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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삶

고치고 또 고치면 공허할 리 없건마는

by 마나스타나스

막살진 않았지만 대충 살아왔다는 내 삶의 맥락에 맞게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이 글도 왜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쓴다.

머리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써놓은 이유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이유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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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와는 분명히 다른 아우라가 있는 플랫폼이라서 글을 쓰게 되면 긴장이 되고 신경을 많이 쓴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지난주 내내 글 하나를 붙잡고 끙끙거리며 수십 번을 고쳤다. 올려놓고도 계속 고치는 중이다. 다른 글들도 그렇고.


오늘 올린 글을 지금까지도 고치다가 고치는 삶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콘텐츠의 장점은 연쇄작용이다. 뭔가를 하다가 다른 게 떠오르고 그것으로 또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 이런 과정의 반복이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고치는 삶에 대한 글은 꽤 오래 봐온 깨끗한 글을 쓰는 분의 칼럼이었다. 마지막 문장이 "나는 고쳐쓸 게 많아서 공허하지 않다"였던 것 같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꽤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그 문장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글의 시작에도 썼지만 난 막살진 않았지만 대충 살았던 것 같긴 하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안 하려고 한 적도 없었던 것들을 종종 생각하는 삶. 공허해 본 적은 없지만 특별히 꽉 차게 살지도 않았던 시간들. (텅 빈 충만을 쓴 법정스님은 정말 대단하군요.)


그래서 몇 년 전 우연히 머리 안에 저장된 -고쳐 쓸게 많아서 공허하지 않다-는 몇 글자 되지 않는 문장은 그 이후로도 잊을만하면 떠올라서 나 또한 뭔가를 고치고 또 고치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물건을 오래 쓰는 편이다. 컵이나 의자, 책상... 수십 년씩 쓴다. 고쳐본 적도 없다. 고장이 안 나니까.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고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써왔던 것 같다. 고침의 방향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채, 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남긴 한 건지 잘 모르는 상태로 펑펑 쓰면서 내 안의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어딘가 분명히 고장이 난다. 그렇게 되면 돈이 많이 드는 수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 큰돈이 드는 수리를 하고 나면 반드시 얻는 게 생긴다. 사람은 태어나기를 어리석게 태어나기 때문에 뭐든 해봐야 안다. 터지고, 망가지고, 부러져보고, 깨져봐야 알 수 있다. 지나온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라는 얘기다.


재작년에 손이 부러진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중요한 한 마디를 남겼다. 당시 주치의 선생님은 마지막 진료를 봐주시며 이렇게 얘기하셨다 - 이제 본인 스스로 무슨 짓을 해도 그 뼈는 안 부러져요. 원래보다 더 잘 붙었어요 (무슨 짓을 상상해 보긴 했다. 어느 정도 수준의 Nm 면 다시 붙은 손뼈는 부러질 것인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사람의 뼈도 부러지고 붙고 나면 더 강해진다. 고치고 나면 뭐가 돼도 전보다 더 나아진다는 것과 같다는 얘기로 들렸다. 고치는 행위는 일종의 수련에 가깝다. 고칠 데를 계속 찾고 어떻게 고칠지 생각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고치는 그 모든 과정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수련의 과정이라 봐도 될 것 같다.


내 부모님 또한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다. 한 분은 오래된 집만 찾아다니시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온갖 구제 물품을 찾아다니시는 분이다. 두 분 모두 오래된 것만 찾으시니 고칠 게 많다. 그래서 심심할 틈도 없으시고 "사람답게 사는 게 어렵다"며 오래된 집과 가구와 배낭과 등산화를 (그 외 오래된 것들…) 손 보곤 하셨다. 이젠 나이 드셔서 못하시지만.


바로 옆에 공허하지 않은 삶을 사는 분들을 봐오면서도 돌고 돌아 칼럼의 한 문장에서 반짝임을 얻는 것도 내가 이제까지 해 온 어리석음의 일부이다. 나쁠 건 없다. 얻긴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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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 본 이 글도 또 고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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