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답 Jan 01. 2024

30대 후반 개발자로 캐나다 이민 이야기

를 가장한 해피 뉴 이어

감기 기운이 있어 오늘 신체 활동을 별로 하지 않긴 했지만 새벽 4시 넘어서까지 뒤척이고서야 요놈, 범인은 오후에 먹은 티라미수 케익이었구나 떠올랐다. 하도 오랜만에 생각나 먹으며 커피가 들었다는 것도 잊었다.


내처 못 자는 김에 일어나 몇 달간 생각만 하던 글쓰기를 해보자, 마침 연말 마무리 겸. 글을 써보라는 건 나의 친애하는 테라피스트 K의 조언이었다. 코딩과 시스템 디자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1년 째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고 염불을 외던 내게, K는 여가 시간에 뭔가를 꼭 성취해야만 하는 걸까, 꼭 해야만 할 일이 없다는 게 정말 나쁜 걸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운동 관련 취미 후보들만 줄줄이 늘어놓는 내게 혹시 예술에 관련된 활동에는 관심 없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전생을 갑자기 기억하듯 스위치가 켜졌던 느낌이랄까. 내가 안 그래 보여도 한때는 문학청년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꽤 예술적이었다고, 글쓰기가 내게 가장 중요한 취미 혹은 정체성이었고 내가 얼마나 한글을 사랑했는지 주절주절 떠들었다. 지금이야 한국에 있는 동생과 통화할 때마 대체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라고 타박받는 신세가 됐지만...


2022년 8월에 졸업 후 내게는 드디어 자유 시간이 아주 많이 생겼는데 (풀타임으로 일하지만 학생 신분을 벗어나니 그렇게 느껴졌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는 그 순환... 남들은 열심히 코딩 공부하고 해커톤도 하고 네트워킹도 하고 FAANG도 가고 노력하고 사는 것 같은데, 나는 학생 때 코업 인터뷰들 보던 그 시절 직전에 며칠 릿코드 벼락치기 하던 게 전부고 (그래서 대부분 주룩주룩 떨어지다가 인터뷰들로 공부해서 겨우 마지막 인터뷰에 붙음), 뭔가 기본기가 없다는 생각에 착잡하던 것도 졸업하고 몇 달 놀다 보니 그냥 놓고서 편히 놀게 됐다. 작년 박싱 데이 때 릿코드 프리미엄 1년치 딜로 끊어놓고 1년 간 단 한번도 접속하지 않았음을 올해 박싱 데이 때 재결제가 돼서 고객센터에 항의하느라 알았다 하하. 

무튼 놀러 다니고 자연을 즐기거나 드라마 보고 그냥 놀고 먹는 것 외엔 뭘 진득하게 에너지 쏟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도 안 들어서 한국만 다녀오고. 아이키도 권투 수영 러닝 및 각종 프로그램들 다 깔짝깔짝 하다 말다..


그러다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밴쿠버의 가을 낙엽이 다 질 쯤부터 백만년 만에 소설책을 몇 권 읽었고 코딩 문제를 자발적으로 즐겁게 풀기 시작했고, 나의 기술을 어디에 쓰면 뿌듯할까 생각도 해보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구나.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해야 하는데 (안 하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로 바뀐 느낌. K의 말대로 내게 그만큼의 휴식이 필요했던 거구나 와닿았다. 4년 간의 늦깍이 학생 생활을 마치고, 일 끝나고 저녁과 주말에 해야만 하는 공부가 없는 삶에 맘 편히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나보다. 4년이 아니라 캐나다에 오기 그 훨씬 전부터도 언제 이만큼 평안히 한가로이 산 적이 있었나 하자면, 글쎄로구나.

 



2018년 8월 말 캐나다에 산림학 전공 학생으로 와서 1년 뒤 컴퓨터 과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2020년 5월에 세컨 디그리를 시작해 2022년 8월에 졸업하기까지, 나 참 수고했다. 학교 다니면서 1년은 코업, 마지막 학기는 풀타임 학생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불태우고 졸업했다. 그리고 이제는 3년차 개발자로서 (코업 기간까지 합쳐서), 이제는 나 개발자라고 부끄러움은 없이 말할 수 있는 느낌.


내년에 37세가 된다. 34세에 학생으로 Software developer 코업을 시작했고 파트타임을 거쳐 졸업 후 같은 회사에서 쭉 일해 왔다. 팀원들 중엔 띠동갑 차이부터 매니저 외엔 죄다 나보다 어린데 사실 나이가 많고 적고 생각할 일 없이 산다. 나이를 적어 보는 건 무엇이든 새로운 도전을 꿈꾸지만 나이 때문에 걱정하는 한국인들이 나의 사례를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미 이르지 않은 나이에 유학와서 다시 전공 바꾸기로 마음 먹은 질풍 노도의 시기에 내 나이를 세어가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 지금에 생각하면, 정말 에너지 낭비였을 뿐이었다. 30대 후반 개발자 이민 - 제목은 사실 낚시용이고 글은 개인적인 연말 소회를 수다 떨고 싶을 뿐이지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었다. 그리고 올해를 돌아보는 개인적 키워드들이 마침 캐나다 문화, 이민과도 연관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영주권. 10월 초에 프로필을 작성했고 12월 초에 영주권 초청장을 받아 서류를 냈다. 요즘 EE 드로우 CRS 점수가 500점 이상으로 높아져 내 점수는 490점대로 그에 미치지 못해 경력 2년 차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도 싶었는데, 다행히 STEM 분야 드로우가 486점으로 나왔다. 영주권이 필요한 이유는 졸업 후 비자는 3년 뿐이라 이후에도 북미에서 일하고 싶으면 필수다. 5년 째 살다보니 이모저모 캐나다의 답답한 점들도 눈에 들어오지만, 커리어 기회와 일터에서의 대우는 내가 한국에서 같은 도전을 같은 시기에 했을 경우 비교 불가라고 생각하기에 이곳에 쭉 머물고 싶다. 혹시나 이번에도 이 일이 안 맞는다고 느껴지면 어떡하나 했던 걱정도 끝, 일이 적성에 잘 맞고 즐겁기에 이제 인생에서 더 이상의 커리어 체인지 혹은 그런 욕구는 없어진 듯하다.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캐나다 영주권 그리고 시민권이 있으면 미국에서 일하기도 한결 수월하고, 개발자라면 결국 미국에 가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다.

