉 살아 온 현지인과 비빌 수는 없고, 산림 분야에선 학교 다닐 동안 네트워킹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왠만한 큰 회사들은 학교에 프레젠테이션 하러 오기 때문에 인사 담당자들과 그때 명함 받고 인사할 수 있다. 현지 애들은 부모님 친척 등 소개로 자기네 동네 정부 기관이나 공원 취업도 곧잘 하기도 하지만, 똑같이 취업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진짜 네트워킹은 어차피 같이 알하는 동료들,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신뢰받고 잘 지내는 것이므로.
어쨌든 여기저기 비비고 다녀서 나쁠 건 당연히 없다. 밴쿠버에서는 BC 산림협회 모임과 세미나가 매달 열리고 학생들도 초대하는데, 좋은 데서 맛있는 밥 먹고,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보다 좀 더 생생한 것도 물어볼 수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으면 그런 데 다니는 것도 괜찮다. 아직까지 산림은 링크드인같은 툴을 채용에 활발히 쓰는 분야는 아니라 현직자들이 프로필을 관리하는 사람도 많지 않긴 한데, 만났던 인터뷰어나 지원한 회사들에서 우리 학교 출신이나 드문 한국인을 발견하면 인사하는 정도는 했다. 그중에 나중에 밴쿠버 지역 인력을 찾는데 혹시 나나 다른 이 소개가 가능한지 물어온 경우도 있었다.
사실 학교 생활 및 이력서 내고 인터뷰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다른 활동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인생 최고로 시간을 알차게 쓰는데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력서에 써넣으려고 억지로 했는데, 어언 10여년 전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엔 자발적으로 온갖 경험을 했지만서도 취업에 왜 대체 이런저런 경험이 필요한 거지? 딱히 이해하진 못했었다. 그게 왜 중요한 지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난 캐나다 와서야 처음 배워서 나눠본다. 커리어 센터 선생님이 해준 말인데, "BCIT가 (기타 대학들도 마찬가지로) 바쁜 거 고용주들도 다 안다.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수업 외 활동을 하고 커뮤니티에 신경 쓴 흔적이 있는 사람들이 곧 진짜 열정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뭐 이런 말이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학교 수업 충실히 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민이 목적이면 그보단 취업이 더 중요하니 예를 들어 95점 목표로 할 걸 내려서 85~90점 쯤 목표한다는 느낌으로, 그 정도도 충분히 좋은 학점이기 때문에, 학교 외에 취업 준비 활동에 쓸 시간을 우선시해서 빼두는 게 중요한 것 같다.
BCIT에서는 FNAM 선생님들이 빠짐 없이 올라오는 잡 공고들을 과 그룹에 공유해 주기 때문에 따로 더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첫 서머잡에선 지역, 포지션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지원하는 게 능사라고 생각한다. 언어도 완벽하지 못한 외국인이고 경력도 없고 기타 등등 날 굳이 뽑을까 자신 없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어느 회사의 누가 나의 이력을 눈여겨볼 지는 지원 전에는 알 수 없다. 다만 BC 주정부 같은 데는 지원하지 않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공공기관이 굳이 외국인을 뽑지 않을 거라는 짐작에서였다. 또 회사 홈페이지 가서 사원들 단체사진 같은 게 있으면 그게 100프로 남자이거나 백인뿐이면 안 넣기도 했다. 작은 타운에 있는 회사들 두어 군데가 그랬던 것 같다. 또 지역 공원 관리나 트리 플랜터 등 여름에 학생들을 뽑는 기타 산림 분야 일자리는 범위가 넓다. 그게 Forestry technician 커리어와는 좀 거리가 있어서 나는 지원하진 않았었는데, 그래도 첫 경력으로서는 충분히 의미있으니 어쨌든 가리지 않기.
커리어 센터에서는 레주메, 커버레터, 인터뷰 세미나를 계속 운영하고 자료도 빠방하다. 선생님들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개인 면담을 통해서도 레주메 첨삭을 받을 수 있고 모의 면접도 해준다. 나의 은인 K 선생님... 원서 넣고 인터뷰 잡힐 때마다 약속 잡아서 첨삭 받고 족집게 인터뷰 예상 질문 뽑아주는 것부터, 모의 면접은 항상 예약 시간을 넘기면서서까지 진심으로 도와주고 격려를 많이 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인력들이 있으니 학교 커리어 센터를 200% 활용해야 한다.
