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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에게풍 파란색과 블루마블풍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by 마나스타나스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게 되면 바다 일정을 꼭 넣으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본 바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바다는 2015년 말에 갔던 포르투갈의 호카곶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동네길을 따라서 한참을 가다 보면 유럽 대륙의 끝, 호카곶이 나온다. 영원히 거기 머물고 싶을 만큼 좋았다. 다른 단어는 필요도 없이 그냥 “좋았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한다. 이해 불가능한 온갖 이론과 숫자들을 거둬내고 나면 무엇이라 명명되었는지 모르는 수만 가지 우주적인 아름다움이 남는다. 팽창하는 우주에서 겨우 티끌만 한, 작고도 큰 지구에서 모두가 복작거리고, 45억 년 전 출발한 빛의 직선상에서 인류가 존재했다는 것, 멋지고 낭만적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바다와 우주에 관해 책을 썼다. 나처럼 바다와 우주에 혹한 사람들을 위한 거였나. 아니다. 그 스스로가 바다와 우주의 무한함과 영원함에 혹했기 때문에 쓴 책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혹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니 나는 좋다.



2월에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을 읽다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떠올렸다. 배리 로페즈는 바다와 우주의 공통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피카르가 언급한 공백은 상당 부분 채워졌지만,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광활함으로부터 그가 받은 본질적 인상은 오해로 인한 것도 아니요, 시간이 지났다고 그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한히 텅 빈 공백을 바라본다는 이 개념은 오늘날 우주론에서도 되풀이해 등장하는 생각이며, 피카르의 시절에는 프랑스 실존주의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개념이다. 쿡도 언젠가 가볍게만 탐사한 남태평양 지역을 뒤로하고 마르키스 제도 북쪽을 항해할 때 태평양 표면에서 바로 이와 똑같은 ‘영원성’을 마주했다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를 펼치게 된 계기이다.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읽고 남겨 놓은 메모는 다음과 같다.

수년 전 출장 가던 비행기 창 밖으로 지상을 보며, 하늘에서 보면 모두가 2차원의 평면에서 살고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서로를 몰아붙이고 못 살게 굴며 살아야만 하는지 생각했었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모든 삶에는 시작이 있고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뿐인데.
우주로부터의 귀환은 저자가 우주인들을 인터뷰하며 그의 생각은 최소화하고, 우주인들의 체험 자체에서 최대한의 의미를 끄집어내어 집필한 결과물이다. 그의 의견과 생각이 생략되었다지만, 저자가 던진 질문 안에 이미 그의 생각이 깊이 담겨 있어서 우주인들의 답변이 심도 있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저자는 인터뷰의 내용을 언급하며 “모두가 다르게 얘기했지만 모두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했다.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체험하며 비슷하게 느낀 그 어떤 것을 저자도 느껴보고 싶다 했다. 그는 2021년 사망했다.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를 읽고 남기게 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긴 글 읽는 것을 점차 부담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어울리는 책일 수 있다. 사진은 많고 글은 많지 않다. 이에 대해 다치바나 다카시는 에필로그에 이유를 남겼다. 쓰다 보니 끝을 알 수 없게 길어져서 편집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총천연색의 사진으로 남겨진 수천 년의 기록은 읽는 사람을 압도한다. 에게해를 둘러싼 탐욕과 피와 부와 신화와 전설과 철학과 낭만의 기록이다. 한편으로 술 몇 잔 걸치신 상태에서 건네는 듯,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야기들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다가도, 아 이런 사람도 다 있네라고 주억거릴만하다.

유적을 즐기는데 꼭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 자리에 잠자코 잠시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잠자코>와 <잠시>이다. 가능하다면 두 시간쯤 잠자코 앉아 있는 것이 좋다.
그러면 2천 년, 혹은 3천 년, 4천 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이 눈앞에 굴러다닌 것이 보인다. 추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런 사람이다. 별 사람. 나는 확실히 별난 사람을 좋아한다.


이 책은 일종의 쉽게 쓴 철학서 같기도 하다. 니체의 사상으로 시작되어 소크라테스를 거쳐 탈레스에서 마무리되는, 사실과 신화가 섞인 땅에서 역으로 철학의 시초를 찾아 “또” 다시 에게를 가야만 했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철학 탐험기.


- 그 대단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 가려져 있던 탈레스를 다치바나 다카시가 그의 책을 통해 현재로 소환했다. 덕분에 다빈치 한참 전의 정통 만능인, 탈레스를 알게 되어 즐거웠다.

대저 존재하는 것 중에 제일 나이 든 것은 신이니, 그는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요.
제일 아름다운 것은 우주이니, 신이 빚은 것이기 때문이요.
제일 큰 것은 공간이니,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요.
제일 빠른 것은 지성(마음)이니, 모든 것을 꿰뚫고 달리기 때문이요.
제일 강한 것은 필연이니,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요.
제일 현명한 것은 시간이니, 모든 것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탈레스의 철학적이며 잠언적인 발언 - 디오게네스 리 르티오스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쓰여있다고.

문명의 이기가 과연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모든 문명의 도구들 없이도 수천 년을 관통하는 통찰은 이렇게 살아남았다.


- 우주로부터의 귀환도,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도, 모든 것이 펼쳐져 있고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쓰는 행위”를 통해 그 모든 것들은 모아지고 결국엔 본질적으로 같았음이 드러났다. 그도 그의 바다책에서 언급했다. 그의 글을 통해 남게 된 숨겨진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대해 얘기했다.



+ 다치바나 다카시와 배리 로페즈는 하나의 새로운 흐름으로 묶을 수 있다 - 생각하는 인간을 넘어서 사유하는 인간이란 새로운 흐름. 한 줄 제대로 남지 않은 잊힌 역사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유라는 단어는 매번 쓸 때마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환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대체할 단어도 없다. 그 둘이 만났었다면 뭔가 재밌는 콜라보를 해보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두 분은 더 이상 현세에 없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대로 영원으로 회귀했다.


+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깨우치는 게 있다 - 나도 많은 생각을 하긴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이 같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우침. 우열의 문제는 아니지만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나는 배운다.


호카곶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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