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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Jan 27. 2024

헨리 8세와 비운의 왕비들 이야기 (2/2)

▶ 네 번째 왕비 클레브스의 앤 


왕자는 얻었으나 허전해진 왕은 3년간 다음 왕비를 구했고, 드디어 클레브스 공작의 누이인 앤을 네 번째 왕비로 결정한다. 예쁘게 그려진 독일 출신 왕비의 초상화 모습에 반해 독일에서 오는 배를 마중까지 했던 헨리 8세는, 도착한 그녀의 못생긴 실물을 보고는 그만 실망을 하게 된다. 결혼식은 올렸으나 한 번도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않았고, 결혼 1년도 안 되어 그녀는 왕에게서 이혼을 요구당하게 된다. 그녀는 짧은 왕비 생활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혼 요구를 거부하다 간통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앤 불린의 사례를 의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을 추진한 참모 크롬웰은 왕의 미움을 받아 파면되었고 이어서 처형대에서 목이 잘리고 만다. 헨리 8세는 이 무렵부터 점차 의심이 많아지며 과대망상을 증상을 보이거나 인내심이 없어지는 등 급격히 늙어간다. 사교적인 성격의 클레브스의 앤은 이혼 후에도 계속 영국에 머물며 왕의 친구로서 왕실의 주요 행사에도 초청받는 등 연금까지 받아가며 평온한 여생을 보내다가 왕이 죽은 후 10년이나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헨리8세 일대기를 그린 TV 드라마 '튜더스(The Tudors)'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 


클레브즈의 앤을 왕궁에서 쫓아내고 나서 왕은 같은 해 곧바로 다시, 왕비의 어린 시녀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어린 왕비는 성격이 천진하면서도 경솔하고 정숙하지 못했다. 이전의 4명 왕비들과 달리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그저 자유분방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입궐하여 왕궁의 시녀로서 50세가 다 된 왕의 눈에 띄었을 때 그녀는 아직 십 대 후반의 어린 소녀였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고, 왕비가 된 후에도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등 어리석은 행동이 결국엔 왕에게 알려지고 왕은 분노한다. 마침내 그녀가 왕과의 결혼 전에 만나 밀회를 즐겼던 남자들은 모두 붙잡혀 죽임을 당했고, 캐서린 하워드도 런던탑에 갇혔다가 처형대에서 목이 잘려 죽는다. 스무 살도 안 되는 어린 나이였다. 


헨리8세 일대기를 그린 TV 드라마 '튜더스(The Tudors' 중 상반되는 인생의 두 왕비. (좌) 캐서린 하워드 (우) 캐서린 파


 마지막 왕비 캐서린 파  


캐서린 하워드가 처형당한 지 1년 만에 왕은 과부인 캐서린 파를 여섯 번째 왕비로 맞이한다. 그녀로선 세 번째 결혼이었다. 시골 귀족의 딸로 태어나 이해심 많고 인내심 강했던 그녀는 노쇠해지는 왕을 잘 보살피고, 의붓자식들인 메리와 엘리자베스 공주 그리고 에드워드 왕자의 교육에 정성을 기울였다. 아버지인 헨리 8세와 떨어져 살던 세 남매는 캐서린 파 덕택에 한 자리에 모여 살게 되었고, 뛰어난 학자들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차후 즉위에 대비할 수 있었다. 


급격히 늙어가던 왕에게 새로 맞은 왕비는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었다. 서로에게 자주 선물을 하는 등 둘은 사이좋은 부부였다. 그녀는 헨리와 그의 첫 번째 두 딸들인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화해시키는 데에도 앞장섰다. 마지막 왕비를 통해 왕은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했으나 육체적으로는 완전히 기력이 쇠한 노인네가 되어갔다. 몸집이 매우 비대해져 있었고, 몸 전체가 곪은 종기로 뒤덮였으며 통풍까지 앓았다. 결국 1547년 헨리 8세는 55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왕이 죽고 다시 과부가 된 캐서린 파는 옛 애인과 재혼하고 얼마 후 딸을 출산하다가 숨을 거둔다. 그녀의 나이는 35세였다. 



원래는 장남인 형이 누릴 왕의 자리를 형의 죽음으로 이어받아 40년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다. 과부가 된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인 걸 시작으로 여섯 명의 여인과 결혼했으나 모두에게 한과 불행만을 안겨줬다. "One Died, One Survived, Two Divorced and Two Beheaded.(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아남았고, 두 명은 이혼당하고 두 명은 참수당했다.)“ 그가 6명의 아내들 중 셋에게서 얻은 삼 남매는 모두 순차적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유일한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제일 먼저 즉위했으나 단명했고, 이어서 장녀인 메리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하고는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릴 정도로 피바람이 불었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 캐서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아버지 헨리 8세가 부인했던 가톨릭교를 부활시키면서 수많은 신교도들이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메리 1세 또한 악행의 죄를 받은 건지 재위 6년,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후계 자식 없이 메리가 죽고 왕위를 이어받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부터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자신이 세 살 때 어머니 앤 볼린은 비록 천추의 한을 품고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딸은 포악한 아버지 헨리 8세의 장점만을 이어받아 잉글랜드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런던의 템즈 강변에 위치한 런던타워. 앤 볼린과 제인 그레이 등 수많은 왕실 여인 등이 처형된 곳이다
잉글랜드 북부의 샤프 수도원.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발표하면서 해산시킨 수많은 가톨릭 수도원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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