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싸움 - 자유를 이해한다는 것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by 마나스타나스

"꼰대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의견이 없으면 안 되나요?"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조언을 빙자해 추궁하거나 비난을 한다.

"너 그렇게 행동하면 꼰대라는 소리 들어"

"넌 네가 잘났다고 생각해서 아무 의견도 없는 거냐?"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 보죠"


이런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그런 식으로 몰리는 자리에선 내 생각을 명확히 말할 수 없었다. 젊은 날의 미숙함이다. 그때는 정말로, 의견이 있어야 하고 꼰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꼰대여도 되고, 의견이 없어도 되고, 말을 안 해도 된다.

그 또한 자유다.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어나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든다. 꼰대의 틀에서 벗어나려 애쓸수록 오히려 그 전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젊은 거장이라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기니까 폴토앤이라고 하자, PTA라고 쓰면 오글거린다)은 1970년 생이다. 이제 딱히 젊지도 않다. '젊은'을 붙이는 이유는 그래야지 꼰대의 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가설이다.


물론 젊은 거장이라 불릴 만도 하다. 폴토앤이 <부기 나이트>로 평단에 충격을 준 게 스물일곱, <매그놀리아>로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상을 받은 게 스물아홉이었다. 재미가 있든 없든, 요즘 말로 ‘감도 높은’ 영화를 최고로 치는 유럽 영화제에서 미국 영화가 거둔 쾌거였다. 폴토앤 영화의 최대 장점은 영어다. 그 덕에 예술영화로서 진입장벽이 낮고, 집중을 끌어내는 힘이 생긴다.


영화계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고 누군가 말한 멀홀랜드 드라이브처럼, 대체 이 장면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가 싶은 장면들이 패치워크처럼 이어지는 구성 덕에 폴토앤의 영화를 보면 종종 산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웃기는 얘기지만 그 산만한 지점들 덕분에 오히려 그의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산만함 — 현실을 완전히 비틀지 않고 아주 미세하게 비틀어, 이게 비꼬는 건지 칭송하는 건지 그 사이를 오가며 관객을 헷갈리게 만들고, 그렇게 다양한 반응을 구경하는 게 폴토앤이 아닌가 하는 게 나의 또 다른 가설이다.


원래는 이 영화를 보고 후기를 남길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 이 영화는 그저 코미디 영화고, 나는 베네시오 델 토로가 좋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약쟁이 아빠의 절박한 부성애 연기도 좋았으며, 딸로 나오는 배우가 너무 예뻐서 그 또한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끝도 없이 이어진 대륙의 하이웨이를 따라 쫓고 쫓기는 그 장면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폴토앤은 약간 암울할락 싶다가도 희망적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나는 희망의 이야기가 좋다.


그런데 왜 후기를 남기게 되었냐면, 코미디 영화에 다들 의미 부여를 하기에 나도 의미를 부여해야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아서이다. 내가 이렇게 주변에 순응을 잘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나처럼 주변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이를 끝없이 거부하는 이들과 이들을 순종하게 만들려는 자들의 끝없는 싸움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큰 줄기는 두 조직의 대립이다. 하나는 반정부 단체 프렌치75, 다른 하나는 정부 요직의 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정치 성향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두 조직의 충돌은 미국 사회의 이민자 문제와 백인 우월주의를 풍자한다.


프렌치75는 다양한 인종과 직업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반발해 폭력적 투쟁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는 ‘적’이 누구인지는 끝내 명확하지 않다. 정부인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인가. 방향을 잃은 투쟁만 남는다. 반면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백인만의 미국’을 되찾겠다며 순혈주의를 외친다. 겉으론 반대편에 서 있지만, 둘 다 비밀스럽고 폭력적이며 군대처럼 체계를 갖춘 집단이다. 혁명과 질서라는 이름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거울의 양면처럼 닮아 있다.


그 중심에는 퍼피디아 비버리힐즈가 있다. 그녀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자이자 프렌치75의 상징 같은 인물로, 투쟁을 명분 삼아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다. 그녀의 딸 윌라를 버리고, 사람을 죽이고, 결국 조직을 붕괴시킨다. 이후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딸 윌라는 폐허가 된 공동체를 떠나 박탄 크로스로 향한다.

(‘퍼피디아(Perfidia)’는 스페인어로 복수 혹은 배신을 뜻하고, ‘Beverly Hills’는 말 그대로 그 동네 이름, ‘French75’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사용한 75mm 포탄에서 유래한 진 베이스 칵테일이다.)


숀 펜이 연기한 스티븐 록조는 비뚤어진 남성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조직원 후보가 되며, 밥과 윌라의 평화롭던 18년이 위기에 처하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숀펜은 정말 징글맞게 연기를 잘 한다. 록조 자체가 너무 징그러운데, 이를 또 징글맞게 사실처럼 만든다)


이미 말했듯 폴토앤의 영화는 산만하다. 이야기 덩어리들을 폭탄처럼 던져놓고 펑펑 터뜨리며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하는 식인데, 그 터지는 맛에 결국 따라가게 된다.


그 맛을 따라가다 보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륙의 하이웨이 씬을 볼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차선 도로에는 다른 차들은 없다. 윌라의 흰색 차저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잘 빠진 파란색 머스탱, 밥이 훔쳐 몰게 된 구형 센트라만이 서로를 쫓고 또 쫓는다.

- 결국 비밀스럽고 폭력적인, 서로 닮은 두 조직의 싸움은 끝내 그들만의 이야기란 얘기다.


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꼰대여도 되고, 의견이 없어도 되고, 말을 안 해도 된다 —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든 지 맘대로 영화를 만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처럼, 그 모든 건 자유다.


꼰대를 언급하게 된 계기는, 누군가 이 영화를 ‘좌파 지식인의 좋았던 시절 회상기’라고 평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렌 그린은 어느 에피소드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 마이 갓, 엄마를 안 닮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아빠를 닮아버렸잖아!”
이 영화를 좌파 지식인의 회상기라 부르는 것도 자유지만,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 그렇게 꼰대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산만한 후기이다.


구글에 폴 토마스 앤더슨을 치면 ‘폴 토마스 앤더슨이 위대한 이유’가 관련 검색어 맨 윗줄에 뜬다. 그걸 보고 아, 이 사람은 정말 거장이 맞구나 싶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칭송받는 위대한 폴 토마스 앤더슨. 한국 영화 산업이 잘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후기에 못 적었는데 베네시오 델 토로는 정말 최고다. A perfect day에서부터 난 이미 알아봤지. 그의 귀여움을.


+ 영화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몇 개 음정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정박의 피아노 소리가 끝이 없이 이어지는 장면이 있다. 에릭 사티는 Vexations, 짜증이라는 곡을 작곡했는데 이는 그의 사후에 공개되었다. 단순하고 듣기 불편한 몇 개의 선율을 840번 반복하는 곡으로 13시간이 넘는 연주시간을 기록한다.

원 배틀 어나더의 그 씬은 사티의 벡사시옹을 생각나게 하며 그들만의 끝없는 싸움의 지루함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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