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폭포가 어딜까를 말할 때 가끔 인용되는 표현이 있다. ‘Oh, poor Niagara!’, 194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여사가 이과수 폭포를 보고 감탄하며 중얼거렸다는 말이다. 지금껏 북미대륙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세계 최고인 줄 알았는데 남미대륙에서 만난 이과수와 비교해보니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는가 보다. 해서 은연 중 나온 표현이 ‘어쩌나, 가련한 나이아가라!’였던 것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위치한 이과수 폭포 입구에는 ‘세계 7대 자연경관(The 7 Wonders of the World) 중 한 곳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영어와 포르투갈어 문구 간판이 아직 폭포를 만나지도 않은 입장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1년 이과수 폭포가 세계 7대 자연 경관에 선정될 때 나이아가라는 28개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걸 보면, 미국의 영부인은 70년 후의 먼 미래를 내다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 열 명에게 ‘국내 최고의 폭포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압도적 한두 군데가 없이 중구난방일 것이다. 좁은 땅이다 보니 남미나 북미대륙처럼 역동적인 지형들이 많지 않고 단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 정방폭포를 국내 최고로 답하는 이들도 열에 두어 명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폭포’ 또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 등 네이버나 구글 지도상에 올라 있는 수많은 리뷰들을 훑어보면 정방폭포의 존재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천제연과 천지연 등 인근의 형제 폭포들 덕분에 덩달아 위상이 올라가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제주섬도 이과수 폭포와 함께 나란히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올라 있다. 정방폭포가 세계적 규모엔 못 미치고 상대적으로 많이 왜소하지만, 강물 따위가 아닌 드넓은 바다와 만나는 폭포라는 점을 내세우면 이과수 앞에서 기죽을 이유가 전혀 없겠다.
옛날 언젠가부터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열 군데를 지칭하여 영주십경(瀛州十景)이라 하였다. 그 10경 중 네 번째가 바로 정방하폭(正房夏瀑)이다. 인근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여름철 배 띄워 앞바다로 나아가 바라보는 폭포의 모습이 특히 비경이라는 것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거대 주상절리 절벽으로 두 갈래 물줄기가 거세게 내리꽂는다. 벼락치듯 폭포수 포말이 비산되면서 뿌연 물안개를 자아낸다. 주변 관광객들이 웃고 떠들며 즐겁게 포즈를 취해 인증사진들을 찍는다. 오늘날 정방폭포 주변의 일상적 풍경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너무너무 멋진 날이 완성된 곳!’, 최근 네이버 SNS에 올라온 어느 외지인 여행자의 리뷰 글이다. 정방폭포는 예나 지금이나 방문자들에게 변함없이 즐거운 추억을 남겨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멋진 폭포의 이면에 숨겨진 아픈 역사의 일들은 알 도리가 없을 게다. 하얗게 이는 물보라들이 언젠가 한때는 수시로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4.3사건 당시 정방폭포 일원은 산남 지역 최대 학살터로 악명이 높았다. 한라산 이남 곳곳에서 잡혀온 양민들이 군부대 등에서 취조 받은 후 또는 영문 모른 채 수시로 끌려와 이곳 폭포 주변에서 즉결 처형된 것이다. 특히 폭포 바로 옆 소남머리에서 학살이 많이 자행됐었다.
진압군 중에 갓 입대한 초임들이 담력을 키워 살인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실전 훈련장이기도 했다고 한다. 나무에 손발이 묶인 양민들이 사격 훈련 타깃이 되거나, 총검과 죽창의 돌격 훈련 목표물이 되었던 것이다. 총에 맞거나 죽창에 찔린 이들은 폭포수와 함께 절벽 아래 바다로 떨어졌다. 때로는 총탄을 아끼기 위하여 맨 앞 사람 한 명만 쏘았다. 끈으로 묶여 연결된 열댓 명이 폭포 아래로 열 지어 추락하는 것이다. 당시 수습 안 된 시신들이 바다로 흘러가 물고기 먹이가 되었을 걸 생각하며 그 이후 평생 동안 생선은 먹지 못했다는 유족 등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은 4.3 당시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수작이다. 불태워진 마을을 탈출해 인근 동굴인 큰넓궤에서 피난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굴에서 나와 눈 덮인 숲길로 도피해 가는 마지막 장면은 얼핏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도하던 관객들은 결국은 깊은 한숨을 짓게 된다. 이어지는 자막 한 줄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1948년 12월 24일 서귀포시 정방폭포에서 총살돼 바다에 버려졌다.’
이처럼 250여 명이 학살당했음에도 위령비 하나 없이 언제나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비극의 현장 주변에 작년 5월 4.3 희생자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다. 75년 만이다. 위치 선정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많다는 소식이 여러 번 뉴스를 타기도 했었다. 당장 생계와 관련된 상가를 꾸려가야 할 현지 상인이나 주민들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반대일 수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외지인 여행자들의 인식과 욕구 수준도 점점 변하고 있다. 아름답고 멋진 곳만 찾아가던 예전과 달리 의미가 있으면서 역사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는 곳들이 새로운 여행 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다크 투어리즘은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말한다. 휴양과 즐거움을 위한 일반 여행과 다르게 역사적 아픔이 있던 현장을 찾아가 체험함으로써 교훈을 얻고자 하는 여행인 것이다.
바다로 떨어지는 멋진 폭포를 기대하며 정방폭포를 방문하려는 외지인에게, ‘그곳은 사람 수백 명이 학살된 다크 투어리즘 지역인데 그래도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왠지 꺼림칙해 하며 다른 여행지로 바꿀까, 아니면 오히려 더 가보고 싶어할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