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90년대의 블록버스터

그 시절, 칼도 맞고 총도 맞으며 살아남은 영웅들

by 마나스타나스

영화 스피드 Speed는 1994년에 개봉했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이 작품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블록버스터 blockbuster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정부의 연금 정책에 불만을 품은 폭발물 전문가 출신의 퇴직 경찰이 달리는 버스에 폭탄을 설치하고 승객들을 인질로 삼는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에게 혼쭐나며 퇴장하는 전형적인 악당 퇴치물이다.


1964년생 키아누 리브스의 환갑과 스피드 개봉 30주년을 기념하여 스피드를 다시 보았다. 이 기세를 몰아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의 블록버스터를 정주행 하였다.


스피드 - 다이하드 1, 2, 3 그리고 4 - 에너미 라인스 - 아마겟돈, 더 록과 콘 에어 -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전 시리즈 - 그때 그 시절의 아저씨들은 적들에 비하면 참 변변찮은 장비와 무기만 갖춘 채 거의 맨 몸으로, 그것도 거의 홀로 싸우다시피 한다.


에너미 라인스 &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나를 참 헷갈리게 했던 두 영화다. 에너미 라인스의 원제가 Behind Enemy Lines라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나토군이 개입했던 보스니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실화 기반 영화다.

정찰 금지 구역에 투입된 미군 정찰기가 공격을 받아 추락하고, 조종사는 처형당한다. 살아남은 항법사는 아무것도 없이, 그야말로 맨몸으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생존의 위협과 끝나지 않은 전쟁의 어두운 현실이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오웬 윌슨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 덕분에 묘하게 가볍게 느껴진다. 버려진 공장 지대를 가로지르며, 지뢰를 피해 정해진 규칙대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버넷 중위—그 장면에서의 오웬 윌슨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에너미 라인스가 적진에 홀로 남겨진 한 군인의 생존기라면,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는 얼떨결에 미국 정부의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불륜남 변호사의 생존기다.

우연히 찍힌 상원의원 살인 사건 영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하필이면 그 불륜남 변호사의 아내 선물 봉투에 들어가게 된다. 테이프의 원래 주인은 곧바로 살해당하고, 봉투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른 채 변호사는 졸지에 암살자 무리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결국 은둔 중인 퇴직 정보국 요원의 도움을 받아, 불법 감청과 사찰을 일삼던 부패한 정부 요원들을 통쾌하게 일망타진한다.


쓰고 보니 에너미 라인스는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 그래도 드라마든 블록버스터든,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 알림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의 낭만이 묻어 있다.


덧붙이자면,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에 진 해크만이 나온다. 나는 그의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인데, 그는 악의 편이든 선의 편이든 늘 성깔 있는 캐릭터를 맡아왔다. 방향은 달라도, 일관성만큼은 확실한 성깔.


아마겟돈, 더 록, 콘 에어—90년대 블록버스터를 이야기할 때 마이클 베이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로는 단연 니콜라스 케이지일 것이다. 이 둘은 90년대 블록버스터의 장인들답게, 폭발적인 존재감으로 액션 영화의 미학을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상업 광고 감독 출신인 마이클 베이는 90년대 말, 할리우드에서 그의 재능을 10000% 활용한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지평선 위로 비스듬히 져가는 태양, 예고 없이 터지는 폭발들. 그의 영화는 그 무엇이든 ‘과하다’. 카메라 워크도 과하고, 액션도 과하며, 폭발도 과하다. 그런데 그 모든 과잉이 오히려 마이클 베이 영화의 미덕이다. 과하니까 시원하고, 과하니까 기억에 남는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애리조나 유괴사건에서처럼 망가지는 역할부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처럼 깊이 있는 연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90년대에 액션 히어로로의 커리어 전환을 시도했고, 그게 또 기가 막히게 성공적이었다. 더 록에서는 유약한 화학 전문가, 콘 에어에서는 정의로운 군인, 페이스 오프에서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이중 연기를 소화하며 액션의 대가 반열에 오른다. 큰 키, 약간 멍한 표정, 그리고 그 사이의 불안정함은 영웅을 분하기에 충분하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은 원래 미국의 유명 TV쇼다. 한국에서는 제5전선으로 수입되어 1980년대 중반 방영된 적이 있었고, 상당히 인기 있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1966년부터 시작된 TV쇼로 1980년대까지 방영된 것 같다. 20세기의 미국 TV쇼의 세계는 수십 년을 넘나 든다. 이마저도 낭만적이다.


‘제5전선’이라는 한국식 제목이 흥미롭다. 전쟁 중에 내부의 적으로 뒷공작을 담당하는 조직을 ‘제5열’ 혹은 ‘제5전선’이라고 부르는데, 미션 임파서블과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오래된 TV쇼는 1996년, 당대의 미남 스타배우, 탐 크루즈 형님을 앞세워 리부트 되고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다. 블록버스터에 가깝지만 그와는 또 약간 다른 느낌을 가진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성공한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탐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은 원작을 제대로 계승한 첫 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7편이 나왔다. 최악은 오우삼이 감독한 2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는 둘째 치고, 이건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과한 오우삼식 액션만 가득하여 굉장히 느끼하다. 영화 막판에 헌트가 모래에 숨어 있던 총을 발로 차서 악당에게 쏘는 장면은 아주 민망하다. 오우삼은 그 비슷한 시기에 종횡사해 Once in a thief를 미국 TV쇼로 연출했는데 역시 아주 애매하게 망했다.


