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던 리셋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
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가 개봉한 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이 영화는 2014년 개봉 당시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본 이유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포스터만 봤을 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고, 막상 보고 나서는 훨씬 재미있고 신박하다 생각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빌 케이지를 맡은 톰 크루즈가 초반에 금세 죽어버려서 아니 이게 뭔가 하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빌 케이지는 살아나고 죽고 살아나고 죽고 또 살아나서 이 잔인한 게임의 끝판왕, 외계 괴생명체의 심장을 파괴하고 또 다른 내일을 맞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사사쿠라 히로시의 일본 소설 All You Need Is Kill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과 영화 모두 비디오 게임의 ‘리셋’ 개념을 차용했다. 익숙한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버블버블’ 같은 아케이드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플레이어가 적을 물리치지 못하고 적에게 닿으면 게임 캐릭터는 죽고, 나는 처음 단계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 리셋이다.
리셋을 반복할수록 경험치가 쌓인다. 그렇게 수없이 죽고 살아나고 죽고 살아나며 마침내 끝판왕을 만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셀 수 없이 지겹게 반복하며 결국 마지막에 도달하는, 인간(들)의 피할 수 없는 고독한 싸움을 그린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조상 격인 영화가 있다.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4년도 작으로 빌 머리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을 맡았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쓸쓸한 영화이다. 그래도 끝이 좋으면 된 거지 뭐.
사랑의 블랙홀은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방송 리포터 필 코너스가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로 취재를 갔다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 2월 2일)’에 갇혀 같은 하루를 무한 반복하는 이야기다. 그 하루를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며 그는 점점 삶의 의미와 사랑을 깨닫는다.
이 반복의 테마는 또 다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계(일본판)와도 맞닿아 있다. 주인공 이치코는 시골집으로 돌아와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엄마 후쿠코는 이치코와 함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다. 몇 년 후 도착한 편지에서 엄마는 고백한다 - 제자리를 맴도는 원인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인생은 지나고 보니 나선이었고, 위로 아래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그의 공간을 넓혀나가고 있었다는 것.
빌 케이지도, 필 코너스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특정한 시공간의 감옥에 갇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은 끝없이 반복되는 죽음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확장해 나가고, 다른 한쪽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매일을 다르게 살아낸다는 것이다 (자살을 포함해서).
다르지만 닮았다.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같다. 갇혀버린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이치코의 엄마처럼, 이치코 자신처럼 — 일상에 갇혀버렸다는 감각은 누가 만든 것일까. 나인가, 너인가, 그녀인가, 그인가.
모두는 비슷한 생각을 한다.
현실을 벗어나면 더 나은 “현실”이 있으리라는 환상.
오늘을 지나면, 이 순간만 지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사랑의 블랙홀도, 리틀 포레스트도 결국 그 환상과 희망의 경계에서, 각자 스스로의 의지로 시간과 공간을 넓혀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각자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리셋되는 경험을 했다. 아, 리셋되는 느낌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분명 어제도 설명했고, 그저께도, 지난주에도, 한 달 전에도 상세히 설명했는데 오늘이 되니 모든 게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금세 화를 냈겠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아, 이게 리셋되는 거구나 — 단지 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셋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리셋은 재시작과 다르다. 리셋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재시작은 나의 의지다.
어른의 삶이란 결국 리셋을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임을 이제야 조금 깨닫는다. 내가 백만 번 설명해도 그 어떤 상황은 리셋될 수 있다. 그냥 그럴 수 있다. 그건 상대가 나빠서도, 내가 모자라서도 아니다.
예전에 리셋되는 상황을 못 견딘 이유는 탓할 대상을 찾고 싶어서였음을 깨닫는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탓을 돌리고 싶었다 -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왜 내 얘기를 못 알아듣는 거야?
그래서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화가 났고, 절망했고, 그래서 슬펐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빌 케이지처럼, 필 코너스처럼, 지겹고 불가해한 일상은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도 확장할 수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의 삶은 반복의 연속이다. 기는 순간, 걷는 순간, 말을 하는 순간 —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더 멀리 걷게 되고, 오늘은 “엄마”를 말하고 내일은 한 마디도 못한다 해도, 일주일 뒤엔 “아빠”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 내 마음을 몰라줘도 된다. 내 얘기를 못 알아들어도 된다. 내가 그의 마음을 안다면,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는다면 그것이 시작이다. 이제는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