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아노라

꿈과 환상의 세계 너머엔? 션 베이커는 답을 주지 않는다

by 마나스타나스

2024년에 개봉한 《아노라(Anora)》로 션 베이커는 칸과 아카데미를 휩쓸었다. 그의 영화는 혼자 아껴보고 싶었는데, 잘 돼서 좋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라는 제목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각본가 크리스 버고크에 따르면,

1967년, 플로리다에 디즈니월드가 처음 지어질 당시의 프로젝트 코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주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주거 지원 사업


플로리다에 디즈니월드가 있다는 것도, 그 근처 모텔들에 집 없이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인근 저가 모텔에 장기 투숙하며 살아가는, 최저소득조차 벌지 못하는 어린 엄마와 여섯 살 무니의 슬픈 모험을 따라간다.



# 1주에 46달러짜리 모텔에서 무직인 엄마와 함께 사는 무니는 친구들과 노는 게 유일한 낙이다. 학교는 다니지 않고, 하루 세 끼는 대부분 피자나 와플로 때운다. 와플마저도 같은 모텔에 사는 친구 엄마가 본인이 일하는 식당에서 챙겨준 것이다.


그래도 무니는 즐겁다.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관광객들에게 생떼를 부려 아이스크림 값을 얻기도 하고, 남의 차에 침을 뱉는 장난을 치며 매일을 신나게 보낸다. 한국이었다면 여러 번 소년원에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무니는 어른들이 만든 제도권 밖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도 무니는 행복하다.


#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 어린아이는 세상을 잘 모른다. 그저 철없이 밝고, 즐겁게만 지내면 된다고.


I can always tell when adults are about to cry.

무니의 눈에 비친 어른은 그런 존재다. 철없이 웃고 뛰노는 어린아이의 눈에는, 말갛게 빛나는 시선 속에는, 아이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른들은 모른다.



#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버려진 콘도에서 무니가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자고 제안하는 장면은 가슴 아프도록 슬프다.


- 여기는 내 방이야, 여기엔 내 책장을 놓고 침대는 창가에 놔야지, 아니야, 침대는 여기 중간에 둘 거야, 봐봐 벽난로도 있네. 깔깔깔


여섯 살 아이는 버려지고 지저분한 늪 근처의 콘도 안에서 자기만의 방을 상상한다. 좁은 욕실 딸린 방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무니에게, 그 폐허는 자신만의 디즈니월드다. 꿈과 환상의 세계. 하지만 그곳은 결국 불타 사라진다. 동네 주민들은 오히려 잘됐다고 말한다. 흉물스럽던 게 불에 타 없어진 걸 환영한다고.


#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처음 봤을 때처럼, 두 번째도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깔깔깔, 키키키, 까르르. 어른들이 만든 제도 밖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웃음은 공허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그래서 더 슬프다.

파스텔톤의 모텔과 아이들의 옷. 디즈니월드 인근 모텔들은 놀이공원의 솜사탕처럼 분홍, 보라, 연초록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곳, 모텔촌에 사는 아이들은 매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영화의 마지막, 제도권 어른들의 손에서 벗어난 무니는 친구의 손을 꼭 쥔 채 디즈니월드를 향해 달린다.


파우더 향이 감도는 듯한 분홍과 보라, 연두의 스크린 속에서, 당돌함 뒤에 숨은 여섯 살 아이의 슬픔이 낯설고도 건조하게 그려진다.

《라라랜드》 감상평에 덧붙였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한 줄 평이 다시 떠올랐다.


일곱여덟 살 무렵,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동생과 나를 좌석버스에 태워 등하교시켰다. 버스 안에서 동생과 놀던 기억이 있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모르지만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다. 앞좌석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엄마의 피곤함과 불안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며 그 시절이 떠올랐다.


《Anora 아노라》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디즈니월드라는 환상의 이면을 아이의 눈으로 좇았다면, 《아노라》는 4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며칠간 달콤한 꿈을 꾼 후, 회전문을 돌아 현실로 돌아온 아노라, 애니의 이야기다.


애니, 아노라는 뉴욕 유대인 구역의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성 노동자다. 어느 날, 충동적이고 부자인 러시아 청년 반야를 만나 갑작스럽게 결혼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거만한 반야의 부모는, 결국 그녀에게 결혼 무효를 요구하고, 애니는 동의한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소동 속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있다. 반야의 수행원처럼 보이는 이고르. 그는 깡패처럼 보이지만, 실은 순진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는 애니를 그 자체로 존중하며 대한다. 성노동자도, 계산적인 인물도 아닌 ‘아노라’ 그 사람 자체로 본다. 사납고 맹렬하며 본능적인 애니, 아노라는 이고르가 그녀를 인간적으로 대할수록 더욱 맹수 같아졌다. 고마움을 어떻게 표시할지 몰랐다.


1만불에 결혼 무효에 합의하며 자신의 꿈이었던 다이아 반지를 잃어버린 아노라에게, 이고르는 그 반지를 돌려준다. 난리통에 몰래 챙겨뒀던 것이다. 아노라는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성 노동자인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녀는 그 외에 어떤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시해야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이고르의 품에서 맹렬하게, 더 슬프게 울었다.


그래서, 사납고 맹렬한 애니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 막장 드라마로 느껴질 수 있는 서사를 지닌 《아노라》는 사실 무척 코믹하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싶은 순간들이 웃음으로 승화된다. 웃어도 되나 싶지만, 웃을 수밖에 없다. 아노라, 애니의 회전문 같은 삶은 그래서 더 명징하게 쓸쓸하다.


+ ‘아노라’는 우크라이나어로 석류, 빛, 밝음을 뜻한다. 그녀는 자신을 ‘애니’라고 불러주기를 원한다. 빛의 이면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스트립댄서이자 콜걸.


+ 션 베이커는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성노동자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성노동은 폼페이가 멸망하던 기원전 79년에도 존재했다. 인류의 역사의 그림자 속에서 존재해왔다.


+ 션 베이커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가장 큰 미덕이다. 환상의 세계에는 답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에는 없다. 억지로 결론을 쥐여주지 않아서 오히려 고맙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온통 영화 포스터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그의 계정인지 몰랐다. 그는 오래 전부터 영화 포스터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평생 영화를 본 타란티노, 평생 포스터를 모은 베이커. 둘 다 좋다.


결국 내 "취향"은 이렇다. 기교도, 멋도 부리지 않는 것들이다. 글도 영화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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