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자유의 땅 미국의 문화와 자본에 속박되어야만 했던 브루탈리스트의 이야기

by 마나스타나스

올해 아카데미에서 주목을 받았던 《브루탈리스트》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라슬로 토트가 미국으로 넘어간 이후의 건축가로 자리 잡기까지의 삶을 다룬 영화이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펜실베이니아. 자유를 꿈꾸며 미국으로 향한 그가 겪는 갈등과 건축, 인간관계, 정신의 붕괴를 영화는 조용한 고통으로 담아낸다.


1950년대에서 80년대에 유행한 브루탈리즘(Brutalism)은 르 코르뷔지에 등 현대 건축가들이 주도한 건축 사조로, 산업화 시대의 소재인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거대하고 실용적인 건축물을 지향한다. 브루탈리스트(Brutalist)는 그 형용사형이자, 해당 양식을 따르는 건축가를 지칭한다.


# 영화는 한 여성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출렁이는 배 위, 라슬로 토트는 뉴욕으로 향한다. 그 목소리는 그의 아내 에르제벳의 것이다. 전쟁 후 수용소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향한 라슬로와 달리, 오스트리아 국경에 조카 조피아와 함께 남겨진 에르제벳은 편지에 적는다. “괴테가 말했듯이,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노예 상태야.” 이 문장은 3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관통한다.


바우하우스에서 건축을 전공한 라슬로는 유럽 각지에서 브루탈리즘 양식의 건축을 구현해온 촉망받는 건축가였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의 한 평 남짓한 방에 모든 것을 묻어야 했다.


#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에르제벳의 사촌 아틸라는 가구 설계를 맡기며 라슬로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유대인의 이름과 종교, 이민자의 억양, 그 무엇보다 그의 건축에 대한 주관을 바꾸지 않는 라슬로와 달리 아틸라는 미국식으로 개명하고 그의 아내를 따라 카톨릭으로 개종한다. 아메리칸 드림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존재한다.


라슬로는 전쟁으로 부를 축적한 해리슨 반 뷰런의 서재 리모델링을 성공시키며, 그의 어머니를 기리는 '마거릿 리 반 뷰런 센터'라는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해리슨의 도움으로 아내와 조카를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지만, 위장된 우정은 점차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 기울고, 긴장감은 서서히 고조된다.


# 이후 반 뷰런 소유 기차의 사고로 프로젝트는 중단된다. 이후 대규모 건축회사에서 제도사로 일하던 라슬로에게 다시 반 뷰런 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탈리아 카라라의 대리석 채굴장에서 겪은 사건으로 라슬로의 정신적 균열이 시작된다. 거대하고 적막한 카라라의 대리석 산은 인간을 압도하며, 브루탈리즘이라는 단어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카라라 사건 이후 관계는 붕괴되고, 반 뷰런 센터 프로젝트는 무기한 중단된다. 에르제벳은 말한다 - This place is rotten. The landscape, the food we eat. This whole country is rotten. 자유의 땅, 미국


영화의 미장센은 드니 빌뇌브의 《듄》을 떠오르게 한다. 희망과 긴장이 공존하는 음악, 거대한 구조물과 원시적 소재들, 기하학적 프레임이 이를 보여준다. 실제로 드니 빌뇌브는 《듄》 제작 당시 브루탈리즘을 주요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라슬로가 설계한 반 뷰런 센터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가족 주택과, 인공적이고 거대한 종교 건축물 사이에 선, 미완의 구조물.


영화는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라슬로의 건축 여정을 기리는 행사로 마무리된다. 무한히 중단된 줄 알았던 반 뷰런 센터는 1973년 완공된 것으로 나온다. 이 건물의 구조는 유대인 수용소의 방을 연상케 하며, 20미터 높이의 천장 끝 십자가는 빛을 내리쬐지만 동시에 억압의 장치로도 기능한다. 구원과 구속의 공존.


진정한 브루탈리즘은 건축이 아니라 삶이었다.


+ 애드리언 브로디는 라슬로를 고요한 광기로 설득력 있게 연기했고, 에르제벳의 언어로 편지의 감정을 전하는 펠리시티 존스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이 영화는 쉽지 않다. 세 시간 반에 걸친 고요한 브루탈리티. 한 번의 감상으로 족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시시피버닝 Mississippi Bu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