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철 Jan 20. 2024

헨리 8세와 비운의 왕비들 이야기(1/2)

영국의 브리튼 섬은 원래 BC 6세기경부터 북유럽 등지에서 건너와 살고 있던 켈트족의 땅이었다. 섬 이름도 ‘몸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란 뜻의 ‘프레타니카이(Pretanikai)’가 ‘브리타니아(Britannia)’로 변하며 ‘브리튼(Britain)’이 되었다. 켈트족 영웅 윌리엄 월레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얼굴에 온갖 색칠을 하고 외적 잉글랜드에 맞서 싸우는 켈트족 전사들이 브리튼 섬의 원 주인이었던 것이다. 



‘대영제국의 역사는 기원전 55년에 시작된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브리튼 섬은 BC 55년 줄리어스 시저의 로마군이 쳐들어오면서 문명세계로 편입하게 된다. 그리고 400년 지난 후에는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함께 섬의 주인도 다시 바뀌게 된다. 게르만족의 두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대거 밀고 들어와 터를 잡으며 힘 빠진 로마군은 쫓겨나고, 원래의 섬 주인이었던 켈트족 또한 변방인 북쪽 스코틀랜드나 서쪽 웨일스 또는 인근 아일랜드 섬으로 밀려나간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마지막으로 켈트족은 오늘날까지 스코틀랜드-웨일스-아일랜드를 기반으로 살아왔고, 브리튼 섬의 요지인 잉글랜드는 9세기 알프레드 대왕의 등장과 함께 앵글로·색슨족의 찬란한 역사 무대가 되어간다. 11세기 정복왕 윌리엄의 노르만 왕조부터 16세기 튜더 왕조의 마지막 왕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영국 역사는 잉글랜드의 역사나 다름없다. 


왕에서부터 하층민까지 온갖 인간군상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들이 워낙 흥미진진하여,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로 혹은 시나 소설로 재창조되어왔다. 그들 중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의 부친 헨리 8세만큼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역사 인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여섯 번의 결혼과 스캔들, 그 와중에서의 비운의 왕비들의 죽음은 오늘날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흥미진진한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천인공노할 폭군으로 평가되기보다는 영국 역사에 나름대로 발전을 가져온 강군(强君)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기 1450년에서 1550년, 그 100년 동안의 영국 잉글랜드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영국과 프랑스가 벌였던 백년전쟁은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전세가 뒤바뀌면서 1453년 영국의 패배로 끝이 난다. 이로 인해 영국은 프랑스 전역에 퍼져 있던 자국 영토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졌다. 당시의 잉글랜드 왕 헨리 6세는 패배의 쇼크로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국정 운영이 국도로 불안해지며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지고, 결국은 후계 왕위를 놓고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다. 두 가문의 문양이 붉은 장미와 흰 장미라서, 장미전쟁으로 불린다. 


이 30년 장미전쟁의 결과로 튜더 가문의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고, 영국 역사에선 이때부터 엘리자베스 여왕 때까지 120년을 튜더 왕조라 한다. 30년 장미전쟁을 치르면서 귀족들이 많이 죽고 세력이 약해졌기에 새 왕조에선 왕권이 유리한 환경이 되었고, 헨리 7세는 절대왕권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24년 동안 치세를 펼치다 죽는다. 그에겐 두 아들이 있었으나 장남이 15세 나이로 요절했기에 둘째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데 그가 곧 헨리 8세다. 그는 형이 요절하면서 과부가 된 형수 캐서린을 왕비로 맞이해야 했다. 



▶  번째 왕비 캐서린 


당시 유럽 강국이었던 에스파냐는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주축이었는데, 캐서린은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 부부의 막내딸로서 영국에 시집와 있었다. 정략결혼으로 잉글랜드 왕 헨리 7세의 장남 아서와 결혼했지만 병약했던 왕태자가 일찍 죽자, 헨리 7세는 과부가 된 며느리를 새 왕태자인 차남 헨리 8세와 약혼시킨 것이다. 며느리 나라인 강대국 에스파냐와의 동맹관계를 고려한 정략적 결정이었다.


