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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Oct 20. 2023

영국 걷기여행

아이리시해에서 북해까지 Coast To Coast 315km


걷고 싶은 곳이야말로 최고의 여행지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뒤흔드는 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경기둘레길을 걸었다. 한반도 역사가 응축돼 있는 중심 현장을 두 발로 누빈다는 뿌듯함과 함께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새삼 솟구치는 여정이었다. 


둘레길 860km 완주 마지막 날엔 김포 대명항 도착 즉시 해안 철책선 아래 나뭇잎 속을 헤쳤다. 1코스 시작하던 날 묻어뒀던 조약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가지러 올 때까지 나를 잘 지켜달라’는 염원을 담아 묻었었다. 조약돌에 쓰인 ‘Tims’라는 볼펜 글씨 또한 그대로였다. 영국 횡단 CTC를 출발하던 날 영국인 팀스씨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조약돌이다. ‘북해 앞까지 가는 동안 이 조약돌이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며 세인트비스 해변에서 하나 주워 내 손에 쥐어 줬었다. 원래는 다른 이들처럼 15일 후 북해 앞바다에 훌쩍 던져야 했지만 어쩐지 아까워 가져왔었다. 



영국 브리튼 섬을 걸었던 그해 여름은 내 인생에 오래 기억될 만한 찬란한 날들이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와 요크셔 데일스와 노스요크무어스, 3개의 국립공원을 두 발로 누비며 섬 전체를 가로질러 횡단했다. 야생화 헤더 꽃이 만발한 계절, 잉글랜드 북부의 황무지 무어(moor)는 완전한 보랏빛 낙원이었다.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정겨운 모습으로 머릿속을 맴돈다. 랑데일 골짜기에서의 뉴질랜드인 형제, 켈드의 숙소 버트하우스의 가일스 씨 부부, 서너 번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미국인 셰릴리와 킨시 그리고 산 밑에서 40분이나 나를 기다려준 테일러 여사와 그의 손자 에드워드, 한결같이 그리운 얼굴들이다. 


‘The fool wanders, a wise man travels

(바보는 방황하고 현자는 여행한다).’ 


영국 작가 토마스 풀러의 말이다. 여행하는 사람은 현명하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바보같이 방황만 하지 말고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봐라, 그러면 뭔가 문제가 풀리고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CTC를 시작하던 첫날 세인트비스 절벽에 올라 아이리시해를 바라보던 그날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새로운 길, 안 가 본 길 앞에 마주 선 이들의 심정이 대체로 그러할 것이다. 은근한 기대와 막연한 두려움, 거기에 각자 나름의 의지가 섞인 묘한 설렘이 혼재되지 않을까. 그리곤 그 길을 걸어 목표했던 곳까지 이르고 나면 그 여정은 그에게 새로운 역사가 된다. 각자의 인생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작은 인생’으로 쌓이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질이 얼마나 풍성하고 윤택할지는 이런 소소한 역사나 작은 인생들을 얼마나 촘촘하게 쌓아가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2023년 5월 출간

저자 이영철 

출판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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