이 글은 내 경험이 한정된 만큼 첫걸음을 어떻게 떼느냐에 한정된 글이고, 진짜 프로 세계에서 다양한 직종과 이직 과정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냥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들은 말 정도만 전하면, 경험과 좋은 레퍼런스가 있으면 사실 원하는 지역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다시, 물론 밴쿠버 가까이는 빼고). 임업 분야 섹터를 대략 산림을 소유한 정부 기관, 정부에게서 산림을 임대받아 경작?하는 라이센시 기업들, 보통 정부나 라이센시에게서 서베이 등을 외주받아 진행하는 컨설팅 펌, 이렇게 나눌 수 있는데, 보통 그 간 협업하는 일이 많기에 그 사이 스카웃이나 이동도 흔하다. 차이는 어디든 그렇듯이 private 섹터는 돈은 더 많이 받지만 워라밸이 더 어려울 수 있고, 정부 기관은 9 to 5 되지만 지루하고 임금이 적고, 그런 듯했다.
인터뷰 내용을 빼먹어서 덧붙이자면, 보통 어느 직종에서나 해당되는 인터뷰 준비사항들 기본으로 준비하면 되고, 현재 산림 산업 분야 이슈를 간략히 체크하고, 학교에서 써본 장비나 프로그램 체크하고, 안전 의식을 잘 점검하면 된다. 예를 들어 quad를 타고 가다가 스트림 위에 놓인 다리를 맞닥뜨렸는데 이게 좀 오래돼 보인다 어떻게 하겠느냐, 학생 둘이서만 캠프에서 일하게 됐는데 다른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냐, 이런 식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 모범답안은 스스로 판단해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슈퍼바이저에게 보고한다일 것이다. 오지에 가까운 숲속에서 별의별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일터에서 안전 수칙을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나는 인터뷰를 3차례 봤는데 보통은 다대 일 인터뷰로 인터뷰어는 1명부터 4명까지 다양했고 시간은 20~40분 정도로 긴 곳은 길었다. 결국 내게 오퍼를 준 곳은 인터뷰가 좀 특이했다. 인터뷰어 혼자 왔는데 질문은 하지 않고 인사 나누고 앉자마자 내내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정확히 페이와 기타 수당 보너스 등이 얼만지 설명만 하고, 이전에 한국인 직원이 해준 요리가 맛있었다 이런 말만 했다. 이건 나에게 관심이 없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보자마자 뽑아야지 해서 처우를 알려주는 것인가 헛갈려서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대략 "나는 인터뷰 질문하고 대답 듣는 게 심리 게임도 아니고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냥 사람 봤을 때 느낌을 믿는다"고 하더라 하하핫... 어차피 인터뷰로 걸러봐야 느낌 믿어봐야 랜덤인 건 맞지만서도 대놓고 이러는 건 무튼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그럼 네가 원하면 질문을 하겠다면서 전 회사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었는지 그런 거 물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일하면서 보니 그는 좋은 대장 보스였고 내게 신경도 잘 써주었다.
그렇다고 바로 붙었던 건 아니고 같이 인터뷰 본 친구는 합격 통보를 받고도 나는 아무 소식이 없어 안됐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며칠 지나 아직 논의중이니 기다리라고 연락이 오더니, 그리고도 또 몇 주 있다가 포기하고 있을 때 결국 오퍼가 왔다. 이전 글에 적었지만 나는 그 해 그 회사 여름 인턴 학생 중 유일한 아시안 여성 인턴이고 또 유일한 30대였다. 회사에서도 뭐랄까 처음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노력한 것 같다. 사실 내 나이를 모르고 뽑은 것 같았던 게 30세가 넘어가면 정부에서 회사에 주는 학생 인턴 고용 지원금 대상이 안돼서 처음에 서류 작업할 때 HR 담당자가 읭? 하였다. 그러나 내가 이력에 거짓을 적은 것도 아니고 이제와서 뭘 어쩔 수 없었기에 하하.
어쨌든 나를 뽑아준 그 보스와 회사에 기본으로 고마운 마음이 컸고, 짧은 시간이지만 일해보니 회사도 나랑 코드가 잘 맞는 곳이었기에 나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와 약간 비슷하게 사장 없이 employee-owned 형태라서 매해 이윤을 직원들에게 나누는 곳이었고, 직원들은 우리 회사는 좋은 사람을 뽑으려고 노력하고 정부 기관 가는 것 외에는 퇴사자가 없다, 는 보기 좋은 정도의 자부심이 있었다. 계속 산림 일을 했다면 졸업 후 아마 그 회사에서 꽤 오래 일했을 것이다. <계속>
5편 - 산림인의 생활, 그리고 머니머니해도 중요한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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