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Bill, 쿠엔틴 타란티노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 킬빌 - 빌을 죽여라. 제목만 보면 마치 코미디일 것 같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모든 역량이 집약된 킬빌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는 아껴본다. 대부, 인터스텔라, 그리고 반지의 제왕이 그렇다. 킬빌도 그 중 하나이다.
항상 쓰던 대로 쓰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감상문을 써보겠다. 내 브런치니까 내 마음대로다.
쿠엔틴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는 1960년대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전부 삼킨 듯한 ‘광적인 시네필’로 자랐다. 책은 읽지 않았지만 영화는 누구보다 깊게 파고들었고, 그 결과 그의 영화는 언제나 영화에 대한 영화나 마찬가지다. 1992년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로 엄청난 주목을 받은 그는, 이후 펄프 픽션, 킬 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등으로 현대 영화사의 한 축이 되었다. 연출뿐 아니라 배우로도 카메오처럼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이미지를 작품 안팎에 각인시켜 왔다.
그의 영화들
타란티노에게는 늘 ‘bloodbath’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화면을 피로 덧칠하는데 탁월하지만, 그 피는 끈적하거나 비릿하지 않다. 오히려 만화처럼 과장되어 있어 불쾌하기보다는 묘한 미학으로 다가온다. 그는 피로 범벅된 화면 속에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사회가 정한 최소한의 규칙을 넘은 이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도 의리와 품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기본값은 배신이다.
이 특징이 선명하게, 하지만 조금은 투박하게 드러난 작품이 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이다. 피와 배신이 뒤엉킨 영화지만, 동시에 ‘범죄자의 세계에도 질서가 있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평단은 이 작품이 왜 명작인지 수많은 해석을 내놓았지만, 사실 나에게는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 스티브 부세미와 팀 로스가 나오거든. 이 영화 역시 피로 가득하지만 잔혹하지 않다. 피로 덮인 메시지는 질서와 배신, 의리가 얽혀 있는 세계를 전한다. 그래서 잔혹하지 않아도 냉정하긴 하다.
지금까지 본 그의 영화는 일곱 편,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킬 빌 1, 2,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쓰고 보니 마치 그의 팬 같다. 팬 맞다.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매번 다른 방식으로 ‘쇼킹, 쇼킹, 쇼킹'하다.
킬빌이라는 세계
줄거리는 단순하다. 버림받은 암살자 비어트릭스 키도(블랙맘바)가 깨어나, 자신을 해친 자들을 향한 복수의 여정을 시작한다. 두 편에 걸쳐 이어지는 길고 긴 여정의 목적은 하나이다. “Kill Bill”
- 단순한 복수극 같은 킬빌은 다양한 대중문화의 요소가 정교하게 뒤섞임으로써 거친 낭만을 끌어낸다.
무협과 강호의 세계,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적 연출이 곳곳에 배어 있다. 불 꺼진 술집에서 칼을 휘두르는 블랙맘바의 그림자는 카우보이비밥이나 나자로를 떠올리게 한다. 술집 한가운데서 칼을 휘두르는 크레이지88 멤버들의 모습은 심즈 게임의 아바타들 같다. 지나치게 완벽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연출은 복수에 낭만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웨스턴 무비의 음악 또한 중요한 장치다. 서부극이 보여주던 고독한 자들의 일대일 대결을 소환하며, 승부가 곧 존재의 전부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역시 거칠고, 낭만적이다.
눈 덮인 정원에서 오렌이 쓰러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엔카가 흐르는 가운데, 하얀 눈으로 덮인 정갈한 정원, 노란 체육복을 입은 금발의 미녀와 붉은 피가 한데 어우러지며 과잉의 미학을 완벽으로 끌어올린다.
또한 키도가 흑백 화면 속에서 오픈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절의 정서를 환기시키며, 키도의 복수 다짐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렇듯 온갖 대중문화의 파편을 조합한 킬빌은 무엇보다도 미국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완벽이란
킬빌을 다시 보며 다른 “완벽주의자들”을 떠올렸다. 타란티노의 반대편에는 웨스 앤더슨이나 박찬욱이 있다. 치밀하게 설계된 구도와 색채, 계산된 아름다움. 그와 같은 편에는 팀 버튼이 있다. 기괴함조차 계산된 완벽으로 끌어올리는 사람.
타란티노의 완벽은 대중문화의 파편들을 한데 모아 ‘뒤섞음’으로써 완성된다. 그래서 가장 미국적이다.
그리고, 품위
대부가 범죄자들의 세계로부터 품위를 끌어냈듯, 킬빌 역시 피로 범벅된 화면 속의 주인공에게도, 그 본성 밑바닥에 일말의 품위가 존재함을 드러낸다.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엔카와 함께 등장하는 찰스 브론슨의 이름은 타란티노가 추구하는 바를 보여준다 - 인간적인 품위를 지닌 고독한 싸움꾼.
타란티노의 이상은 찰스 브론슨을 거쳐 블랙맘바라는 캐릭터로 구현된다. 고독하게 칼을 휘두르지만 무너지지 않는 품위. 그래서 킬 빌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 내게는 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운 작품으로 남았다.
+ 키도가 술집에서 오렌을 부르는 장면이 난 그렇게 좋다. 미국식으로 어색하게 “오렌 이시이”를 불러내는 그 장면
+ 다 쓰고 보니 결국 쓰던대로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