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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Feb 03. 2024

여행을 준비하기

오래전 현직에 있을 때 그룹사에서 계열사 부장 30명을 뽑아 해외 연수를 시켜준 적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3개월간 이수하는 마케팅 과정이었는데, 당시 함께 간 동료 부장들은 자연스럽게 공부파와 놀자파로 나뉘었다. 공부 파는 주말에도 도서관에 박혀 지난주 배운 거 복습하고 다음 주 배울 거 예습하면서 그야말로 고3 시절 이상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반면에 놀자파는 금요일 오후 세 시 수업시간 땡~하면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서 주말 내내 돌아다니다가 일요일 밤늦게 숙소로 들어오곤 하였다.     


얼마 전 내 여행 강연 시간에 ‘그때의 나는 어느 쪽이었을지 맞춰 보시라’는 질문을 해봤는데 이외로 ‘놀자파’였을 거 같다고 답하는 분들이 많았다. 퇴직 후 혼자 세계여행 다닌 그동안의 이력으로 보아 옛날부터 그런 쪽 성향이었으리라 속단한 결과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착실한 공부 파였다. 회사에서 큰돈 들이고 해외까지 보내줬으면 당연히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야지, 저렇게 주말마다 놀러 싸돌아 다니는 동료들 모습이 내 눈엔 정말 한심하고 무책임해 보였다.     


좋은 성적으로 연수 끝나고 돌아와 얼마 후 임원으로 승진했고 그리곤 9년 후 어느 연말에 퇴직을 해야 했다. 좀 더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승진 경쟁에 밀려서 나온 것이다 보니 회사에 맺힌 한이 많았다.     


출근할 곳이 없어진 백수 첫 해 연초에 집에서 뒹굴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회사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해외 연수 당시의 3개월을 돌이켜보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후회가 막심해졌다. 미국이라는 넓은 세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마케팅 배운답시고 책상머리 공부만 하다 온 셈이었다.     


당시 함께 갔던 연수생들이 누가 퇴직했고 어느 자리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수소문해 보았다. 나처럼 공부파보다는 당시 놀자파 동료들이 그룹 고위직에도 훨씬 많이 올라가 있었다. 회사가 원했던 고급 인재의 기준도 근면 성실한 범생만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요즘 추세는 더 그런 것 같다. 잘 노는 이들이 일도 더 잘하는 것 같다. 세상사에 대한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끌어가는 모습을 흔히 접한다. 휴식의 시간을 잘 활용하면서, 평소의 스트레스를 쌓아 두지 않고 잘 풀어가는 사람이 맑은 머리로 일의 성과를 더 잘 내는 것이다. 바쁠수록 휴식과 여유가 상당히 중요하겠다. 그런 면에서 여행이란 건 정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충전시켜 주는 좋은 휴식의 도구라고 생각된다.     



알프스 몽블랑을 걸을 때 유럽인들이 가족단위로 여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초등학생 자녀에게 자그만 배낭 하나씩 매게 하고 다섯 식구가 해발 2,000m 락블랑을 오손도손 걷는 풍경, 남편은 어린 아가를 등에 업고 아내는 자그만 배낭을 짊어진 채 페레고개를 넘는 30대 부부의 모습들……, 많이 부러웠다. 나는 50대 중반까지 직장 다니면서 뭐 그리 충성이라고 죽자 살자 회사 일에만 몰두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살짝 후회되는 부분이다. 혹은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니 퇴직 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게 아니냐며 스스로 위안삼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 일 열심히 하면서도 ‘여행’을 미래의 일로 꿈만 꾸지 말고 가끔씩 실행에 옮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그랬다면 직장인으로서의 내 삶이 좀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남는다.     


여행이 주는 행복감을 나는 ’ 30-40-30’ 순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곤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퇴직 후 삶을 통해 터득한 ‘느낌적 느낌’이다. 여행을 준비하고 예습할 때부터 30 정도의 행복감이 몰려오고, 여행 현지에서는 40 정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거나 여행기를 쓰면서 나머지 30 정도의 행복감이 경험적으로 이어졌다. 준비와 예습 때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직장인일 때의 나는 여행에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미래의 여행을 꿈꾸며 그나마 행복감을 느꼈던 듯하다. 여행에 대한 꿈마저 없었다면 30에 해당하는 행복감조차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의 직장생활이 나에겐 여행의 준비와 예습 과정인 셈이었다.     


현직에서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이 가끔 ‘형님 부럽습니다’라며 엄살을 피우곤 한다. ‘그럼 자네도 퇴직하면 되지’라는 짓궂은 내 응답이 이어지면 ‘그건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뻘쭘해하기도 한다. 바쁜 일상에 여행이란 엄두도 못 내는 그들이기에 한가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선배에게 충분히 할 법한 하소연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배도 그들처럼 오랜 세월을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 묶여 살았음은 잠시 잊고 있다. 여행을 위한 좋은 준비는 주어진 일과 평범한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니겠냐는 나의 교과서적인 훈수에 후배들 표정에선 약간의 위안이 읽히기도 한다.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곤 오랜 로망인 남미여행을 떠났다거나,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 전세금으로 1년 세계일주에 나섰다는 젊은 부부의 사례들은 모험보다는 안전을 중시하는 나로선 쉬이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누군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 한다면 나는 현실을 더 소중히 여기라 조언할까 싶다. ‘과감하게 훌쩍 떠나라’보다는 앞뒤 좌우 살펴보고 주변 모든 게 안정적인 상태에서 떠나도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나 홀로 여행을 준비할 때 필요한 건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흔쾌한 동의와 응원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라면 옆지기 또는 파트너일 수도 있고, 여행 경비를 후원해 줄 부모님일 수도 있다. 집 떠나 멀리 있는 동안 남아 있는 누군가가 불만스럽게 여기거나 불안해한다면 여행의 준비가 잘 못된 것이다. 뭔가 찜찜하고 뒤가 켕기는 상태로서는 여행의 의미와 즐거움은 퇴색되거나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일회용이나 단기적이 아닌 보다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쌓아 둔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부분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가장 바람직한 마음가짐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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