 

회사 생활. 똑똑하고 다정한 팀원들이 참 좋다. 인생 최고의 팀플을 하는 기분, 행운이라는 생각을 곧잘 한다. 그간 쭉 재택이었는데 내년부터는 1주일에 한번 회사에 가야 하는데, 각자의 이유로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설렘이 더 큰 것 같다. 그새 두어 개 프로젝트 리드를 맡아 끝냈고 (회사에서 시니어, 인터미디엇 가리지 않고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리드 기회를 준다), 예전에 내가 해내는 게 상상되지 않았던 일들이 자연스러워졌다. 갓 졸업했을 때만 해도 여전히 영어와 업무 능력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해 입 닫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회의와 각종 디스커션에서 거리낌 없이 나설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할 말 다 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긴 했으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 목소리 내기가 편하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는 내 첫 매니저 덕이 정말 크다. 그러고 나니 그간 영어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한국 드라마 및 컨텐츠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이제 글도 쓰고 한다. 


상담. 회사 보험으로 연간 2300불까지 테라피 커버가 돼서, 준다는 건 써봐야지 하고 시작했던 게 가장 잘한 일이 됐다. 또 회사 디렉터들이나 강연 초청자, 어떤 친구들이 상담 받는 걸 언급하면서 추천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사실 상담은 미드에서 많이 봤어도 익숙치 않은 문화고, 엄청나게 당장 괴로운 상황이고 사적인 거라는 인식이 내 안에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잡담처럼 하는 걸 들으면서 어떤 편견이 깨졌던 것 같다. 금쪽이와 오은영쌤 클립도 자주 보고 스스로를 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나의 친애하는 K와 1년 여간 보험료가 다할 때까지 상담하는 동안 소위 breakthrough 라고 하는 순간들을 수 차례 겪으면서 성장... 했다긴 이르고 그러려 노력하고 있다. 아름답다, 평화롭다는 생각이 자주 절로 들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도 아마 상담 덕분인가 싶다. 시절은 참 평화롭지 못해서 이렇게 나만의 동굴에서 맘 편히 살아도 되나 생각도 함께 들지만, 일단 그저 할 수 있는 걸 하고 평안에 감사하자 하면서. 


이사. 타인들과 하우스 쉐어를 벗어났다. 졸업 후부터 살기 시작한 내겐 완벽한 이 동네에 콘도를 구할 수 있었어서 기뻤다. 물론 높은 렌트는 전혀 기쁘지 않고 미친 밴쿠버의 Housing crisis, 그로 인해 밀려나는 사람들, 온갖 문제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보다 집을 소유하는 게 일단의 제일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건지, 종내에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아마 하루 걸러 착잡해하며 보냈을 것 같다.




올해 큰 성취랄 건 없었지만 무얼 했는지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처음 해본 것들이 꽤 있다. 축구와 풋볼 경기장 가서 경기를 본 것. 인생 첫 자발적 봉사활동.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 다니기. 미니골프. 집에서 마라탕 해먹은 것 (중국인 당시 하우스 메이트 주도였지만). 개 산책 시키기 (이전 하우스메이트이자 현 동네지인에게 종종 고용됨). 남들 앞에서 신나게 춤추기, 회사 신년 파티 때. 서커스와 관현악 공연 관람. 오디오북 듣기. 스피치 테라피 해보기 (발음 교정해주는 건데 보험으로 세번쯤 커버되길래 해봤다). 권투하기. 각종 소소한 이벤트들 열심히 쫓아다니기. 할로윈 때 호박 깎아보기. 나무라고 불릴만한 반려식물 들여 돌보기. 치즈케잌과 콘브레드, 가장 간단한 것들이지만 베이킹 시도들 성공적.


내년에 처음 해보고 싶은 것들. 수영 마스터. 10K 뛰기. 아마추어 축구팀 들어가보기 가능하다면..? (Ted Lasso의 영향, 이 열기가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릿코드와 시스템 디자인 등등 공부하고 이직하기. 운전 연습해서 밴쿠버에서 손수 운전해서 놀러가 보기. 캐나다 동부, 퀘벡, 오타와 여행하기. 친구가 올 계획이라 하니 맞춰서 뉴욕에 처음 가 보기. 주기적으로 봉사활동 하기. 새로운 요리와 베이킹 더 자주 해보기.

작가의 이전글 산림으로 캐나다 이민하기 6편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