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 제로 다크 써티- 캐스린 비글로우
The rush of battle is often a potent and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
"전투의 격렬함은 때로 강력하고 치명적인 중독이다. 전쟁은 마약이다.”
2009년 개봉한 <허트 로커(The Hurt Locker)>는 뉴욕타임즈 종군기자이자 이라크 특파원이었던 크리스 헤지스의 저서를 인용하며, 전쟁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2001년, 알카에다는 두 대의 항공기를 납치해 뉴욕 맨해튼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했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건은 21세기 최악의 테러로 기록되었고,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으며 미국은 그에 더해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 이제 누구나, 언제든지,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져나갔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 주니어에게,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 한가운데, 그것도 국가의 상징인 뉴욕을 정면으로 공격했다는 사실은 충분한 전쟁의 명분이 되었다. 물론 ‘명분’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이 테러는 잔혹하고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참혹함이 정치에서조차 명분으로 작용해 온 역사는,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부시는 알카에다를 뿌리 뽑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천명하며 전쟁을 선언한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국가 간의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세계 최강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그리고 종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와의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2001년 10월 시작되어, 2021년 미군 철수로 막을 내린다. 그 사이인 2003년,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로 테러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전쟁에 돌입한다. (‘침공’이라는 표현이 불편할 수 있지만, 미국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타국 영토에서 작전을 벌였기에 적절한 용어라 본다.)
캐스린 비글로우는 바로 이 혼란의 시기에, 그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통해 전쟁의 후유증과 중독과 집착의 본질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2003년 시작된 미국-이라크 전쟁은 단 한 달 만에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며 싱겁게 끝났지만, 이후 약 8년간 이라크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미군이 주둔하는 동안 사제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았고, 민간인·외국인·미군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허트 로커>는 이 시기, 이라크에서 폭발물 해체 임무를 수행한 미군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 처리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EOD는 보통 팀장과 사병 둘로 구성된 3인 1조 팀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폭발물 신고를 받으면 즉시 출동하고, 먼저 로봇을 보내 현장을 점검한다. 폭발물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설계 결함으로 인한 즉시 폭발, 또는 외부 전자 신호에 의한 원격 기폭 등 방식도 다양하다.
전임 팀장이 로봇 고장으로 인해 직접 폭탄을 점검하다 폭사한 뒤, 그의 후임으로 윌리엄 제임스 중사가 이라크 EOD 팀에 부임한다. 팀원들을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긴다. 총알도 폭격도 두려워하지 않고, 로봇 대신 스스로 폭탄을 해체하려 들며, 위험한 군중 속에서도 개의치 않고 차량을 뒤져 기폭 장치를 찾아낸다. 심지어 통신 장비조차 내던져버린다. 임무가 반복될수록 그는 점점 더 무모해지고, 팀을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 잦아진다. 급기야 친분 있던 이라크 소년이 자살폭탄 실험의 희생자라고 믿고 민가에 무단침입해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그는 어떤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확고한 신념이나 소신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보다는, 극한의 상황에 홀린 듯 보인다. 그렇게 거침과 무모함에 중독되어야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 같다.
임무를 마치고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일상에 무감각하다. 풍요로운 마트에서도, 낙엽이 쌓인 집 앞마당에서도, 아이와 놀아주는 순간에도 그의 마음은 그곳에 없다.
그는 전쟁터로 돌아간다. 그의 표정에는 기대에 찬 희열이 이미 가득하다.
많은 전쟁 영화가 집단적 광기, 히스테리, 공포와 허무의 연대를 그리는 반면, <허트 로커>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점점 무너져가는 개인이 살아남는 법을 그린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극단적 희열을 추구함으로써 고통을 이겨내려는 본능을 그린 이야기다.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는 군사용어로 00시 30분, 자정이 지난 가장 어두운 시간대를 뜻한다. 오사마 빈 라덴 체포 작전이 시작된 바로 그 시각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전쟁에 중독되어 가는 개인의 내면을 그려낸 캐스린 비글로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공익을 위한 임무가 어떻게 개인의 복수로 전환되는지 그 개연성을 이야기한다.
전 세계를 경악케 한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이후 국제 사회의 최우선 수배 대상이 되었고, 10년간의 도피 끝에 2011년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다.
영화는 이 10년간의 추적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주인공 마야는 고등학교 졸업 후 CIA에 입사해 줄곧 오사마 빈 라덴만을 추적해 온 인물이다. 실제로 작전에 참여했던 특수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젠’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30대 초반의 여성 요원이 빈 라덴의 시신을 확인한 뒤 펑펑 울었다고 한다.
영화 초반, 마야는 CIA 소속으로 파키스탄 주재 미국 대사관에 파견된다. 파키스탄 모처에 감금되어 CIA에 의해 고문당하던 조직원의 고문을 목격하면서도, 그녀에게 이 일은 단지 '회사 업무'에 가까웠다. 미국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 객관적 분석과 이성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임무였다.
그러나 친한 선배 요원이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한 뒤, 그녀의 임무는 공익의 실현이 아니라 사적 복수의 성격을 띠며 집착에 가까운 추적을 이어나가게 된다. 마야는 점차 빈 라덴을 향한 강박적인 집중 상태에 들어간다. 그의 측근, 그의 심리, 그의 은신처—그녀가 존재해야 할 모든 이유는 오로지 그에게 맞춰져 있다.
이후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 대한 연쇄 테러로 인해 본국으로 복귀한 뒤에도, 마야는 빈 라덴만을 좇는다. 매일 상관의 사무실 유리벽에 날짜를 적으며, 작전 실행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모든 이들이 60%, 80%의 확률을 말할 때, 오직 그녀만이 바로 그곳, 그녀가 추적해 낸 그곳에 빈 라덴이 숨어 있다는 것을 100% 확신한다.
그 확신 끝에 실행된 ‘넵튠 스피어(Neptune Spear)’ 작전은 성공을 거두고, 마야는 시체가방에 담겨온 시신을 확인한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영화를 다섯 번쯤 본 것 같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같다. 집착일까, 집념일까.
2019년 10월, 이렇게 적었놨다.
About tenacity, not obsession - 집착이 아닌 끈기.
<허트로커>와 <제로 다크 서티>는 중독과 집착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영역의 불편하고 부정적이 감정을 다루지만, 그 감정이 시대적이고 심리적인 필연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었음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 설득력 있는 연출을 통해 고통과 두려움을 넘어서 그 '살아있음의 실감'을 좇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이 어떻게 보편적 서사로 확장되는지를 예리하게 그려낸다.
- 전쟁은 마약이다.
+ 각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제레미 레너와 제시카 차스테인을 매우 좋아한다.
+ 캐스린 비글로우의 전남편은 제임스 카메론이다. 그녀가 그의 전남편을 제치고 아카데미 감독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하게 한 작품이 허트 로커이다.
+ 제로 다크 써티 또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음악상만 수상하는데 그치는데, 영화 초반의 테러범에 대한 가혹한 고문이나 정치적인 입지에 대한 내용 등이 워싱턴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후문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