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미지라는 언어 - Dave Heath

by 마나스타나스

인스타그램은 인류가 발명한 무의미한 것들 중 가장 무의미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별한 정보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계속 보게 된다. 스크롤의 발명이 낳은 최대 수혜자, 인스타그램은 인류가 쓸데없이 찰나를 소비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인스타그램을, 나도 오늘 아침부터 선풍기 옆에 앉아 열심히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겨울, 태백을 방문한 외국인의 뒷모습 사진이 떴다. 흐릿한 하늘, 눈이 살짝 쌓인 풍경, 사찰로 보이는 배경을 앞에 두고 그 외국인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이 한여름에 그 겨울 사진이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쩐지 아련해서, 프로필을 눌렀다.


그 계정은 허전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남녀의 키스 순간을 클로즈업한 흑백 사진 속 여자의 왼쪽 옆얼굴은 강조돼 있었다. 둘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인데도 이상하게 헛헛했고, 그 강렬함이 길었다.


New YorkCredit...Dave Heath

(source: https://www.nytimes.com/2019/04/24/lens/dave-heath-dialogues-with-solitudes.html)


미국 사진작가 Dave Heath의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그의 아버지인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그의 전기를 통해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이 사진을 보고 난 후 Dave Heath를 찾아본 나로서는 이 사진을 다시 봐야만 했다.


Heath는 1965년 A Dialogue With Solitude라는 사진집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6년 한 인터뷰에서 제목의 영감이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서 쾨슬러,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예이츠의 이름만을 언급했다. 인터뷰어가 그의 내면적 고독에서 비롯된 제목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1931년에 태어나 2016년 세상을 떠난 Dave Heath는 고아였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었다. 인터뷰어가 충분히 짐작했을 법한 삶을 살아온 그였지만, 그가 포착한 군중 속의 고독과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킨 인물들의 표정은 누구에게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Maybe it is ordinary in that most people find ways to adapt to it or overcome it or ignore it. I’m driven by it. It has colored
everything in my life.”

나는 그저 그것, 고독에 의지했을 뿐이에요. 고독은 내 인생의 모든 것에 드리워져 있어요


(source: https://www.nytimes.com/2019/04/24/lens/dave-heath-dialogues-with-solitudes.html)


전쟁터에서도, 도시의 한가운데서도 고독이라는 절대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사진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마크 로스코가 거대하고 공허한 캔버스 앞에 선 관객들과 공허를 통해 대화하려 했던 것처럼, Heath는 흑백의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가 작품집 제목에 coversation이 아닌 dialogue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결국, 그의 삶 전반에 스며있는 고독이 단순한 말의 오감이 아니라, 보다 조용하고 내밀한 정서의 교류였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스크롤의 또 다른 결과물은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Chris Marker의 북한 방문기였다. 그는 1957년, 전쟁 직후의 북한을 찾아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이후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하다.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이들의 눈빛은, 아마 그 시기의 남한의 그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 Chris Marker가 전하려 한 것은, 허물어진 공간에 남겨진 절망과 기억의 교차 속에서 다시 살아내야만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의지였을 것이다.

(source: https://www.huffpost.com/entry/chris-marker-north-korea_n_6656686)


나는 인스타그램이 무의미하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었다. 절망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보편적인 것 - 사람들은 그에 적응하거나, 극복하거나, 무시하거나, 때로는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감정에 의지해, 오히려 삶의 성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현대 미술, 물방울의 화가에 대하여