결혼 초기에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는 금슬도 좋았고 서로의 우애도 깊었지만, 계속되는 출산에도 왕비가 아들을 못 낳자 왕은 실망이 커지면서 한눈을 팔게 된다. 그동안 3남 3여를 낳았지만 유산과 사산이 반복되면서 딸 메리만이 유일한 자식으로 남는다. 후계자 아들을 꼭 얻고 싶었던 헨리 8세는 나날이 초조해하던 중 왕비의 젊은 시녀인 앤 볼린에게 눈독을 들이게 되었고, 결국 캐서린은 이혼을 당하게 된다. 


로마 교황청이 이 이혼을 반대하고 나서자, 헨리 8세는 자신을 ‘영국 교회 최고의 수장(首長)’으로 규정하는 ‘수장령’을 발표하면서 영국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시켜 버린다. 헨리 8세의 이혼과 앤 볼린과의 재혼은 영국 국교인 성공회(聖公會)가 성립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폐비가 되어 쫓겨난 캐서린은 끝까지 자신이 합법적인 왕비임을 주장하며 살았지만 아무 소용없이 52세에 암으로 사망한다. 


스페인 통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나, 10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고, 두 번째 남편에게선 버림받아 혼자 살다가 암으로 죽는, 참으로 비운의 삶이었다. 그녀가 낳은 유일한 딸 메리는 아버지 헨리 8세가 죽자 우여곡절 끝에 왕위를 이어받아 영국 최초의 여왕 메리 1세가 된다. 그러나 부친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여왕 즉위 후 수많은 신교도들을 잡아들여 처형했기에, 그녀에겐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오명이 붙는다. 


메리 여왕 즉위 후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사형 집행 (폴 들라로슈 작) 런던 내셔널갤러리


▶  번째 왕비 앤 볼린 


첫 왕비 캐서린을 몰아내고 두 번째 왕비 자리를 꿰찬 앤 볼린은 이미 왕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왕은 이 아이가 꼭 아들이길 원했지만 막상 낳고 보니 딸이었다. 이 여자아이가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여왕의 자리에 올라 대영제국의 기틀을 잡게 되는 엘리자베스 1세다. 앤은 이듬해 다시 임신했으나 유산했고 이어서 또 임신했으나 왕자를 사산하고 만다. 


여전히 후계자 아들을 갈망하던 왕은 실망 속에 다른 아내감을 찾기 시작했고, 왕비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에게 눈독을 들이게 된다. 앤은 점차 왕비로서의 입지가 어려워졌고, 왕의 마음도 완전히 앤을 벗어나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결국 앤은 간통과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감금된다. 왕의 심증을 간파한 측근 간신들이 엮어 놓은 덫에 걸려든 것이다. 왕은 앤을 배려한답시고 법정에서 판결 난 화형을 참수로 감면해 줬다지만 사형은 단칼에 집행되었다. 앤의 참수를 위해서 당시 흔히 쓰이던 도끼 대신 칼을 잘 쓰는 노련한 백정을 프랑스에서 특별히 고용했다고 한다.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이야기는 1969년 영화 <천일의 앤>이나 2008년 영화 <천일의 스캔들> 등을 통해서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1533년 1월에 헨리 8세와 결혼해서 같은 해 9월에 딸 엘리자베스를 낳고, 1536년 5월에 사형당했다. 왕비로서의 이 짧은 3년 4개월의 세월을 빗대어 사람들은 '1000일의 앤'이라 불러왔다. 


헨리 8세와 앤 볼린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일의 스캔들'


▶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 


두 번째 왕비 앤 볼린을 참수한 헨리 8세는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를 세 번째 왕비로 맞이한다. 앤이 처형된 지 십여 일만에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정숙하고 순종적인 매력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헨리 8세가 가장 진실되게 사랑한 아내로 존중받게 된다. 세련미와 요염함을 지녔던 앤 볼린의 성격과는 정반대였던 그녀는 이윽고 왕이 고대해 왔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출산 후유증으로 십여 일 만에 숨을 거둔다. 


살아생전 헨리 8세는 제인 시모어가 묻힌 윈저성의 성 조지 교회에 자신의 묘지를 미리 준비해 두었고, 그녀는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중 유일하게 왕과 같이 묻힌 아내가 되었다. 헨리 8세의 유일한 적자인 에드워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모델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 헨리 8세가 죽자 9살의 어린 나이에 에드워드 6세로 즉위하지만 워낙 병약하여 재위 7년 만에 죽는다. 이후 제인 그레이,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순으로 잉글랜드 왕위가 이어진다.  (계속) 



이전 20화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