3편부터는 본격적으로 톰 형님만의 미션 임파서블이 시작된다. 다시 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토끼발을 쫓는 3편, 충성한 국가로부터 부정당한 각국 특수 요원들이 얽히는 4편과 5편,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 시대에 어울리는 6편과 7편까지- 오락 영화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1편부터 쭉 출연한 Ving Rhames와 중간에 합류했지만 이제 빠지면 섭섭할 것 같은 Simon Pegg는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시리즈에는 로맨스가 없다. 애매하게 로맨스 넣었다가 실패한 2편을 겪어서였는지, 3편부터는 로맨스 무드는 사라진다 (하지만 결혼은 한다). 이단 헌트와 일사 파우스트의 관계도 연인이라기보단 애틋한 남매 같은, 굳이 말하면 brotherhood겠다.


(아주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느낀 점은) 1편에 등장한 무기상이자 거부, Max를 맡은 영국의 대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에 이어 Max의 딸로 5편부터 Blackwidow로 출연하는 바네사 커비, 둘 다 바네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점이다. 나는 그 두 바네사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다이 하드


학창 시절 영어 공부를 거부했던 나로서는 다이 하드(Die Hard)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늘 난감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이만치 해오니 이제야 좀 감이 온다. ‘죽기도 어렵다’, ‘아이고 죽겠다’, ‘죽어야 끝나지’—뭐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진 해크만에 이어 브루스 형님이 나온 영화도 꽤 많이 챙겨봤다. 그의 연기 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설렁설렁, 약간 건달 같은데 또 정의롭고, 삐딱한데 한편으로는 가정적이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무도 할 사람이 없으니까 나라도 해야지. 이 몸이 부서지더라도” 같은 연기가 난 좋다.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낭만이기도 하다.


2007년에 개봉한 다이 하드 4.0에서, 우리 브루스 형님—존 매클레인 형사는 엄청나게 큰 트럭을 몰고 악당을 쫓아가며 혼잣말을 한다 - 아니, 난 또 왜 이 테러리스트들이랑 엮여서 이 고생을…

그리고 본인이 답도 해준다 - 아무도 안 하니까 나라도 하는 거지. 해야 되는 건데 아무도 안 하니까.


존 매클레인 형사는 그냥 미국의 영웅이 아니라, 현대의 영웅상 그 자체다.


사실 그가 늘 투덜대고, 머리도 좀 빠지고, 몸도 점점 아저씨처럼 돼서 그렇지, 테러리스트들 상대할 때 보면 굉장히 똑똑하다. 주변 물건 잘 활용해서 악당을 물리치고, 남들은 놓쳤을 미세한 단서를 기가 막히게 쫓아간다. 게다가 피지컬도 어마어마하다. 맨발로 유리 밟고, 이륙 직전의 비행기에서 날아오르고, 팔에 총맞고도 한 손으로 매달려 있다. 정말 대단한 피지컬이다. 솔직히 뉴욕 경찰로 두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이다. 델타포스나 SAS에 입대시켜서 세계를 구하게 했어야 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블록버스터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맨몸으로 부딪친다는 점이다. 맨발로 깨진 유리를 밟고, 칼에 수십 군데를 찔리고,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고, 머리가 깨지고, 팔이 빠지고, 다리에 총을 맞고, 심지어 자기 몸에 총을 겨누어 관통시키더라도—우리 아저씨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요즘 액션에선 보기 힘든 미덕이다. 어벤저스 스타일 초능력자들이나 온몸을 기계로 감싼 인간 병기들이 악당을 처리하는 건, 솔직히 좀 뻔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비슷한데, 영웅들이 고독하다는 것이다. 주변에 조력자들이 분명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혼자 움직인다. 외롭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들은 외롭지 않다. 스스로 선택한 거리두기, 그게 고독이라면, 딱 그 말이 어울린다.


이 시대의 영웅들은 신도, 기계도 아니었다. 그저 칼빵 맞고도 달리는 아저씨들이었을 뿐이다.

난 우리 아저씨들 중에서도 존 매클레인을 제일 좋아한다. 하필이면 감독이름도 존 맥티어난이어서 이것도 매번 혼란을 주던 포인트였다.


마지막은 미국 본토 이야기라는 점이다. 남의 나라가 아니라, 자기네 땅에서 벌어지는 일. 다른 나라를 부수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든다. (물론 몇몇 예외는 있다.)

200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영화 속 폭력은 북아프리카 도시들을 지나, 동유럽, 그리고 서유럽의 주요 도시들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이건 아마 SNS의 영향일 거다(라는 게 내 생각).

서유럽의 콧대 높은 도시들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영화 한 편 제대로 찍히고 나면 관광 수입이 확 뛴다는 걸. 파리를 한 바탕 휘저어 놓고, 시칠리아를 한 번 들었다 놨다 하면, SNS를 통해 영화의 '그 장소들'은 순식간에 명소가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부자 도시가 될 수 있다. (콜로세움이 아직 멀쩡하다. 언제쯤 무너뜨리는 장면이 나올지 궁금하다- 이미 부순 거 아냐?)


SNS와 함께 블록버스터의 낭만도 사라졌다. 어쩔 수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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